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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289 bytes / 조회: 983 / ????.11.28 02:36
어떤 소설을 말하는 것일까 -『책은 도끼다』中


박웅현의『책은 도끼다』를 읽던 중에,
'다음은 어떤 소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부분.

-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열차 밑으로 몸을 던져 사망.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프랑스의 지방 도시에서 비소를 음독하고 사망.

첫 번째는 '베로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임을 금방 알 수 있고.
문제는 나머지 두 갠데... 희한하게도 읽는 순간 머릿속을 뒤질 필요도 없이 바로 <안나 카레니나>, <보봐리 부인>이 떠오른다. 육하원칙도 다 못 채운 저 간단한 문장을 보고 그 많고 많은 소설 중에 하필 저 두 소설을 떠올렸을까 스스로도 좀 어이 없다. 그리고 잠깐 생각해보니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뭔가'를 하는 소설은 많지만 열차 밑으로 몸을 던지거나, 지방 소도시에서 음독 자살하는 내용은 저 두 소설 말고는 없었구나 싶다. 적어도 내가 읽은 범위에서는 그렇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 독서가 '주류'에 머물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알랭 드 보통은 2010년 이후엔 안 샀고 그래서 위 내용의 출처인『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도 책장에 없어서 본문을 확인할 수 없지만, 박웅현이 읽은 알랭 드 보통을 읽다 보니 어느새 검색창에 '보통'을 두드리고 있는 나는 쉬운 여자~
                                                                                
                                                         그래요, 저 귀 얇아요...

몇 년 전에 보통을 읽을 때도 블로그마다 가득하던 호평에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좀 더, 좀 더- 버티다 결국 진저리를 치면서 책을 내팽개쳤는데, 3년이 지나 보통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 마음이 동한 건 누군가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읽은 보통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 때문. 좀 더 분명하게는 '보통' 아니라 '박웅현의 보통'이 매력적이어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 것인데, 과거의 경험으로 이런 경우 대부분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났기 때문에 별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그나저나 목차를 보고 기대했던 '김훈'은 역시 별로다. 보통처럼 타인의 독서를 통해 다른 종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가도 있지만 김훈의 문장은 역시 김훈의 소설을 통해서 직접 느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사실 김훈의 글 맛은 문체가 9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단순히 누군가의 소개로는 그 진가를 10분의 1도 알기 어렵다.

저자의 詩를 감상하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여기서 '흥미'는 나와 다른 데서 오는 호기심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고은 시인의 시집『순간의 꽃』에 수록된 시들을 소개하는 장에서...

 

어린 토끼 주둥이 봐
개꼬리 봐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 p.151

 

이 시문을 읽으면서 나는 회화적 이미지 - 형태를 떠올렸는데 저자는 동적 이미지 - 오물거리는 주둥이, 살랑거리는 꼬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 차이는 마지막 문장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가 내겐 무미건조한 결말이 되고, 저자에겐 '이런 신기한 세상'이라는 감동의 대단원이 된다. - 그동안 내 시읽기는 실존주의적 서사를 편식한 게 아닌가 잠깐 돌아보게 된다.

시를 읽고 느끼는 공감각적 심상이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저자의 감성은 더 나아가 '동'(動)으로 귀결되는데 이게 매번 그러니 좀 유별난 감도 있다. 앞선 챕터부터 저자의 글 읽기를 쭉 따라가면서 공통적으로 읽혀지는 저자의 특징이랄지, 저자에겐 문장이나 단어에서 동적인 심상을 떠올리는 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운 한편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드는 것. 즉 처음엔 작가의 시선이 신선하지만 페이지가 꽤 쌓이면 저자의 다음 말이 짐작 가능하게 된다. 

같은 두부를 재료로 만드는 요리는 다들 제각각일 터. 결론은, 동일한 사전적정의를 앞에 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차이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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