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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s Casket
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956 bytes / 조회: 927 / ????.12.04 21:26
[tvN]한식대첩 감상


리뷰게시판에 가야 하지 않나 싶지만 아무래도 사변적인 기분으로 쓸 것 같은 예감에 '설'에 씁니다.

제 경우 오디션프로 중 그나마 심리적인 저항 없이 편안하게 보는 장르가 음식 맛을 겨루는 프로인데,
일단, 음식은 인간이면 누구나 할 줄 아는 것- 하는 것이고
둘째, 음식 맛이 없다고 넌 재능이 없으니 패자, 앞으로 음식은 때려쳐-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며
셋째, (특히 우리나라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저 남의 손에 먹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반가운 것이 음식이기 때문이에요.
덧붙여 다른 재능과 달리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의 음식은 음악이나 그림처럼 내가 닿을 수 없는 재능을 바라보는 경외심보다는 요리과정을 보면서 노하우를 배우는 지식습득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만.

마스터셰프코리아의 시즌오프 격인 한식대첩을 사흘에 걸쳐 몰아서 봤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오래만에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마셰코와 한식대첩의 차이라면 마셰코는 아마추어 경연, 한식대첩은 프로 경연이라는 건데 특히 한식대첩은 팔도의 지방색이 잘 드러나는 요리를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팔도음식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경연을 한다는 발상이 신선한 것 같아요.
이외에도 1인이 동일한 재료와 주제를 놓고 경합하는 마셰코와 달리 한식대첩은 2인1조가 미션과제인 주제나 재료가 주어지면 자기가 할 요리를 정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지역에서 직접 준비해오는 차이가 있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제가 응원했던 팀은 전남과 경남팀이었는데 참 묘하죠.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짧은 방송 시간 동안 응원하게 되는 걸 보면 말이에요. 어쨌든 경남은 도중에 탈락했지만 응원했던 전남이 우승해서 마지막까지 신나는 방송이었어요. 의외였던 건 결승을 겨뤘던 경북인데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고 생각했던 편견이 깨어졌달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경남과 경북을 구분 짓지 않고 '경상도음식'이라고 생각해왔더군요.
경남은 따뜻한 기후와 바다에 인접한 지역적 특성 때문에 대체로 짜고 매운 저장음식이 많다고 알고 있어요. 실제로 부산에 가서 음식을 먹어 보면 대부분의 음식 간이 짭니다. 사실 음식 맛을 잘 못 내는 사람이 하기 쉬운 음식이 양념이 강한 음식이거든요. 간을 짜거나 맵게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식재료의 신선도 보존이나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에 무뎌져서 결국 완성도에서 섬세함이 떨어지기 마련인 것도 사실이고요. 이번 경남팀은 참가자가 종부이셔서 그런지 담백한 음식도 많이 하셨는데 그럼에도 경북과 경남 모두 경합 과정에서 짜고 매운 음식 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경남 참가자를 하도 좋아하니 동네친구님이 이유를 묻더군요. 주변에 어른다운 어른을 본 지 오래됐는데 그 참가자는 어른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도제 관계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와 함께 참가했는데 이 아가씨가 과정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상호간에 호흡이 어긋날 때도 곧잘 있었는데 매번 아가씨를 탓하거나 호통치는 걸 못 봤어요. 보면서 내내 호감이었습니다.

경기도와 서울팀은 확실히 깍쟁이처럼 보이는 면이 있으시더군요. ^^
편집과 연출의 의도도 있었겠지만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데스매치에서 상대팀 2인 중 경연대상자 한 사람을 고를 때 동일한 모습을 보여줘서 역시 깍쟁이? 이런 기분이 들었어요. 여기서 깍쟁이는 '얄밉다'는 정서가 많이 포함된 의미입니다.
'서울은 대표음식이랄만한 게 있나?' 했더니 동네친구가 '궁중요리 있잖아'하더군요. 결승에 오른 두 팀이 다양한 식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냈다면 서울팀은 경합 내내 구이 아니면 전골을 했는데 그런 점에서 지역적인 특성이 이 팀의 발목을 잡은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승에 오른 두 팀의 공통점은 2인이 모두 요리를 한다는 거였어요. 1인이 각자 나왔어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분들이죠. 반면 2인 모두 기능장 자격을 가진 충북팀을 제외하면 나머지 탈락한 팀들은 대부분 리더와 보조로 역할을 나는 특징이 있더군요. 데스매치 같은 경우엔 두 명 중 한 명이 남아 요리를 하는 미션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모두 요리를 할 줄 아는 팀이 여러모로 유리하고, 또 경합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본인이 수습할 수 있기 때문에 팀웍을 유지하기도 좋고요. 리더-보조 조합으로 실패한 대표적인 팀이 경남과 강원도인데 경남은 젊은 아가씨의 실수로, 강원도 역시 젊은 아가씨가 미숙했던 탓으로 데스매치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탈락합니다. 참고로 충북팀은 긴장했는지 매운 고춧가루를 잘못 고르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탈락했고요.

방송을 보면서 가장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요리는 전남의 청국장 찌개였어요. 일간 레시피를 찾아보고 청국장찌개를 해봐야겠다 합니다.

시즌2도 얼른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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