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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Alice's Casket
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15501 bytes / 조회: 888 / ????.08.25 23:58
TV 드라마 잡담


30도가 훌쩍 넘는 기온에 습도까지 높아 숨막히게 더웠던 8월 중순,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죽치고 있다 보니 간만에 TV와 친하게 지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드라마 뒷담-


<스타일>(sbs) 박기자 씨
현실에서 마주칠 기회가 있다고 가정하면, 개인적으로 기피하는 유형.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박기자 씨처럼.
게다가 박기자는 본인으로 인해 유발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본위의 합리화에 얄미울 정도로 능숙하다는 점에서 영리하기까지 하다. 여러모로 천방지축 대책 없는 이서정에겐 버거운 상대.
드라마 속에서 성공하는 여성은 더없이 이분법적이다. 아주 '약'하거나 아주 '쎄'거나.
<스타일>의 경우 두 명의 여성이 대립각에 서 있는데 제대로 '쎈' 박기자와 쎈 것도 아니요 약한 것도 아닌 무늬만 캔디형인 이서정이 그들이다.
'박기자보다 이서정이 더 싫어'와 '이서정보단 박기자가 좋아'는 분명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말하건데 나는 '박기자가 싫다, 그리고 이서정은 박기자보다 더 싫다!'


<탐나는도다>(MBC) 규 도령
제목을 보는 순간 "우와~ 센스 있는 작가군!" 하였다.
원작이 만화(comics)답게 드라마속 캐릭터가 파닥파닥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날뛴다.
특히 규 도령.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찌질한(초반) 규 도령의 그 묘한 매력이라니...
첫 방영 직후 원작이 궁금해서 만화책을 읽었다는 M군에게 구걸하여 대강의 내용을 듣고 "오호!" 했다.
규 도령, 열심히 분발하시길!!!


<혼(魂)>(MBC)
플롯이 촘촘하게 얽힌, 웰메이드 호러? 드라마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첫 회 방영 다음 날 M군으로부터 "괜찮더라"는 - 결국 재미있다는 의미 - 얘기를 들었다.
심리적인 공포보다 시각적인 공포에 더 벌벌 떠는 내게< 혼>은 처음부터 볼 일이 없는 드라마였다.
분장이 착하든 말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이 일단 너무 무섭다. 그런데 괜찮은 드라마라니, 당연히 갈등이 된다.
M군에게 <이야기 속으로>보다 무서운가 물으니 "그것보다 덜 무섭다, 무서운 장면은 안 나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M군의 '무서운' 기준은 나의 '무서운' 기준과 꽤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방영 첫 주는 패스. 그리고 두번 째 주.
신문에서 연쇄 살인범의 내용을 읽다가 궁금하여 M군에게 물었다.

"연쇄 살인을 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가 어느 날 형집행이 중지되고 사면받아 사회에 다시 나왔을 때, 그 사형수는 예전과 다른 삶을 살까?"
"나한테 묻지 말고 <혼> 봐라. 거기에 그 얘기 나온다."

뭬야? 이런 철학적인 얘기가 납량특집 공포드라마에 나온다고?
아... 다시 고민... 결국 무서움을 무릅쓰고 5회 중반 부터 보게 된 <혼>은 음, 역시 무섭다. 그래도 '그들'이 나올 장면을 미리 예상할 수 있어 적절한 타이밍에 쿠션방어 신공을 써 가면서 열심히 봤다.
<혼>은 마지막까지 다 봐야 드라마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제대로 다 봤을 때의 얘기지만.
'선(善)'과 '악(惡)'의 본성을 다룬 수작 중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예쁘장한 요한의 첫 등장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몬스터>는 '선'한 덴마와 '악'한 요한의 대립보다는 그들을 비롯, 그들 주변인들이 자기 안의 본성을 다루는 의지에 대한 고민이 돋보였던 작품.
그런데 왜 이 작가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 끈 떨어진 연마냥 늘 결말이 지지부진할까...


<선덕여왕>(MBC)
사극 드라마는 잘 안 보는데 일단 재미를 못 느낀다. 재미의 포인트를 못 잡겠다고나 할까.
주인공 대개가 실존인물인 사극의 특성상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는 운명론적 전개와 영웅주의에서 비롯되는 파시즘, 그것들을 적절히 미화하는 감상적인 신파가 부담스럽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요즘 느무느무 재미있게 보는 <선덕여왕>. 사실 역사극이라고 하기에 <선덕여왕>은 애초에 '역사'에서 한참 벗어나 있으므로 별 부담이 없다.
천명이 덕만의 정체를 알게될 즈음부터 과연 덕만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난제를 어떻게 풀고 공주의 위치를 되찾을까 몹시 궁금했는데 이번 주에 방영한 27, 28회가 그 대답을 들려주었다. 게다가 바윗덩어리마냥 꿈쩍도 안 하는 월천 대사를 어떻게 설득할까 궁금했더니만 첨성대로 보이는 밑그림을 보는 순간 "우와아앗! 작가님하!" 하였다.

학부 시절 한 학기 전공 수업 커리큘럼이 통째로 '제로섬(zero-som) 게임'인 적이 있었다. (교수님 주전공이 게임이론이었다)
3~5명의 인원으로 팀을 꾸린 다음 게임이론을 적용해 한 학기 동안 증시에서 수익을 내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가장 큰 수익을 낸 팀이 우승하는 거였다. 덕분에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학기 내내 코스피에 동그라미를 친 일간지의 경제면을 들고 다녀야 했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속한 팀이 우승하였다. 그때 받은 교수님 사인이 든 우승 상품은 지금도 당당하게 책장에 꽂혀 있다. ㅡ 이때 나는 과 동기들에게 시기와 부러움을 동시에 샀는데 동기들은 내가 팀에서 한 것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나를 엄청 구박했다. 사실 동기들이 옳기도 하고 한편 나 자신 억울한 것도 있다. 어찌 된 것인고 하니 개강날 첫 수업에 빠졌는데 첫날 수업 과제가 '수업 끝나는대로 팀을 꾸려서 제출할 것'이었고 이때 팀원 한 명을 구하지 못해 난감해하던 어느 팀에서 행방불명인 나를 넣어 팀을 완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 팀이 부족한 팀원을 구하는데 애를 먹은 이유가 재미있다. 바로 팀원들이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휩쓰는 선배들이었던 것. 그러니까 겁을 먹고 슬금슬금 내빼던 동기들이 대신 나를 밀어 넣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기들의 예상과 달리 선배들은 과제 내내 내게 무척 잘 해주었고 "우리가 다 할 테니 넌 마지막에 발표만 해" 하였다. 그렇지만 나도 양심이 있으므로 자료수집은 열심히 했다.
게임이론 중 제로섬게임의 대표적인 예로 윌리엄 스톤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가 있다. 제수알도의 소설『그날 밤의 거짓말』은 '죄수의 딜레마'를 모티브로 삼고 있고, 또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 Beautiful Mind>의 주인공 존 내쉬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균형이론' 역시 '죄수의 딜레마'를 바탕으로 한 게임이론이다. 이 이론을 가까운 실생활에 적용해보면 국민놀이인 '고스톱'을 들 수 있겠다. : A가 '고'를 부른 상태에서 B와 C는 자신의 손해를 최소화하려고 서로 협력을 도모한다.
『죄수의 딜레마』윌리엄 스톤
범죄 조직의 두 조직원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각각의 죄수는 독방에 갇혔고, 다른 죄수와 이야기하거나 메시지를 교환할 수단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그 두 사람을 주된 죄목으로 유죄 입증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시인했다. 그들은 둘 모두를 경미한 다른 혐의로 1년형에 처할 계획을 세웠다. 동시에 경찰은 각 죄수에게 파우스트적 협상안을 제시한다.
만일 동료의 죄를 증언하면 자신은 석방되는 반면, 동료는 주된 죄목에 따라 3년형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두 죄수 모두 동료의 죄를 증언한다면, 둘 다 2년형을 받을 것이다. 죄수들에게는 숙고할 만한 시간이 다소 주어지지만,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다른 죄수의 결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 p.178

위 내용을 정리하면,
1) 둘 모두 죄를 부인하면 1년 형
2) 동료의 죄를 증언하면 자신은 석방, 동료는 3년 형
3) 둘 모두 동료의 죄를 증언하면 둘 모두 2년 형
이다. 제일 나은 선택은 물론 1) 번이다. 하지만 대부분 1)번을 선택하지 않는다.

<선덕여왕> 27-28회 재미의 포인트는 덕만과 미실의 '수 읽기'다.
미실은 덕만이 내어놓은 '진패와 허패'를 두고 말하자면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다. '일식이 일어날 것인가, 안 일어날 것인가'를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 결정에 천신의 위치가 달려 있다. 천신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든가, 아니면 잃든가.
극중에서 혼란해하는 미실에게 설원이 '그들의 판에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충고하는데 사실 이것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죄수의 딜레마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데서 발생하는 갈등이므로 미실로서는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일 수밖에 없다. 상대인 덕만은 어차피 잃을 것이 없기 때문. 또한 사람을 통찰하는 미실의 능력이 여기에선 오히려 독이 된다. 그러니까 자기 꾀에 넘어간 것. 게임이론의 성패는 상호협력에 의한 신뢰에 달려 있는데 ('균형이론') 미실이 '덕만이 아직 사람을 쓸 줄 모른다'는 대사를 하는 순간 미실의 선택이 틀렸음을 예상할 수 있다.
내용 자체는 반전이랄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런 에피소드는 에피소드 자체를 즐기는 것도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한 방법이다. 이를테면 미실은 지게 되어 있는 판이었고, 덕만은 이기게 되어 있는 판에서 비범한 인간도 결국 보편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그것이다. 그나저나,

- 1. 유신랑네
가족이 모두 미스캐스팅이다. 서현공은 배우의 분위기와 극중 역할의 비중이 엇박자를 타는 듯해 매번 '그냥' 화면만 채우는 주변인물 느낌이고, 예진마마는 <궁>, <꽃보다 남자>로 이어지는 유사한 캐릭터에 <세바퀴>의 모습까지 겹쳐서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엄포스. "나보다 나이도 몇 살 어린 놈이" 라는 덕만의 대사만 없었어도...
- 2. 신라는 작고도 좁은 나라~
보면서 매번 박장대소하는 장면인데 '어딜 다녀오라'하면 다녀오는데 반나절도 안 걸린다. 그도 그럴 것이 배경은 삼국시대, 경주가 수도인 경상도 '신라'인 것이다. 백성 다스리기 참 쉬웠겠다.
- 3. 디테일 - 28회
200년 전에 분실했다는 비석 반쪽이 땅 밑에서 솟구치는 장면을 보면서 90년代 중국 무협드라마를 떠올린 것 까지는 내 감상이니 그렇다고 치고 돌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웬 콘크리트 비석에 대놓고 너무 티나는 폭약까지. 요즘 드라마는 수출도 곧잘 하던데 신경 좀 쓰시지...
- 4. 진패, 허패
월요일 방영 분(27회)에서 덕만이 비담에게 '허패' 얘기를 꺼낼 때의 장면은 홍콩 영화 <지존무상>과 허영만 화백의 <타짜>를 떠올리게 했다. 문득 궁금하다. 진패를 허패라고 속이는 것과, 허패를 진패라고 속이는 것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파트너(kbs)
구성이 치밀하다거나 얘기가 독창적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어 챙겨 본 드라마.
도대체, 왜, 그 어려운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변호사가 된 여자 주인공은 툭하면 칭얼칭얼 징징 대고, 수습도 못 할 거면서 일 저지르고 다니는 건지 이해불가.
은호보다 태조에게 무게 중심을 실어 주었다면 제법 트렌디한 법정 드라마가 나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버지의 로펌과 반목하는 무거운 태조가 아니라 유능하고 능력있는 가벼운 태조 얘기다. 소위 오렌지족 변호사 태조는 순간 순간 가슴 설레이게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구성은 <히어로> 같은 일드 수사물과 유사하다. 첫 회에서 마지막 회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 - 진성그룹 공장 폐기물 유출 사고가 있고, 작은 줄기 - 매 회마다 등장하는 사건 사고, 법정 에피소드가 있다.
마지막 회에서 그때까지 유들유들하게 이김 변호사들을 가지고 놀던 냉정한 한부장이 갑자기 무너지는, 그것도 캐릭터가 코믹하게 무너지는 장면은 내용상 옥의 티였고 - 사실 한부장을 심문할 때 <어 퓨 굿맨: A few good man>의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과도한 짜깁기 편집은 많이 아쉬웠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본 드라마.


기타: 음악 방송 - 요즘 아이돌 그룹
유행인지 요즘 떼지어 나오는 아이돌 그룹들. 인기 있거나 소속사가 힘있는 그룹은 여기저기 TV나 기사에 계속 등장하니 그룹 이름이나 음원 상위권에 있는 노래 정도는 알지만 솔직히 그룹과 노래는 도무지 매칭이 안 된다.
그런데 M군이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 이름은 물론 노래까지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얼마 전까지, 정확하게는 영화 <아이언 맨> 개봉 전후까지, 로버트 다우니 Jr. 가 흑인인 줄 알았다는 그 M군이!
쿠바 구딩 Jr.의 'Jr' 때문에 헷갈렸다지만 사실 M군에게 이런 일은 흔하다. 참고로 M군은 나보다 영화를 세 배 정도 더 많이 본다. 그런 M군이 나는 이름만 간신히 아는 '오전반', '오후반'은 물론이고 '방과후'까지 모조리 꿰고 있다뉘!! 비결은, "3사의 음악방송 프로를 3주쯤 달아서 봤더니 그냥 알아지던데" 라고...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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