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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Alice's Casket
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8027 bytes / 조회: 1,310 / ????.04.12 23:16
장바구니와 보관함을 오가며


1. 절판되기 전에 비우자!

경기불황을 체감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를 터인데, 제 경우 최근 불황을 절감하는 때가 바로 책을 구입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구입할 때 가장 큰 고려 대상은 번역이 아닌 '절판'이 됐습니다. 보관함에 담아 두었던 이 책이 혹시 절판되면 어떡하나, 전에 안하던 고민을 하게 된 거지요. 더 불행인 건 2,3년 전만 해도 중소형 출판사만 '절판 전 구입' 고려 대상에 들었는데 지금은 거대출판사도 포함되어 고민의 대상도 늘었습니다. 하긴 출판업계에 호황이던 때가 언제 있었나 싶지만서도. 그래도 아니 이 작가의 이 책조차 절판이란 말인가!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합니다.
결론은 읽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작가는 고민하지 말고 그때 그때 내 손에 쥐는 게 답이라는 거.
그래서 보관함 비우기에 돌입했어요.

- 보관함을 비우기 위해 보관함을 채우려고(?) 머리에 쥐나게 목록을 뒤지는데 문득, 
내일 일도 모르면서 내일 읽을지 한달 뒤 혹은 1년 뒤에 읽을지도 모를 책을 고르고 있는 지금의 조급함이 어째 부질없이 느껴지는 허무함...; 


2. 노희경, 대본, 드라마

그녀에게 무심했던 사이, 그동안 TV에 방영됐던 노희경의 드라마 대본집이 거의 다 나온 듯 합니다.
위 '1'의 이유로 보관함을 1차로 비우면서(앞으로 몇 차례 더 비워야 됩니다, 흑흑) 노희경의 대본도 주문할까 하다, 대본이 아니라 그녀의 드라마를 다시 보기로 했어요. 사실 <굿바이, 솔로> 때부터 그녀의 드라마를 안... 본 게 아니라 못 봤습니다.
그녀의 드라마 중 가장 좋았던 건 <화려한 시절><바보 같은 사랑>이고,
그녀의 드라마 속 대사는 다 그렇지만 특히 폐부를 찌르는 듯 대사가 강렬하고 아팠던 건 <거짓말>이에요.
늘 바라는 거지만 작가님, 대본 말고 소설 한 권 내주실 생각은 없는지...


3. 다시 보자 이 작가!

오래전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개인적인 체험』을 처음 읽은 후 그는 내게 자전적 소설을 쓰는 그냥 무미건조한 작가로 계속 남아 있었어요. 그 뒤로 그의 작품이 숱하게 시선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한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건『연인』의 뒤라스도 마찬가지. '연인'은 사실 영화로 본 것이지만 제인 마치를 훑는 카메라이 시선의 워낙 끈적거렸던 탓에 원작 역시 그저 그런 연애소설이고 연애소설 작가인 줄로만, 이제껏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가오싱젠. 가즈오 이시구로와 늘 헷갈리는 - 도대체 왜? 이름부터가 중국인, 일본인인데 도대체 왜? - 그가 극작가로서의 재능이 더 빛나는 작가라는 걸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내 책장엔 그의 작품이 진즉에 꽂혔을 텐데, 그랬다면 나는 오늘 그의 절판된 책들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에공, 후회는 인생의 영원한 덤인가 봅니다;;


4. 가격이 떨어지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력의 무지개. 카뮈 전집 특별판. 연암집. 셰익스피어 세트.


5.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멘붕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명한『안나 카레니나』첫 문장의 번역은 출판사 별로 각각 이러합니다.

-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펭귄클래식코리아, 윤새라)

-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닮았고, 불행한 가족은 제 나름대로 불행하다.(작가정신, 윤우섭) 

-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 연진희)

-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문학동네, 박형규) 

-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범우사, 이철)

제가 가지고 있는 건 문학동네 판입니다. 여기서 1차 멘붕.
고만고만, 나름나름이라니... 무슨 라임을 넣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다음은 펭귄 사의 첫 구절 영문입니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여기서 2차 멘붕.

어차피 원작이 러시아어인데, 영어 문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은.
민음사 판을 한 질 더 살까 했던 고민을 집어치우고 그냥 집에 있는 펭귄 판 영어 원서를 읽기로 했어요.
다행인 건 톨스토이의 영문본은 의외로(?) 가독성이 좋고 쉬워서 잘 읽힌다는 점... 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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