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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4814 bytes / 조회: 1,126 / ????.06.19 16:14
끊이지 않는 문단의 표절 의혹


이응준이 기고문을 통해 신경숙「전설」과 미시마 유키오「우국」의 표절을 제기한 이후 신경숙작가와 창비(17일자)가 성명을 내면서 오히려 기름에 불붙은 형국인 최근 표절 논란을 보면서...

 

기사가 나온 지 사흘째.

두 단편의 표절 여부가 광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형세인데, 기사 몇 개를 읽으면서 재미있달까 의외로웠던 부분은 두 단편 중 하나만 읽어 유사 여부를 알지 못했다는 몇몇 인터뷰이들의 내용이다. 특히 놀랐던 건 '우국'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는 신형철의 답변서(한국일보)인데, 업계나 직간접적 업계종사자들의 독서의 저변이 의외로 좁구나 싶었다. 아울러 이런 배경 덕분에 암암리에 또는 공공연하게 문학계 표절이 횡행하는가도 싶고. 같은 맥락으로, 2000년 전후에도 같은 문제가 대두었으나 흐지부지 되었던 것이 15년 만에 다시 발화된 건 아무래도 인터넷 환경의 변화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전국에 뿔뿔히 흩어져있는 집단지성을 단시간에 불러모을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온라인 광장 뿐이므로. 게다가 스마트폰 덕에 굳이 내 집 안방이 아니라 거리, 직장, 산과 들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공유한다. 신경숙 작가와 창비의 성명 직후 이응준은 본인의 블로그에 '독자들이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는데 이 역시도 전국이 기가바이트망 광랜을 쓰는 인터넷 환경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위 '하나만 읽은' 무리에 나도 포함된다. 나는 신경숙과 미시마 유키오의 국내 출간작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은 거의 다 읽은 반면 신경숙의 소설은『엄마를 부탁해』만 읽은 탓에 두 단편의 유사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 작가는 읽고, 한 작가는 안 읽은 가장 큰 이유는 미시마 유키오는 한창 책을 읽던 시기에, 신경숙은 한창 책을 사들이던 시기에 관심을 가진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응준의 기고문은 그래서 더 놀라웠고 이 놀라움은 그대로 최근 몇 년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는 않은 자기반성으로 이어졌다. * 내침김에 확인해보니『감자 먹는 사람들』을 구입한 게 2011.3월이다. 아... 놔...;

 

예전에도 썼지만 제법 긴 독서력에 비하면 국내 작가의 책을 읽은 지는 얼마 안 된다. 양적으로도 국외소설에 비해 현저히 적다. 국내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2008-9년 부터인데, 국내와 국외 문학에 대한 편식은 유년기 독서의 시작이 세계명작동화였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 중딩시절 외가에 놀러갈 때마다 이모 책장에서 뽑아 읽었던 신달자, 공지영 등의 소설이 통 재미가 없었던 게 원인일 수도 있다. 지금이라고 국내여성작가 특유의 신파와 청승, 자기고백적 비탄이 새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 않은' 자기반성을 하는 김에 자기변명도 해보자면 팔리지 않는 책은 절판하는 출판사 관행 탓이 크다. 보관함에 담아두고 어느 날 주문하려고 열었다가 품절, 절판을 몇 번 겪고나서는 일단 사서 내 책장에 꽂아놔야 안심이 되는 버릇이 생겼다. 거기에 더해 도서정가제 개정이 겹치면서 작년 한 해는 참 징그러울 정도로 책을 샀는데, 그렇지 않아도 3,4년 전부터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 판에 책 사느라 정신이 없었던 작년은 읽은 책이 채 서른 권이 안 된다.

 

표절 행위의 기저에는 '설마 알겠어'라는 심리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 10년 전이라면 가능한 얘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랜선으로 지구 상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까발리는 시대가 아닌가.

'읽지 않았다'는 작가의 변이 그저 애처롭다.

 

표절 파문 덕분에 구입하고 무려 만 4년 만에 꺼내 읽은 신경숙의 단편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어「전설」만 우선 읽었지만, 사실 참 좋았다. 만약 표절과 무관하게 만났더라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장에 가득한 그녀의 책이 보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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