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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6139 bytes / 조회: 1,063 / ????.03.21 20:19
'밀회', Fantasia D.940 그리고 '돈의 맛'


 

유튜브 영상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 소나타예요. 유명한 곡이죠.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영화나 드라마에도 꽤 삽입됐던, 슈베르트의 서정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곡이에요.
갑자기 웬 슈베르트인가 하면, JTBC에서 방영을 시작한 <밀회>를 봤거든요. 
2회를 연속해서 본 직후 드라마에 삽입됐던 슈베르트의 연탄곡 'Fantasia D.940(네 손을 위한 판타지)를 제대로 된 연주로 듣고 싶어 앨범을 뒤지는데, 이게 분명 있을 텐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예요. 그러다 한참만에야 내가 뒤지고 있는 게 쇼팽이라는 걸 알았어요. 머리 속에 블랙홀이 있는지 어느새 슈베르트가 쇼팽으로 탈바꿈됐던 거죠. 덕분에 간만에 쇼팽의 피아노곡도 한번 완주하고- play해 놓고 앨범을 계속 찾다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도 완주하고 결국 아르페지오에서 멈췄는데 그사이 만 하루가 훌쩍 지났습니다.ㅠㅠ 신선과 바둑을 둔 것도 아니고....;
여하튼 영상은 그 기념으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레이블은 루빈스타인의 연주가 꽤 알아주고 저 역시 곧잘 들었는데도 지난 새벽에는 그의 연주가 너무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더군요. 연주가 귀에 익은 후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데 왠지 폴리니나 아르헤리치처럼 타건이 강한 연주가 무척 땡기더라고요. 새삼 저 두 연주자가 베토벤 연주에서 더 큰 호응을 받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고 그쪽 세계 역시 백인백색 다양한 취향, 다양한 성향이 존재하는 세계지- 라는 당연한 생각을 조금 놀라운 기분으로 했어요.



 


영상은 오혜원과 이선재가 함께 슈베르트의 'Fantasia D.940'를 연주하는 장면이에요.

이제 2회 방영했지만 드라마 <밀회>를 전 꽤 재미있게 봤어요.
소위 가진 사람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얘기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니까 요는, 세상은 갑과 을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병도 존재한다는 거지요.
<밀회>에서 갑은 서영우/한성숙, 을은 오혜원 부부, 그리고 병은 이선재입니다. 이선재를 제외한 갑, 을의 인물들은 겉으로는 더없이 우아하고 고상하지만 알고 보면 작두를 타는 것마냥 치열하고 필사적이에요.
갑,을,병이 나오느니만큼 이들 권력 구도가 재미있는데, 일단 가진 거 없고 빽 없는 전형적인 서민인 이선재는 천재피아니스트입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오혜원은 능력은 있지만 그녀가 속한 사회에서 능력은 이력서 끄트머리에 한 줄 붙는 활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서영우/한성숙은 각각 회장님 딸, 회장님 부인이지만 자신이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에게 빼앗길까봐 늘 불안해합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회장님이야말로 진정한 보스몹, 슈퍼갑이 되는 건가요.
아름답고 순수해야 할 예술이 그 예술을 하는 인간이 욕망과 야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 덩달아 타락하고 추악해집니다. 이선재를 집으로 불러 그의 재능을 테스트하는 장면에서 오혜원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감동받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선재의 연주가 욕망이 배제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욕망을 숨기고 있는 을 오혜원과 달리 갑 서영우/한성숙은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그 방식이 굉장히 즉물적이다 보니 드라마 또한 원색적이고 자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작가가 영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인데 갑들의 머리끄댕이 싸움에 한눈을 팔다 보면 정작 '스무살 차이의 불륜'이라는 불편한 코드는 어느새 양념처럼 느껴지거든요. 저 세계는 뭐든 가능하겠구나라고, 소위 '쎈' 맛에 익숙해지는 거지요. 
덧붙여 작가가 환갑이라는 걸 알고 놀랐어요. 오혜원과 이선재가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메신저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두 사람의 대사가 아주 젋거든요.
<밀회>에서 '돈'이 소구되는 방식은 얼핏 영화 <돈의 맛>을 연상시키는데, 결론은 그들만의 리그인 거죠.


마지막으로 한 곡 더...

 

영화 <해피엔드>에도 삽입됐던 Piano Trio no.2 중 2악장 Andante con moto 입니다.
영화 OST에 곧잘 삽입되기도 해서 귀에는 익지만 의외로 제목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곡입니다. 말년의 슈베르트에게 그나마 약간의 인기와 돈을 가져다 준 곡이지요.
슈베르트는 전반적으로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곡가예요. 그의 작품을 듣다 보면 확실히 기시감 같은 게 곧잘 느껴지는데, 베토벤 역시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기시감이 있지만 (제 막귀 기준으로) 피협 3번 이후로 넘어가면 모차르트의 영향력에서 서서히 그러다 완전히 벗어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의 문체만큼이나 작곡가의 악보 역시 창작자의 개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고유 지문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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