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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4442 bytes / 조회: 1,026 / ????.06.20 01:38
'인문고전'이 뭐길래


:::『리딩으로 리드하라』48p까지 읽고 중간 잡설.

 

작가 이지성과 차유람의 결혼 발표 후 각 커뮤니티, 특히 남초 중심 커뮤니티의 게시판이 탄식으로 도배됐는데 그 반응이 재미있다. 대개 이런 경우 '감히 우리 차유람을!' 하는 반응이 정상인데 어쩐 일인지 '하필 이지성과!' 라는 반응이 대세인 것. 도대체 이지성이 왜? 궁금하기도 하고 그동안 사모으기만 한 책도 읽을 겸 그 시작으로 이지성의 베스트셀러인『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선택, 읽기 시작. 그런데 독서 직후부터 아, 이 난감함을 어찌할꼬.

 

제목이나 표지디자인이 더도 덜도 아닌 딱 자기계발서라, 온오프 책 관련 페이지에 한창 노출될 때도 관심이 없던 이 책을 뒤늦게 산 건 작년에 책을 막 쓸어담다시피 할 때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확인 - 리뷰나 평, 미리보기 뷰 확인 은 하고 샀다.

 

하고 샀는데...

 

'리딩'을 10여 페이지 읽다, 킬링타임용 장르소설을 며칠 읽고, 다시 '리딩'으로 돌아와 읽는데 48페이지만에 든 생각은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이 목차만 넘어가면 달라지려나'.


세계 석학, 천재, 리더들의 공통점은 인문고전을 읽었다가 저자의 주장인데 '리더 - 인문고전' 혹은 '인문고전 - 리더'로 이어지는 저자의 귀납식 전개에 공감이 안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잘못된 명제 때문이다. 단적으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금지한 건 '독서'가 아니라 '문자'이며, 이 배경에는 단순한 지배자의 계급적 음모가 아닌 보다 복잡한 역사적, 환경적, 문화사회인류학적 기저가 있다. 가까운 예로, 90년대 이후 대한민국 인문학의 위기는 지배계급의 음모가 아니라 순전히 먹고사니즘 때문이다. 모든 공교육의 목적이 '취업'으로 대동단결하는 사회구조에서 스펙 쌓기도 바쁜 청년들에게 철학책을 읽어라, 고전을 읽지 않으면 리더가 되지 못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다. 자칭 다독가인 저자는 정작『88만원 세대』는 안 읽은 듯하다. 인문고전만 읽지 말고 시대의 소리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제목부터가『독서는 취미』라는 책도 있지만 '취미'란에 '독서'를 한번쯤 안 써본 사람이 있을까 싶게 흔한 취미활동처럼 보이는 독서는 실상 사치스러운 취미이다. 책을 살 돈이 있어야 하며, 책을 방해받지 않고 읽을 공간이 있어야 하며, 책을 읽는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만이 누릴 수 있는 취미가 바로 독서이기 때문. 즉 물적, 정신적, 공간적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할 수 있는 취미가 독서다. 하물며 저자가 리더가 되고 싶으면 반드시 읽으라고 외치는 건 질적양적 독서 내공이 필요한 문사철이다.

 

불과 5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에 이름을 올린 책만 해도 양적 질적으로 상당한데, 책 후면엔 아예 분야별, 연차별로 추천도서가 정리되어 있다. 당연히 저자가 이 레퍼런스를 다 읽었다고 가정하고, 저자는 양적독서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질적독서는 아무래도 실패한 듯 하다. 그러고 보면 양적축적이 반드시 질적 비약으로 도래하는 건 아닌 모양.

 

인문학은 위기인데 어째 출판계는 '인문, 고전, 재해석' 키워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모양새다.

책장에 비슷한 책들을 잔뜩 꽂은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쨌든.

매끈하게 잘 빠진 기획서같은 이 책을 읽는 데 들인 돈과 들일 시간과 이 책을 고르면서 포기한 기회비용을 위해서라도 완독 후에 "역시 베스트셀러구나" 납득할 뭔가를 주울 수 있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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