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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9096 bytes / 조회: 1,452 / ????.03.30 20:58
A.카뮈의 '이방인' 번역 논란의 한 풍경


출처: http://cafe.naver.com/mhdn/73021
(감나무 덧 : 읽기 편하게 엔터 편집했어요. 그리고 구분을 위해 원문과 세 출판사의 번역문은 박스 처리했습니다.)


[새움출판사 블로그에 게시된 글]

선입관을 버리고 아래 문장을 한 번 보자.
"Tu m'as manque, tu m'as manque. Je vais t'apprendre a me manquer."
"You used me, you used me. I'll teach you to use me."
직역하면, “너는 나를 망쳤어. 나를 망쳐놨다구. 날 망쳐놨으니 가르쳐주지.”가 된다.
영어 문장은 “너는 나를 이용해 먹었어.나를 이용해 먹었다구. 나를 이용해 먹었으니 가르쳐주지.” 정도?
이걸 역자는
“네년이 날 골려 먹으려 했겠다. 나를 골려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지” 
라고 옮겨두고 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역자는 manque를 moquer(골리다, 조롱하다)로 잘못 본 건 아닐까?).
같은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하는 말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옮길 수 있을까? 역자는 그 말을 하는 화자의 어투는 딱 저래야만 한다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치사하고 악랄해 보이는…… 그래서 옮긴이는 화자가 하는 말마다 위에처럼 원본에는 있지도 않은 욕설(이년, 저년, 네년)을 친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투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이며 배경 등을 드러내는 것은 문학의 기본인데, 옮긴이는 그런 상식에 충실하려 한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화자가 원래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

그런데 이러한 선학의 오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학자로서나 번역가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엄지로 추켜지는 선학이기에 그분이 잘못 끼워놓은 단추는 이후 나온 그 숱한 중역본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가 나를 속여? 나를 배신해? 앞으로 날 속이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지.
(열린책들 이방인 김예령 역. 앞서 레몽의 주먹다짐에 각개목까지 등장시킨다. 옮긴이의 분노가 느껴진다.)
가 날 골탕 먹였어. 네가 날 골탕 먹였다고. 골탕 먹이는 게 뭔지 내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시공사 이방인 최수철 역, 앞서 누군가 댓글에 이분의 번역은 어떠냐고 물어서 책을 구해보았다. 보고 있는 대로이다.)
니가 날 우습게 봤어. 니가 날 우습게 봤어. 내 생각이 간절하도록 만들어주지.
(문학동네 이인 이기연 역.이분은 정말 원본을 가지고 하긴 한 걸까?의역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인용을 보면, 이 단순한 문장을 두고도 모두가 다 다르게 해석해 놓고 있다는 사실이 우선 눈에 띄는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에 의역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 단순히 레몽은 ‘위험하고 폭력적인 인물’이라는 김화영식 이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누가 더 레몽을 ‘나쁜 놈’으로 의역해낼지를 다투고 있기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이래 놓고 보니, “설마 저 쟁쟁한 학자들이 전부 틀리고 당신만 맞다는 것이냐?” 의심스러울 게 당연한데, 이쯤 되고 보니 정말 나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말 그 외부적 포장들은 다 걷어버리고 눈앞의 문장만을 보라. 거기에 진실이 있는 것이다.

[문학동네 발행 <이인> 번역가 이기언 선생님의 답변]

원문은 이렇습니다.
"Tu m'as manque, tu m'as manque. Je vais t'apprendre a me manquer."
manquer 동사에는 여러가지 용법이 있는데, 간접타동사 manquer a qn의 의미는 "... 를 우습게 보다/소홀히 대하다"의 뜻이고,
자동사 manquer 에는 "Tu me manques"(네가 그립다. 네가 보고 싶다)에서처럼
"몹시 그립다, 보고 싶다, 간절하게 생각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카뮈가 두 가지 용법을 써서 일종의 말놀이를 한 것인데,
앞의 "Tu m'as manque"는 간접타동사이고,
뒤의 "Je vais t'apprendre a me manquer"는 자동사로 쓴 것입니다.
(이 네이버 댓글에서는 불어의 악센트 지원이 안 되네요. 정확한 불어 악센트까지 확인하시려면, 새움출판사 블로그 http://saeumbook.tistory.com/332 에 들어가보세요. 거기에도 댓글을 달았습니다.)

[문학동네 답변에 대한 새움편집부의 답글입니다]

새움지기 2013/09/24 17:22
새움편집부입니다. 의미있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상당히 까다로웠던 부분인데, 그래서 김화영님도 저렇게 뜬금없이 번역을 해두셨겠지만, 이 문장만 떼내어서보면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이 옳은 것같다고 하십니다. 다만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은 전체적으로 너무 의역이 심한 게 아니냐는 말씀이셨다고 합니다. 제대로된 번역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이니 앞으로도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라 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위 새움편집부의 답글에 대하여]

맨 위의 게시글에서, “(문학동네 이인 이기언 역. 이분은 정말 원본을 가지고 하긴 한 걸까? 의역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고 단언한 것에 대해 “이 문장만 떼내어서 보면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이 옳은 것 같다고 하십니다”라고 말하는 게 타당한지 모르겠군요. “이분은 정말 원본을 가지고 하긴 한 걸까?”라며 비아냥으로까지 느껴지는 잘못된 지적에 대해 어떤 사과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다만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은 전체적으로 너무 의역이 심한 게 아니냐는 말씀이셨다고 합니다”라니요.

가전제품 사용설명서 번역이라면 모르되 문학작품의 번역은 번역가의 주관적인 작품 해석을 거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에서는 여러 번역본이 각기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움출판사의 판본도 그 여러 번역본 중에 하나로 의미 있게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카뮈의 <이인(혹은 이방인)>에 관한 한 “제대로 된 번역서”는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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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뱀발_

해당 페이지를 읽어 보면 새움의 역자는 김화영 뿐 아니라 기존 번역자 모두에게 '번역오류'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여튼, 책이 드디어 출간됐는데 역자(이정서. 필명)가 해당 문장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하네요.
번역은, 정답이 없죠. 당연한 얘기지만 '내 번역이 최고'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이유는 '기술'만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인데, 구글번역기가 여전히 사전 기능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 그 단적인 예죠.
하지만 기존의 번역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번역, 새로운 시도는 긍정적인 현상이고 또 응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토록 공격적이고 날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책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논의의 장이 형성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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