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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6838 bytes / 조회: 925 / ????.05.16 04:12
내 심장을 두들겨대『동반자살』by 가와바타 야스나리


동반자살

그녀가 싫어 도망친 남편한테서 편지가 왔다. 이 년 만에, 먼 지방에서다.
(아이가 고무공을 갖고 놀지 못하게 해.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그 소리가 내 심장을 두들겨대.)
그녀는 아홉 살짜리 딸에게서 고무공을 빼앗았다.
다시 남편한테서 편지가 왔다. 지난번 편지와는 발신처가 달랐다.
(아이에게 구두를 신겨 학교에 보내지 마.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그 소리가 내 심장을 짓밟아.)
그녀는 구두 대신 보드라운 펠트 짚신을 딸에게 신겼다. 소녀는 울며 결국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시 남편한테서 편지가 왔다. 두번째 편지로부터 한 달 후였는데, 그 글씨에는 갑자기 늙은 티가 풍겼다.
(아이에게 사기그릇에 밥을 담아 먹이지 마.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그 소리가 내 심장을 찢어.)
그녀는 딸이 세 살배기 아기인 양 자신의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였다. 그리고 딸이 정말로 세 살배기일 때 남편이 다정하게 곁을 지키던 무렵을 떠올렸다. 소녀는 제멋대로 찬장에서 제 밥그릇을 꺼내 왔다. 그녀는 재빨리 빼앗아 마당의 돌 위에 내팽개쳤다. 남편의 심장이 찢기는 소리. 다짜고짜 그녀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자신의 밥그릇을 집어던졌다. 그런데 이 소리는 남편의 심장이 찢기는 소리가 아니잖아. 그녀는 식탁을 마당으로 내동댕이쳤다. 이 소리는? 벽에 온몸을 부딪히고 주먹으로 때렸다. 맹장지문에 창살처럼 내다박히는가 싶더니, 맹장지문 저편으로 나뒹굴었다. 이 소리는?
"엄마, 엄마, 엄마."
울면서 뒤쫓아 오는 딸의 뺨을 찰싹 후려쳤다. 오오, 이 소리를 들어라.
그 소리의 메아리처럼 다시 남편한테서 편지가 왔다. 지금껏 어느 때보다 더 낯설고 먼 지역이 발신처였다.
(너희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마. 장지문을 여닫지도 마. 호흡도 하지 마. 너희 집의 시계도 소리를 내선 안 돼.)
"너희들, 너희들, 너희들."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영원히 가냘픈 소리조차 내지 않게 되었다. 즉, 엄마와 딸이 죽은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녀의 남편도 베개를 나란히 한 채 죽어 있었다.
- p.76


단편집『손바닥소설』에 수록된「동반자살」이에요. 분량은 두 페이지 남짓이지만 다 읽고 나면 제목을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소설입니다.
가와바타의 단편소설집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한 것도 어느 리뷰어의 블로그에서 이 소설을 읽고서였어요.
그리고 현재까지 읽은 분량 중 가장 나은, 아니 그나마 유일하게 읽을만했던 것도 이 소설이었고요. 물론 더 읽어 보면 괜찮은 단편이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 어제 1/3쯤 읽은 이 책을 집어던지ㅡ… 지는 않았고저는 공공재산을 아끼는 민주시민이라 그냥 소파 옆 상 위에 툭- 얹었습니다.
네 번째 단편이던가 다섯 번째 단편이던가를 읽던 중에...
손바닥만한 길이만큼이나 얇고 작은 판형의 이 책을 마저 읽어야 하나, 관둬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일단 저 자신을 위해 뭔가 증명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어제 저녁에 M씨에게 전화해서 아무 거나 단편 하나를 골라 읽어줬어요. 길이가 짧으니까 가능했지만. 어쨌든.

감: "어때? 어때?" 

M: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감: "그래! 그거야! 나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그동안 책을 안 읽어서 내 독해력에 문제가 있나 했어! 내 독서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했어!"


했더니 "너한테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M씨께서 은혜로운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그에 힘을 얻은 저는 억울한 심정을 잔뜩 담아 "이런 글은 출판하지 말고 작가 혼자 만족하면서 읽어야 된다고 생각해." 투덜투덜 했습니다.
물론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동양인으로는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자신의 이름을 건 문학상도 있는 大작가예요. 그렇거나 말거나 이 작은 단편집은 정말 읽기 힘듭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1/3 읽는데 사흘이나 걸렸으며, 읽는 내내 계속 읽어? 그만 둬?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 중이고...
집에 그의 책이 얼마나 있나 확인해봤더니 두 권. 장바구니에 담아둔 게 두 권. 집에 있는 두 권을 다 읽기 전엔 그의 책은 더 구입 안 하려고요. 일어권은 유숙자 번역을 좋아하고 기대했던대로 문장은 역시나 정갈하지만 참 아쉽습니다.
궁금증을 못 참고 뒤적여 읽은 책 후면의 옮긴이말을 읽어봤어요. 
그중 공감 가는 부분은 (가와바타 연구자라는 일본인의 지적 중) '작품 수가 매우 많다는 점' 하나 뿐이네요.
게다가

『손바닥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 발상, 문체 등의 특징은 바로 가와바타 문학의 원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만 하다.

라는 부분을 읽고 나니,
흐아..., 이제 정말 심각하게 집에 있는 가와바타의 두 권의 소설이 걱정되기 시작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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