<삼국지 : 용의 부활> <적벽대전 1부> > 설(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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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s Cas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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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6662 bytes / 조회: 896 / ????.12.19 10:02
<삼국지 : 용의 부활> <적벽대전 1부>


세상의 책중엔 누구나 다 알지만 의외로 읽은 이는 별로 없는 책이 있다.『삼국지』가 바로 그런 책이다.
나 역시 그렇다.『삼국지』에 등장한 많은 인물들의 면면은 물론이고 그들이 치룬 전투에 대해서도 꽤 제법 알지만 막상 책은 읽지 않았다. 지나치게 잘 아는 이야기는 스스로도 내가 이 책을 읽었나 싶게 익숙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기회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삼국지』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8, 9년쯤 된 것 같다. 당시 내가 제일 재미있게 했던 컴퓨터 게임은 '공명전'이었다.
'공명전'은 전형적인 롤플레잉 게임으로 주인공 공명과 (삼국지의 내용에 의해 간혹 전투에서 빠지기도 하지만)유비, 관우, 장비 기본 옵션에 데리고 있는 군사들 중 필요한 인물들을 골라 조조와 손권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장기나 바둑 같은 turn 방식의 게임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설명하면, 장기알이 칼들고 위치를 옮겨 가며 싸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경험치가 올라가고 경험치만큼 전투력도 상승하는 즉, 레벨이 높아지는데 높은 레벨의 아군과 낮은 레벨의 적이 붙으면 적이 세 번 공격할 동안 아군은 한 번만 공격해도 이기는 룰을 가진 육성 시뮬이기도 하다. 당연히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데리고 있는 군사들의 레벨도 제각각이 되는데 이때 내 군사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 인물이 바로 조운(자룡)이었다. 내 일방적인 애정을 받은 조운은 유비, 관우, 장비보다도 더 레벨이 높았고 매 전투마다 발군의 전투력을 발휘, 승전보를 올렸다.
그렇다고 편애하는 장군을 계속 내보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조조나 손권 같은 적장들은 당연히 레벨이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전투를 봐가면서 맞붙여야지 안 그러면 장수만 잃는다. -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게임을 넘기면 다시 살아난다.
즉 게임 스토리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삼국지』의 내용을 꿰고 있으면 전투에서 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적벽전을 치를 때는 조조에겐 관우를 맞붙이면 그 전투는 싱거울 정도로 금방 끝난다. 한편으론 관우가 조조에게 진 빚을 잊지 못하고 조조를 놓아준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관우 넌 이번 적벽전투에선 제발 빠져!' 해봤자 소용없다. 역사를 바꿀 순 없으므로 싫든 좋든 적벽전에서 관우를 뺄 수 없다. 각설하고...

지난 달에『삼국지』를 모태로 하는 영화 두 편,《삼국지 : 용(龍)의 부활》과《적벽대전 1부》를 봤다.

먼저《삼국지 : 용의 부활》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봤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조운이었다. 제목의 '용'이란 조운의 자인 '자룡'을 뜻했던 것.
영화의 문제점이라면 조운이 명장인 건 분명하나 그래서 삼국지 인물들 중 내가 가장 아끼는 인물인 것도 사실이나 그를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기록된 사실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영웅인데 굳이 거기에 신화적인 요소까지 덧입혀야 했는지 영화는 내내 그를 비장하게 몰아댄다. 물론 나는 중국인이 아니므로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정서가 존재하겠으나 한 인물을 영웅으로 조명하는 것과 신화화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적벽대전 1부》
적벽전을 치르기 전까지가 1부의 내용이고, 본격적인 적벽전은 2부에서 다룬다고 한다. 주연급 캐스팅 과정의 비화 탓인지 아니면 그것이 원래 감독의 의도였는지 주유(양조위)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다. 단지 분량뿐 아니라 2/3 지점이 넘어 가면서부턴 그야말로 주유의, 주유에 의한, 주유를 위한 영화가 되었다. 그냥 '주유전'이라고 해도 됐을 듯...
공명이 손권과 동맹을 맺기 위한 방편으로 주유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때마침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있던 주유의 옆으로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우아하게 슬로모션으로 날아가는 것을 봤을 때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감독이 오우삼이었다. 오감독님, 도대체 하얀 비둘기를 얼마나 키우시길래 아직도 비둘기를 날리시는 건가요... --;
뭐, 어쨌든, 이리하여 이때부터 주유의 말이 난산 끝에 새끼를 낳는 장면도 구경하고, 주유가 공명과 가야금 대결하는 것도 지켜보고, 주유가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도 훔쳐보고, 주유의 집 처마에서 예쁘게 슬프게 비장하게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며 부러워하다 보니 어느새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아, 이제 좀 볼만하구나 했더니 고양이가 잡은 쥐를 희롱하다가 쥐한테 물리는 것도 아니겠고 이러저러 하다 보니 어느새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조조의 십만군을 주유와 공명이 사이좋게 내려다보면서 1부가 끝이 났다.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버릴 건 버리고, 잘라내야 할 건 잘라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오감독님에게도 '버리는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누구는 '과하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영화 <삼국지> 두 편을 보면서도 궁금한 것이 참 많았다. 원래 어중간하게 알면 궁금한 것도 많은 법. 하여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삼국지>를 읽은 M군에게 계속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었더니만 어지간히 귀찮았던 모양이다. 일주일 뒤에 M군으로부터 택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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