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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6761 bytes / 조회: 1,191 / ????.01.24 21:45
SMAP 해체 위기 기사를 읽고 단상



1. SMAP - 世界に一つだけの花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 / ver.기무타쿠) 

2. 영상 출처를 내 하드로 하고 싶다고 하니 관리자님 왈 서버 용량 늘리지 말고 유툽 링크하라고 하셔서, 썩 마음에 드는 영상은 아니지만 유툽 제일 최근 영상으로 링크.

 

SMAP가 해체 위기를 넘기고 쟈니스에 계속 잔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보면서 옛 생각이 나 오랜만에 주절주절.

 

그러니까 내 하드엔 'Kimura Takuya' 폴더가 있다. 10년도 더 전에 오빠가 하드 정리 좀 하라고 잔소릴 할 때도 지켜냈고, 작년엔가 M이 하드 정리 좀 하라고 면박을 줄 때도 지켜냈던 폴더다. 남자들 야동폴더와 같은 의미랄까, 하드 공간이 부족하다는 경고 메시지가 거듭 떠도 이것만큼은 절대 못 건드려- 하는 이른바 절대 성역 폴더.

* 얼마전에 M에게 울집 컴퓨터 하드 용량이 얼마나 되나 물어봤을 때 가늠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페타냐고 물었더니 그 정도는 아니고 외장 빼고 몇 십 테라쯤 된다고.

 

몇 년 전에 아이돌 1세대 보이그룹의 멤버 S가 가족 문제로 추문에 휩쌓였을 때, M과 있었던 에피소드.

내가 S를 두둔하는 게 역성을 드는 것처럼 보였는지 M이 난데없이 "너 S빠지."라고 했다. 불시의 공격에 어찌나 황당하고 억울했던지 두 주먹 꽉 쥐고 얼굴이 벌개져서 외쳤다. "나 김탁쿠 빠야!" 바야흐로 김탁쿠빠 커밍아웃 기념일 되시겠다. 일단 커밍아웃하고 나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나는 그 뒤로도 틈만 나면 M에게 강조한다. "나 김탁쿠 빠야!"

기무라 타쿠야는 내가 살면서 소위 '빠'질을 해 본 유일한 연예인이다. 아니, 연예인이 아니라 누가 됐든.

일찌감치 소녀 감성에 눈 뜬 친구가 교무실에 꽃과 초콜렛을 나를 때도, 빠질의 정석 코스를 밟던 친구가 2시간 짜리 콘서트를 보겠다고 모의고사 전(前)주에 비행기 타고 서울-부산을 왕복할 때도 나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친구들을 이해 못했다. 그랬던 내가 연예인, 그것도 일본인 연예인 빠질이라니. 세상 참 살고 볼 일.

 

내가 기무타쿠 빠질에 들어선 계기는 <하늘에서 내리는 1억 개의 별(이하, '소라호시'>을 보고서 부터.

일본은 드라마를 일주일에 1편 방영하고,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는 여름과 겨울에 주말을 제외하고 2주에 걸쳐 낮시간에 연속 재방을 한다.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도쿄와 사촌언니가 있는 시나가와를 왔다갔다하면서 그 해 1년의 절반을 일본에서 지냈는데, 바로 이 시기 여름에 <성형미인> 겨울에 <소라호시>를 봤다.

그러니까 여름엔 시이나 깃페이한테 설레고, 겨울엔 기무타쿠한테 홀랑 빠졌는데 <성형미인>의 경우 축구 중계 때문에 결방이 잦아서 내 애를 태웠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엔딩을 끊는 건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똑같다 보니 결방 내용이 궁금해 신문을 뒤져 방송 미리보기에서 친오빠가 아니라는 스포를 읽고 난다고레 하기도 했다.

랭킹의 천국답게 일본은 드라마 인기도도 관서와 관동으로 나눠서 순위를 매기는데 <성형미인><소라호시> 모두 순위는 썩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성형미인>은 관서?에서 3위를 했던가 그랬던 걸로.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희미하다.

<소라호시>의 경우 시청률의 제왕인 기무타쿠와 인기 극본가 기타가와 에리코 콤비에 힘입어 시청률은 23~5%로 꽤 좋은 편이었지만 기본 30%를 가볍게 넘나들었던 기무타쿠의 예전 성적과 비교하면 확실히 우울한 편. 게다가 내가 '소라호시 너무 좋아, 최고야' 열광하면 일본인 지인들 대다수가 '기무타쿠 이번 드라마는 좀 거시기 해' 이런 반응.

 

여튼.

신비주의인 시이나 깃페이는 원래부터가 작품 외에선 보기 힘든 아저씨라 그냥 저냥 드라마를 볼 때만 잠깐 설레고 말았는데, 기무타쿠는 연말에 드라마, 고정 예능, 특집방송이라는 트리플 콤보에 완전히 격침 당했다. 사촌언니랑 요코하마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산마 토크쇼에 나온 기무타쿠를 보느라 약속 시간에 지각하는 바람에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덤으로 "걔 결혼했어. 딸도 있어." 핵폭탄까지 맞았다. 서태지가 해체 인터뷰 했을 때 울고불고 하던 친구들의 절망감을 뒤늦게 이해했던 순간이었다.

산마 토크쇼에서(출연자는 기억 안난다) 산마가 '오늘은 안전하다는 여자 말만 믿고 남자들은 방심하지, 기무타쿠도 틀림없이 그렇게 당했을 거야 껄껄껄-' 했을 때 나는 홀로 깊이 탄식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타국에서 일드를 통해서 보는 기무타쿠는 그의 매력을 1/n 도 못 보는 거다. 본토에서 직접 봐야 된다. 그러면 90년대와 2천년대 중반까지 10년이 넘도록 연속 부동 1위 인기를 유지하는 걸 그냥 이해하게 된다.

 

지금이야 뭐든 다 시들해서 한드고 일드고 드라마 자체를 거의 안 보지만, 한때 드라마덕후였던 시절의 잔재를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그러니까 결론은,

기무타쿠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가 빠질한 유일한 유명인이라는 거.

그럼에도 SMAP 해체 위기 기사가 뜬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기무타쿠의 근황을 확인했다는 거. 이혼 안 하고 잘 살고 있구나...ㅠㅠ

기무타쿠의 일본내 이미지가 책임감 강하고, 완벽주의자인 것도 있지만 일본 특유의 엔터테인먼트 환경을 생각하면 어쨌든 그는 잘 살아야 하고, 잘 사는 게 맞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다행히 그러고 있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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