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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13844 bytes / 조회: 1,102 / ????.02.16 20:15
잡다한 썰


 

남의 잔치

 

동친이 지난주(이젠 지지난주인가?) 에 K팝스타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해당 영상의 출연자는 그동안 계속 편집되어 방송분이 없었고 당연히 시청자도 존재를 몰랐는데, 오디션 캐스팅 라운드에 와서야 편집의 칼날을 피한 듯 하다. 이 참가자는 박과 양이 계속 탈락시켰지만 유가 구제한 덕에 캐스팅 오디션까지 왔고, 근성있는 박과 양이 역시나 캐스팅을 포기(=거부)했으나 유가 캐스팅하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번 시즌은 이 참가자의 영상만 봤지만 일단 내 감상은 개성 있고, 자기 색깔 또렷하고, 싱어송 라이터로서 능력도 기대되고, 제일 중요한 노래도 잘 하고.

동친에게 물어보니 본선 탑10부터는 시청자 투표가 반영된다고 한다. 여기서 의문. 규정이 그렇다면 심사위원은 본선까지는 자기 취향 접고 오로지 실력본위로 당락을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쎈지, 너무 프로 같은지, 너무 낯선지 그건 시청자에게 맡겨야지 왜 실력이 아닌 자기 기분/느낌으로 참가자의 기회를 빼앗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제왑은 몰라도 양사장은 그러면 안 되지. 80년대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 전영록이 서태지와 아이들 첫 TV출연 때 낮은 점수와 음악이 난해하다는 요지의 심사를 했다가 두고두고 까이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당사자가 아닌가.

 

다시 k팝스타로 돌아와서.

K팝스타는 초창기에 잠깐 보고 지금은 관심 1도 없는 오디션 프로.

경쟁을 통해 우승자를 뽑는 승자 독식의 오디션 프로가 다 그렇지만, 특히 K팝스타는 우승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놓고 들러리 취급이라 시청자로서 내가 느끼는 불쾌감도 노골적이다. 더군다나 도전자 대부분이 10대, 그것도 중후반인데 무대에 세워놓고 소위 성공한 어른들이 잘한다 못한다 평가하고 넌 탈락, 넌 통과 한다.

심사위원들이 극찬하는 것처럼 천재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 고만고만한 애들이고, 게중에는 대기만성형도 분명 있을 터. 그럼에도 넌 돼, 넌 안 돼 확신에 가득차서 애들 운명을 결정 짓는 거다. 그나마도 그 평가라는 게 순전히 자기 입맛, 자기 취향이다. 한 마디로 잘 하고 못 하는 평가 기준이 도통 계통이 없다는 얘기. 슈스케 때 '너무 프로 같아서 탈락' 시키던 양의 궤변은 표현만 세련되어졌다 뿐 케이팝에서도 여전하다. 요는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심사위원의 마음에 드느냐가 중요한 거다. 소위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내맘이다' 법칙은 여기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도대체가 애들이 이광조와 윤복희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부터가 그냥 웃자는 거지. 이건 뭐 재롱잔치도 아니고. 근데 그걸 또 감동 제대로 받았다는 표정으로 구구절절 평가한다. 그래도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손가락에 드는 기획사 사장님들인데 심사하는 걸 보면 참 먹고 살기 힘들구나 애잔하기도 하고.

그러니 오디션 참가자는 오디션 준비로 노래 연습을 하기 보다 심사위원의 취향을 분석하는 게 차라리 나을 듯. 이를테면 말하듯 부르고, 공기반 소리반을 깨우치고, 빈티지한 분위기, 감성을 자극하는 특기를 수련하는 거지. 이런 획일화와 전근대성이 주류를 자처하는 한, 백남준이 수천 번을 다시 태어나도 우리나라에선 기반을 닦을 수 없을 거라는 거 그들은 알까. 물론 알겠지. 말하면 입만 아프다.

 

 

책 찾았다

 

안 샀나 보다- 포기했던『소설가의 각오』를 찾았다.

표지가 밝은 색이라 책장에서 밝은 색만 찾았더니 아마 못 찾았던 모양. 컴을 하는데 문득 까만색 책등이 떠오르면서 꽂은 자리도 덩달아 기억났다. 과연, 그 자리에 책이 있다.

 

 

 

가끔 책장에 이 책이 있던가 없던가 고민하는데 자기변명을 하자면 독서 유무의 문제이기 보다는 책 구입 전에 고민을 얼마나 했는가의 이유가 더 크다. 살까 말까 하다 최종적으로 샀는지 안 샀는지가 헷갈리는 것.

한때 라이브러리 어플로 책 리스트 만들기에 도전도 했으나 몇 십 권 하다 두 손 들고 포기했다. n이 백 단위면 하겠는데 천 단위라 바코드 찍는 게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하기는 해야 되는데 요즘 뭘 하든 열정이 시들해서. 이러다 꽂히면 하기는 하는데 문제는 그 꽂히는 게 언제인지가 미지수...;

 

 

빨간책방 팟캐스트

 

팟캐스트는 집중이 잘 안 되는 문제로 내 취향이 아니구나 했던 디지털 개인미디어. 

최근 책 검색을 하던 중에 '빨간책방' 언급이 많아서 오랜만에 빨간책방 팟캐스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방송 제목이 '현대미술'이라 혹시 잭슨 폴록이 등장할까 기대감에 플레이했는데 아, 나왔다, 잭슨 폴록. 

출연자들 얘기 중에 공감이 갔던 건 잭슨 폴록의 작품은 규모로 보는 그림이라는 대목. 폴록은 예전에 190억 그림의 위작 논란 기사로 처음 접했는데 현대미술 대부분이 그렇지만 처음엔 폴록의 그림을 보고 실망했다. 폴록의 작품을 특징 짓는 드립페인팅이 어린애가 공중에서 붓을 사방으로 촤악 흔들어도 만들 수 있는, 소위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림이다 싶었던 것. 이후 시간이 지나『1900년대 이후 미술사』에서 폴록을 두 번째로 접한다(no.20). 그리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 no.31을 보는 순간 마침내 일격을 당했는데 삽지를 펼치는 순간 뉴욕 미술관에 가서 실물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하게 치솟았다. 영화와 회화를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반드시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가 있듯, 반드시 실물을 봐야 되는 회화가 있는데 폴록의 드립페인팅(or액션페인팅)이 그랬던 것. 정작 뉴욕에 있을 땐 관심도 없었으니, 이제와 후회해봤자. 조만간 기회가 있길 바랄뿐.

예전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소로 꼽는다는 잭슨 폴록의 직소를 우연히 봤는데 다시 찾으려니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나도 사고 싶다, 폴록 직소! 그런데 찾을 수가 업써! 업따구! (빼애액ㅠㅠ)

 

 

이외에도 관련 학회에선 고흐의 그림을 회회가 아닌 조소로 본다는 얘기도 재미있다. '조소'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달까. 방송에선 <해바라기>를 언급했지만 나는 <부츠>를 떠올렸다. 관련 전공자가 아닐 뿐더러 미술 감상을 취미라고 부를 정도도 못 되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은 모르나 고흐의 <부츠>를 보면 조소의 양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A Pair of Shoes, 45x37.5 (1886), Vincent Van Gogh

 

이 방송의 결론은 '미술은 미술관에서 감상하자'쯤 되겠다.

작품이 가진 고유성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예술이 미술품이라는 얘기도 신선하다.

이다해 기자나 이동진이나 평론가이니 만큼 예술 혹은 대중문화를 대하는 반지성적 태도에 관해 나누는 얘기도 재미있다. 누가 봐도 좋고, 재미있는 영화도 있지만 그와중에도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도 분명 존재한다. 평론가의 역할이 분명 있을텐데 굳이 이걸 지성 vs 반지성의 구도로 삐딱하게 볼 이유는 없는 것.

 

 

신간 소식

 

견물생심이라고 온라인서점에 거의 발을 끊다시피 하고 살 책만 샀더니 모르는 새 신간이 많이 나왔다.

 

 

 

딸 카트린 카뮈가 아버지의 족적을 성실하게 훑으며 담아낸 카뮈의 책이 일단 제일 반갑고.

허먼 멜빌의 장편이 작년 5월에 나왔는데도 전혀 몰랐던 것에 놀랍고.

존 치버의 편지와 일기가 책으로 나온 것에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고.

일단 보관함에.

 

동친에게 물었다.

네가 대단한 작가야. 너는 죽음을 앞두고 있어. 너라면 네가 썼던 일기, 편지, 습작, 초고 등등 남아있는 흔적을 어떻게 처리하겠어? 동친이 묻는다. 책은 누가 내는데? 

대개 가족이나 출판사가 저작권을 소유하고, 설령 출판사가 저작권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출간은 가족의 동의를 얻는 걸로 알고 있다. 존 치버의 신간은, 확인하니 아들 벤자민 치버가 출판했다. 서문에서 아버지와의 대화를 빌어 아버지 역시 책으로 낼 의사가 분명했음을 밝혔지만, 일단은 내용을 읽어봐야 알겠다. 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미발표 원고와 내 글을 태워라'고 유언을 남겼음에도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가족과 출판사가 고인의 원고를 제멋대로 펴낸 일이 너무나 많았음으로. 가장 최근의 예가 나보코프인데, 나는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이 예민한 작가가 분명 자신의 육필 메모가 책으로 나오길 원치 않았으리라는 데 100원 건다. 카뮈 또한『행복한 죽음』이 출간된 것에, 가능하기만 했다면 아마 무덤에서 뛰쳐나왔으리라는 데 200원 건다.

 

 

잡설

 

자게에 이어 또다시 몰아서 쓴다. 그때그때 써야 되는데 이러다 습관 될라.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썼던 글을 나중에 다시 읽다 보면 작렬하는 오문과 비문에 얼굴이 화끈거리기가 부지기수. 아마 대한민국에서 직업 작가를 제외하고 나만큼 수정 많이 하는 인간은 또 없을 듯.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했는데 옳은 말씀이다. 수정하지 않아도, 고쳐쓰지 않아도 글은 완성된다. 쓰려던 게 다만 '글'이라면 여기서 펜을 놓아도 된다. 모든 인간이 가장 공평하게 할 수 있는 예술 활동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바, 쓴다는 행위 곧 기록하는 행위는 인간의 네 번째 본능이라고 한다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다는 것의 고마움을 좀 더 실감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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