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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9660 bytes / 조회: 851 / ????.02.19 02:26
소설가로 사는 고단함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달리 마루야마 겐지는 품절/절판이 많아 소설을 주문하는 과정이 좀 험난했는데 동친에게 이 얘기를 투덜투덜 하던 중에 화제가 하루키로 확장됐다. 하루키가 화제에 오를 때 대개 내 어투는 부정적인데 고백하자면 자연인 하루키에겐 아무 유감 없다. 오히려 살짝 호감이다. 작가 하루키 또한 취향이 아니라는 것 뿐. 그러니 내 부정적인 논조는 순전히 국내 하루키 열풍에 국한된다.

 

여하튼 하루키와 관련하여 국내 출판사의 비정상적인 인세 계약을 비난하던 중에 동친이 불쑥 "난 일본소설에 열광하는 게 이해가 안 가더라." 한다. 이에 "일애니를 보는 네가 할 소린 아닌 것 같다." 대꾸해줬다. 최근 동친은 <은혼>을 끝내고 <무한의 주인>을 보고 있었는데, 말 나온 김에 덧붙였다. "내가 너만큼 영화와 드라마를 봤으면 그걸로 최소 시나리오 몇 편, 소설 몇 권은 썼겠다."

 

직전에 일본 소설 십여 권을 주문한 입장에서 동친에게 거듭 강조했지만 일본 작가에 대한 내 호불호는 50년代 출생을 전후해 갈린다. 간단하게 50년 이전 출생 작가는 호, 50년 이후 출생 작가는 불호인 것. 이 얘기는 게시판에 이미 여러 번 썼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찬가지로 나오키 수상작은 거의 관심 없고 아쿠타가와 수장작은 선호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43년 생이며,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였으나(23살 때 수상) 2004년에 스무 살 와타야 리사가『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으로 상을 수상하면서 최연소 기록은 깨어진다. 뱀발이지만 개인적으로 아쿠타가와상에 대해 가졌던 신뢰가 처음으로 위협받았던 게 이때였다. 실제로 이후로 시들해지기도 했고.

재미있는 우연은, 마치 경쟁하듯 이듬해인 2005년 국내에서도 모일간지 주최 문학상 최연소 수상자가 나왔는데 바로 김애란이다. 그녀는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데뷔한다. 재미없는 우연은 두 작가의 소설을 읽은 내 감상이 공통적이라는 거.

 

아쿠타가와상 하니, 생각난 김에 검색해본 히라노 게이치로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듯 하다. 히라노 게이치로 역시 첫 소설로 23살에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는데 와타야 리사와 달리 그의 경우는 '신동'이라는 찬사와 함께 일으킨 열풍이 수긍이 간달까. 당시 이 책을 읽을 때 내 나이가 어린 탓도 있겠지만 특히『달』을 읽고 난 직후 느꼈던 서늘함과 기괴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소설가의 각오』마루야마 겐지│김난주, 문학동네

 

십구 년 전, 타인이 쓴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내가 팔리는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를 알고 싶어 읽은 적이 있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지도 않고 비평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형편없었다. 아예 비평 대상이 될 수 없는 엉터리들이었다. 읽자니 눈이 썩어들어갈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 이런 소설을 좋아한단 말인가, 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니 내가 쓴 소설이 팔릴 까닭이 없지'라고 깨달은 나는, 이후 그 문제에 대해 거리낌없는 기분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나는 내 소설을 읽고 이해하는 독자들이 내 책을 사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또는 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데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아 읽지 못한 독자들이 사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 바람뿐이다. (pp. 286-287)

 

(…전략) 나와는 정반대 타입의 작가가 즐겨하는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런 작품이 언젠가는 반드시 등장할 것이라 믿고 은근히 기다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여전히 책장 속에 갇힌 습기처럼 답답하고 작가의 생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한 시시껄렁한 소설과, 결국은 패러디에 불과한 소설이 범람하면서 문학으로서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다.

'아무도 쓰지 않는다면 내가 써줄까.'

나는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겨울의 기운을 느끼며 중얼거린다. 그 한마디가 나 자신을 자극하고, 비정상적인 나날로 뛰어드는 정열을 부추긴다. 온 마음을 바쳐 평생 소설을 쓰는 것도 멋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는 또다른 내 목소리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타오르는 산 저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리고는 글쓰기를 위한 뇌와 마음이,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다음 소설을 향해, 재빨리 풀가동하기 시작한다. (pp. 347-348)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을 읽다 보면 '김훈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산문 구석구석에 밥벌이하는 지겨움이 잔뜩 배어있기 때문인데, 마루야마든 김훈이든 글쓰기는 밥벌이를 의미한다. 먹고 살아야 하는 지겨움, 먹고 살기 위해 써야 하는 지겨움, 이젠 먹고 살만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글쓰기의 지겨움.

그런 공통점 때문인지 두 작가 모두 연필로 꾹꾹 눌러 쓰는 곡진함이 행간마다 가득하다. 문학이 작가에겐 먹고사니즘의 수단이고, 독자에겐 취미생활이라니 작가에겐 불행인지 모르나 독자로선 어쨌든 다행한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 라는 건 용돈을 버는 수준이 아닌 말그대로 빵 한 조각을 살 돈을 위해 글을 쓴다는 의미로 발자크가 그랬고,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고, 필립 k.딕이 그랬다. 덕분에 우리는 시대를 가로질러 그들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것이고.

 

왜 소설가가 되었는가 보다 왜 소설을 쓰고 있는가를 얘기하고 싶어하는 마루야마 겐지는 400자 원고지 백 매면 얼마, 2쇄 증판하면 얼마..., 늘 계산하고 내가 왜 이걸 쓰고 있나 끊임없이 투덜거리지만 문학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유년 때부터 그의 삶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과거의 추억을 통해 스스로 간증한다.

산문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이 양반이 작가가 된 건 우연인가, 고개를 갸웃하지만 결국 필연이구나 하는 부분이 이런 지점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글쟁이가 될 수 없는 것. 이제 그만 쓸 테다! 외치는 순간에도 뭘 쓸까 고민하는 것.

문학을 한다는 행위는 결국 그런 거다. 시지프스처럼 일생을 문학이라는 신기루의 산 위로 원고지라는 돌을 굴리는 것. 뭐, 독서가 더 이상 취미가 아니게 되거나 지구상에 나무가 사라지거나 하면 글쟁이를 그만 두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음. 디지털문학 시대이니 나무는 필수 조건은 아닐 수도 있겠다.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을 읽을 땐 못 느꼈는데 산문은 묘하게 김훈과 장정일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니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작가가 자기글에서조차 고상할 필요는 없다. 작가가 연기를 하고 연출을 하는 건 소설만으로도 충분하다.

 

안 산 줄 알고 낙담했다가 뒤늦게 책을 찾은 김에 잠깐 읽었는데 짧은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나중에 제대로 다시 정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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