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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2010 bytes / 조회: 806 / ????.05.10 03:24
고전, 다시 읽기


처음 '책'이라는 것을 읽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활자 중독증'이라고 생각했다.
영상이 주는 빠르고 쉽고 자극적인 세계에 재미를 붙인 후에도 그런 생각은 여전했다. 사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쉽게 익숙해지는 반면 한 번 익숙해진 것은 무의식의 어딘가에 체화된 채로 스스로 지속되는 관성이 있기 마련이라서 그것을 잊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활자'에 중독되어 있었다.
언젠가 우리말, 우리글이 없는 낯선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을 때였다. 그때 내가 가장 절실하게 원했던 것이 활자였고 언어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서 나는 학교 화장실에 놓여 있던 학교 신문, 수업 때 나눠주던 열람표는 물론이고 과자 포장지 뒤에 있는 성분 표시까지도 모두 닥치는대로 챙겨와서는 감동하면서 읽곤 했다. 집을 떠날 때 제일 먼저 챙기는 것도 책이었고 어딘가 낯선 공간에 남게 되었을 때 찾는 것도 '글자가 있는 무언가'였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에서, 파이가 227일 간을 태평양 위에서 떠돌다 마침내 문명 사회로 돌아와서 묵었던 호텔에서 읽을 거리, '성경'을 발견하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성경을 세계의 모든 호텔에 비치하는 운동 기구》에 매달 후원금을 보내리라고 결심하는 부분에선 저절로 "맞아, 맞아!" 했다.
예전에 공기를 마시듯 읽어 냈던 독서가 이제 양적으로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보다 진지해지고 집중력이 늘었다. 다시 읽는 고전이 더 재미있어진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요즘들어 TV가 부쩍 재미 없어진 것도 매체가 처한 환경적 혹은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독서의 변화'와도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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