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수다 > 설(舌)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Alice's Casket
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6580 bytes / 조회: 787 / ????.06.02 02:02
두 남자의 수다


김태훈? 좋아합니다. 이동진? 당연 좋아해요. 영화? 에이~ 두 말 하면 입 아프죠.
최근 2,3년은 감정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 많이 못 봤지만 그래도 책 다음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김태훈과 이동진이 '영화 수다'를 하는 프로그램이라니, 이런 축복받은 프로그램을 봤나...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6.1일자 3회 방송을 봤어요.
코너는 4개고 각각 이런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1. 그들 각자의 영화관
화제의 인물을 초청, 두 MC만의 차별화된 질문으로 식상한 근황 토크가 아닌 게스트의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고 게스트가 주제에 맞는 영화 한편을 추천, 시청자에게 소개하는 시간

2. 영화 읽어주는 남자
이동진이 직접 선별한 영화계 이슈를 주제로 평소 시청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숨겨진  이야기와 극장가 한 주 동향 및 트렌드 등을 짚어본다.

3. 우리가 사랑한 배우들
시대를 뛰어 넘어 사랑받아 온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바탕으로 영화 전문 기자 주성철이 들려주는 한 배우의 영화와 인생에 관한 이야기

4. 영화 들려주는 남자
매주 한 편의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OST)을 소개하는 시간. 참여 뮤지션의 음반 및 곡 소개는 물론 영화와 사운드트랙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모두 공개한다.
 


3회를 본 소감은 기존 '출발 비디오여행' 류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 달리 네 개의 코너에서 선별한 영화 한 편을 가지고 '수다'를 떠는 포맷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기존 프로와 차별화를 두겠다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코너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아직 정돈이 안 된 듯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두 남자의 수다를 TV화면으로 보는 것으로도 저는 만족하기에, 부디 프로그램이 얼른 자리를 잡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참고로 3회 방송에 등장한 영화는 <나는 전설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빅 피쉬>인데 마침 세 영화 모두 저도 본 거라 개인적으로 두 남자의 수다에 더 집중이 잘 된 것 같아요. 
이중 <나는 전설이다>의 경우, 두 남자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저와 조금 달랐는데 덕분에 그냥 스쳐갔던 장면 - 이를테면 뉴욕 허드슨 강에 처박힌 항공모함 위에서 네빌이 혼자 골프를 치는 장면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뚝 떼어낸 장면인데도 참 외롭고 쓸쓸한 감성이 확 밀려오더군요.
반면 원작소설이 있는 만큼 원작과의 비교도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하긴 원작소설과 영화의 주제가 완전히 다른 길을 가니 어쩜 곤란한 화제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나는 전설이다>
는 리처드 매드슨 원작인데 사실 이 영화는 원작인 소설을 꼭 봐야 합니다. 소설을 보지 않으면 제목이 왜 '나는 전설이다'인지 알 수 없어요. 영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물론 영화도 재미있고 충분히 잘 만들었습니다. 호러장르에선 손꼽힐만한 수작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영화는 원작소설이 갖고 있는 주제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제목이에요. 영화에서는 네빌(윌 스미스 역)이 남긴 백신이 생존자들(=인간)에게 무사히 전해져 인류는 구원 받고 네빌은 전설이 된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는데 이 때문에 영화는 그냥 '좀비호러 영웅물'이 되어 버립니다. 네빌은 좀비들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영웅인 거지요.
하지만 원작소설은 '전설'에 대해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작소설은 중단편 길이의 호러소설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세계가 좀비들로 뒤덮이고 이제 남은 인간은 네빌 한 사람 뿐입니다. 좀비들과 네빌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영화에서 보여준 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하지만 결말로 치달을수록 두 장르는 점점 제 갈 길을 갑니다.
좀비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네빌은 점점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됩니다. 태양이 환한 대낮에 돌아다니는 좀비라던가, 좀비의 아이라던가, 좀비의 가족애라던가... 그렇습니다. 좀비들은 어느새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거죠. 학창시절에 배웠듯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입니다. 즉 좀비들은 짝을 지은 성생활을 통해 다음 세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좀비들을 대표하는 이들이 네빌에게 얘기합니다. 마지막 남은 인류인 네빌이 사라지면 좀비들은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구인류의 마지막 인간인 네빌이 존재하는 한 좀비들은 돌연변이 괴물, 이종생물일 뿐입니다. 그러니 네빌에게 스스로 사라짐으로써 신인류의 탄생을 여는 전설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전 소설의 주제가 더 좋았습니다. 아니 참신했다고 해야 할까, 작가가 얘기하는 종말론적 세기말적 여운이 굉장히 오랫동안 저를 사로잡았거든요.


사족 하나 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코헨 형제의 영화 중 <아리조나 유괴사건> 강추합니다. 87년도 작인데 재미있어요. 설명을 할 수가 없는데, 의미그대로 '재미있습니다'.

사족 또 하나 더.
<빅 피시Big fish>는 주변의 평이 굉장히 좋아서 일부러 찾아서 본 영화였는데 사실 전 그저 그랬거든요. 그런데 클래지콰이의 '호란'씨나 이동진 씨가 이 영화를 통해 개인사를 추억하고 또 나름대로 힐링했던 얘기를 듣다 보니 영화가 가진 매체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건 간섭이 아니라 관조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392건 14 페이지
설(舌) 목록
번호 제목 날짜
197 황현산『밤이 선생이다』중 ??.08.01
196 (바로 아래)G시장 책입니다 ??.07.31
195 조이스 캐롤 오츠, 존 어빙 링크 2 ??.07.30
194 트루먼 커포티 선집 ??.07.18
193 할배가 꽃보다 아름답다 <꽃보다 할배(2회)> 2 ??.07.14
192 올재클래식스 시리즈 7차분 링크 겁니다 ??.07.12
191 브레히트 선집 & 이상 전집 ??.07.09
190 How to read... '쇼펜하우어 문장론' 中 ??.07.02
189 잡설 ??.06.19
188 Word Power Made Easy 5 ??.06.14
187 부엉이와 올빼미의 차이 ??.06.13
두 남자의 수다 ??.06.02
185 구두 속 모래 한 톨 같은 '안톤 체호프' ??.05.31
184 사랑이 스러지는 순간『태연한 인생』by 은희경 ??.05.20
183 내 심장을 두들겨대『동반자살』by 가와바타 야스나리 2 ??.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