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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8337 bytes / 조회: 1,098 / ????.02.13 15:15
살인하지 않는 배트맨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내가 M에게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물으면서 배트맨의 딜레마에 대해 얘기했더니 M이 그 얘기 예전에도 했다는 거다. 내겐 반복할 정도로 재미있는 주제였던 모양이다.

"누가 이길까?" 에 대한 M의 대답은, "그게 말이 되나." 

이 대화는 여기서 끝났는데 집에 돌아와 뒤늦게 궁금하다.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당시엔 외계인과 지구인의 싸움이니 당연히 외계인이 이긴다는 얘기겠거니, 지레 이해하고 더 묻지 않았는데 나의 '이해'는 결국 '나의' 이해였던 것.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야 되는 건데 아, 궁금궁금...;

 

슈퍼맨은 지구보다 문명이 발달한 크립토 행성의 크립토니안으로 실상 외계인이다. 당연히 지구인인 배트맨이 이길리가 만무...... 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지구에서 클락을 괴롭혔던 악당들이 과학자, 사업가, 괴짜 돌연변이 등이었던 걸 상기하면 썩 일방적인 싸움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영화에서 배트맨을 부추겨 슈퍼맨과 싸움을 붙이는 인물이 클락과 악연 중의 악연인 렉스 루터라고 하니 여기서부터 클락이 이미 핸디캡을 지고 들어가는 대결이라 결과는 쉽게 장담 못할 듯.

 

작년 여름 코믹콘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이 공개된 이후 두 영웅의 대결이 계속 화제였는데 제작사 발표에 의하면 영화가 거의 완성됐다고 하니 예정대로 올 3월에 극장에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워낙 소문난 잔치라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먹을 거 없을 수도 있으므로 마음의 준비도 미리 하고 있다.) 

 

 

 

웨인 파이낸셜 빌딩 잔해 위에 선 브루스 웨인

 

 

배트맨의 딜레마

  

출판사가 그린비가 아니었으면 안 읽었을『배트맨과 철학』은 애초에 제목에서 느꼈던 '기획의 냄새'는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였고, 나중에 재독하고 싶을 만큼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전반에 걸쳐 배트맨의 딜레마를 다루는데, 특히 인상적인 내용은 '살인하지 않는 배트맨의 딜레마'를 다룬 대목.

 

배트맨은 자신의 의무는 범죄자를 법의 안마당에 데려다 놓는 것까지라고 생각하며 범죄자를 심판하는 건 법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뛰는 공권력 위에 나는 범죄자인지라 잡아다 주면 탈옥하고, 잡아다 주면 탈옥하는 범죄자로 인하여 고담시는 여전히 범죄, 악당, 부패의 도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배트맨은 범죄자를 포획하는 과정은 자신의 영역이지만 범죄자의 심판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고, 자신의 역할에 선을 긋는데 이러한 배트맨의 윤리의식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고담 시민, 그리고 그의 조수격인 로빈이다. 배트맨에겐 두 명의 로빈이 있었는데 한 명은 예의 탈옥한 범죄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다음 로빈 역시 범죄자의 복수 놀이에 희생양이 된다. 두 로빈이 멀쩡했다면 그리하여 고담시에서 펼쳤을 정의와 선의 실현을 가정한다면, 이는 결국 고담시민의 악운이며 배트맨은 범죄방조와 살인방조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제일 나쁜 건 무능한 공권력이지만 이건 이미 기성의 질서 즉 현실이므로 그 질서에서 벗어난 박쥐 가면을 쓴 배트맨에게 개인의 윤리를 넘어선 공리주의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요구가 당연한가 하면 그건 또 아니올시다 인데, 박쥐 가면을 벗은 브루스 웨인은 고담시 경제의 절반이 넘는 부를 소유한 고담 시민이자 자연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성 질서의 바깥에 배트맨이 있다면 안쪽에 브루스 웨인이 있는 형국. 결국 배트맨의 딜레마는 개인의 윤리와 공인의 윤리 사이의 간극으로 볼 수 있다. 이 간극으로 인해 배트맨은 범죄자를 포획하고, 브루스 웨인은 범죄자를 공권력에 인도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 시리즈를 '비긴즈'로 이야기를 회귀시킨 건 공적 의무와 사적 권리 사이에 낀 브루스 웨인의 성장담을 안배한 긴 안목의 기획이 아니었나 추측도 할 수 있다. 아마도 프로이트라면 브루스 웨인이 아버지의 죽음에 간적접으로 관여했다는 죄책감, 그러니까 서양인의 뿌리깊은 원죄 의식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또다른 변형이 브루스 웨인으로 하여금 살인하지 않는 배트맨을 만들어냈다고 해석하지 않았을까.

 

한때 설왕설래 했던 마블&DC 히어로 중 최고 갑부는 스타크 인더스트리 CEO인 토니 스타크로 추정 소유 재산이 1000억 달러라고. 내가 놀란 건 2위 브루스 웨인. 역시 추정재산 800억 달러 수준이라는데, 브루스 웨인이 이렇게 부자인 줄 진정 난 정말 몰랐네. 참고로 이번에 두 영웅을 싸움 붙이는 렉스 루터는 자산가 히어로들 사이에서 47억 달러로 당당히 4위를 기록했다.

 

 

뭔가 다크다크 흑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배트맨

 

<배트맨 v 슈퍼맨>에서 브루스 웨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영화 <데어 데블>의 벤 애플렉이다. 보통 히어로 배우는 겹치기 출연을 안 하는 걸로 아는데 미드 <데어 데블>이 올 3월에 시즌 2 방영 예정이고, 14년에 종영되기 직전까지 인기 코믹스였는데 왜 하필 벤 애플렉일까. '배트맨'과 '슈퍼맨' 모두 DC의 히어로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벤 애플렉이 역을 맡은 것 같지는 않고.

클락 켄트는 <맨 프롬 엉클>의 또라이 CIA 요원인 헨리 카빌이 연기한다. 헨리 카빌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참 고전적인 프로필이 돋보이는 배우.

 

하나 더. <배트맨 V 슈퍼맨>의 V가 궁금한 건 나뿐인지. versus의 'VS'가 아닌 'V'다. 역시 배트맨과 슈퍼맨은 대결하지 않는 걸까.

이쯤되니 다시 궁금해진다. M의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게 말이 되나."의 의미가 뭔지.

 

 

*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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