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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13179 bytes / 조회: 1,074 / ????.04.05 22:32
앨리스먼로 / 황현산 / 배수아


알라딘굿즈가 계속 북커버를 내놓는데, 이게 제법 눈을 끈다.

그래도 실용성은 떨어지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북커버의 크기가 어중간한 것 같아서 구경만 했는데 결국 문학동네 책을 주문하고야 말았다.

북커버는 앨리스 먼로의 '디어라이프', 페소아의 '불안의 책' 2종으로 택1인데, 나는 결정장애가 있으므로 동친에게 의견을 물어 페소아 선택. 웃기는 건. 그 와중에 페소아의 책을 보려고 책장을 보니 앨리스 먼로의 책이 딱- 눈에 들어오는 거다.

응? 언제 먼로의 책을 샀지???

홈에서 폭풍검색 결과........ 없다.

라이브러리앱 관리가 귀찮아서 임시방편으로 주문한 책은 배송 받는대로 사진을 찍어 홈에 올리는데 사진이 없다니, 사진이 없다니, 의사양반!!! (???????)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이 책, 도대체 언제 샀을까. 반양장을 산 걸 보면 분명 이벤트에 혹해서 산 것 같은데, herrr.......

캐나다의 체홉이라는 앨리스 먼로는, 사실 예전에 읽었던 단편집이 밍숭맹숭해서 딱히 큰 인상을 못 느낀 작가. '책연(緣)'도 연인데, 일상성을 텍스트에 잘 녹여낸다는 건 분명 큰 재능이지만 요즘 내 독서는 이런 종류가 잘 안 읽히는 시기라. 뭐, 여튼 분명 내 돈 주고 샀는데도 공짜 책이 생긴 기분. 우연찮게 책 사이에 끼워둔 지폐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그나마 내세울만한 장점이 내 책장에 꽂힌 책은 내가 안다였는데, 이젠 누가 책장에서 책을 빼가도 모르는 거 아닌지. 저녁에도 에세이 한 권 찾으려고 책장을 몇 번씩 뒤졌다. '대충 이 위치'인 건 알겠는데 그 부근을 몇 번이나 훑는데도 책이 안 보이는 거다. 오물이 묻은 책이 와서 한번 교환받았는데 혹시 교환이 아니고 반품이었나? 이젠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면서 훑고 또 훑고... 결국 찾았다. 기억하던대로 '이 위치'에서.

 

 

 

* 이미지 출처. 스맛폰

 

동친과 각자 볼일을 보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 일이 조금 더 일찍 끝나 도서관에 들렀다. 그리고 신착도서 칸에서 발견한 황현산과 배수아의 에세이. 반납기일을 넘겨 대출정지 기간이라 대출은 못하고 일단 예정대로 동친과 만나 나머지 볼일을 보고 점심도 먹고 동친은 집,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그리고 일몰 직전까지 읽은 두 권.

 

책 두 권을 같이 놓으니 마치 같은 출판사의 시리즈처럼 보이지만 다른 출판사, 별개의 책이다.

황현산의 책은 시비평에세이, 배수아의 책은 여행에세이.

 

먼저 황현산의『우물에서 하늘보기』

 

목차 1번이 청마 이육사의 '광야'인데, 사실 나는 광야 첫 구절이 해석의 논란에 있는 걸 이 책에서 알았다. 학교에선 배운 기억이 없는데;;;;;

논란이 된 구절은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들렸으랴를 '들렸을리가 없다'는 부정형으로 해석할 것인가, '들렸다'의 감탄형으로 해석할 것인가 주장이 나뉜 것인데 간단히,

 

'들렸을리 없다'(부정형)이면 앞 소절 닭우는 소리는 의미 그대로 '꼬끼오'인 거고,

'들렸다'(감탄형)이면 닭우는 소리는 개벽, 새로운 도래 등의 은유인 거고.

 

라는 거다.

감탄형으로 해석해야 한다가 뒤에 나온 주장(70년 대 중반)인데, 양쪽 모두 상대를 완전히 설득시킬 의견을 내지 못해 지금까지 결론을 못 내렸다고 한다.

사실 작가는 원고지에 마침표를 찍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끝냈고 또 그게 맞는데, 이렇게 후대에서 해석의 문제가 불거지는 광경을 볼 때마다 작가 스스로 '해제론'을 만들어 어딘가에 보물찾기로 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작품이 오역되면 누구보다 억울한 건 작가 본인이니까.

읽으면서 가슴 아팠던 대목은「박정만의 투쟁」편.

 

박정만은 1981년 5월 어느 날 그가 편집부장으로 근무하던 출판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의 잠적은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능했지만 무책임한 사람이기도 해서, 우리들의 관심은 또 한 차례의 잠적을 성사시켰을 어느 여성의 정체에 대해 더 많이 쏠렸다. 그러나 여자는 없었다. 그가 자신의 대학 동창이기도 한 어느 소설가와 함께 술을 마셨다는 오직 그 이유 하나로 검은 차를 몰고 온 사나이들에게 끌려갔다는 것도, 이제는 문학인들의 집이 된 남산의 어느 시설에서 내리 사흘 동안 "청동상"처럼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려진 일이었다. -p. 178

 

박정만은 결국 고문의 후유증을 못 이기고 7년 후 사망한다. 공식 사인은 간경화.

내겐 생소한, 이름을 처음 듣는 시인 박정만은 죽음을 앞두고 보름동안 300여 편에 가까운 시작(詩作)을 했다. 유작시를 비롯, 시전집이 있다.

저자는 '대안은 역사를 전제로 하는데 역사는 어떤 문제도 해결한 적이 없다.'(p.192) 고 말한다.

씁쓸하지만 옳은 얘기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종종 하시던 얘기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때그시절엔 술집에서 술 마시다 끌려가고, 집에서 TV보다가 끌려가고, 길가다가 끌려가고 그랬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사촌이 카투사 복무 중에 의문사한 일이 있어(가족이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영안실이었다), 아버지에겐 시대의 일부가 개인사가 된 그때그시절 얘기. 그래도 뭐. 선거가 있을 때마다 6시 땡- 하면 제일 먼저 투표소로 가서 우리가남이가당에 투표하신다.

제목은 잊어버렸고, 어렸을 때 케이블채널에서 본 한국영화인데(흑백 분위기였던 걸로 보아 아주 옛날 영화였던 것 같다), 잘 나가는 교수(?)가 어찌저찌 알게 된 사람- 실은 남파간첩과 술을 마시는데 남파간첩이 "우리 건배합시다"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활짝 웃으면서 건배하는 순간 두 사람 뒤로 커튼이 걷히면서 김일성 '존영'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교수는 남파간첩의 덫에 걸린 것이다. 앞뒤 얘기는 기억 안 나고 유독 이 부분만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건 어린 마음에도 '누명 쓰는 거 참 쉽구나' 공포를 느꼈기 때문.

쓰면서 되새겨보니 제목도 기억 안 나는 이 한국영화는 아마 반공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한 선전영화였던가 싶다.

지난 3월에 통칭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었다.

총선이 일주일 남았다. 당연히 선거판에 나올 수 있는 온갖 세태가 벌어지고 있다.

히틀러의 유명한 선전관 괴벨스의 명언 몇 가지를 옮겨본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이미 사람들은 선동되어있다.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대중은 정말 개돼지일까. 먹을거리, 유흥거리만 던져주면 만족하는 가축일까.

가끔 동친과 하는 얘기인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패착은 친일청산을 못했다는 거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모든 불행과 부조리와 비극은 친일청산 실패에서 시작한다.

 

 

다음, 배수아의『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

 

비유를 들자면 첫타석 삼진, 둘째타석 삼진인데 셋째타석에서 홈런을 치는 작가가 있다. 작가(or 작품)에 관한 호불호 얘기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로 지금 딱 떠오르는 작가가 정혜윤인데 계속 별로다- 하다가『마술 라디오』에서 홈런을 친 경우로 이후 정혜윤의 신간이 나오면 눈여겨 보게 되었다. 나한테는 그렇다는 얘기. 반면 배수아는 계속해서 타석 삼진. 파울볼도 없고 사구도 없다.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의문은 잠자는 남자가 실존인물이긴 할까, 라는 거. 잠자는 남자와 나누는 대화도 마찬가지. 남자도 대화도 지나치게 소설적이라 이런 의문이 남는 것이다. 도중에 책 날개 안쪽의 프로필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도, 집에 돌아와서 키보드를 두들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확신을 못하고 있다. 이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거다. 뭐가? 작가의 글쓰기가. 혹은 글쓰는 스타일이. 혹은 글쓰는 방향성이.

블로그식 글쓰기던가? 아마 그런 표현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인고 하니 개인 SNS에 쓰는,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만의' 글을 의미한다. '스타일리쉬'하다는 건 다른 의미로 개성적이라는 얘기인데, 작가의 글쓰기가 지나치게 '스타일리쉬'하면 독자를 일방적인 청자로 만든다. 한마디로 이런 글은 타인의 꿈 얘기를 듣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작가에겐 발산이고 힐링일지 모르나 독자에겐 소화할 수 없는 뜬구름 잡는 것에 불과한 얘기들.

배수아에 대한 나의 호불호는, 그리하여 여전히 유효하며 현재진행형이다. 그녀의 글은 소설, 수필, 번역- 장르 가리지 않고 여전히 불편하다. 하물며 그녀는 번역조차도 그녀의 언어로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에 그녀가 번역한 책이 꽤 있는 걸 보면(확인하고 심쿵;;;) 그녀의 글에 느끼는 불편함은 내 불호일 뿐, 대중은 그녀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다렸던 혹은 끌렸던 책의 역자가 배수아인 걸 보고 구매를 포기한 경험이 다수 있는 탓에 페소아의 책이 다른 역자의, 그것도 중역이 아닌 완역이 나온 것에 새삼 '다행이다'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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