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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518 bytes / 조회: 1,013 / ????.05.22 15:19
이런저런 잡담


1. 가끔 책장 앞에서 멘붕 - 자기학대 - 여우의신포도로 이어지는 원맨쇼를 찍는다. 오늘 오전 원맨쇼의 원인은 불가코프. 분명 책을 산 것 같은데 책이 안 보이는 답답함. 책이 안 보이니 안 산 건데, 추측할 수 있는 건 창비 번역을 살까, 열린책들 번역을 살까 고민하다 결국 결정을 못해 안 산 게 아닐까- 하는 정도.

여튼, 멘붕의 끝은 언제나처럼 '책을 그만 사야해'.

책치매라고나 할까, 책인사불성이라고나 할까. 내가 이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도 모를 정도면 그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만 한다.

 

 

 

2. 가난한 시인, 하면 나는 먼저 함민복 시인과 최승자 시인이 떠오른다. 이번주 뉴스룸에서 단신으로 최영미 시인의 소식을 듣고 과장하면 살짝 충격을 받았다. 아마 이 시인을 아는 사람이면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나 '최영미조차도?' 하지 않았을까. 대학 동문 선배 중에 시인을 꿈꾸던 문청이 있었는데 이 선배가 최영미 시인을 참 많이 좋아했다. 덕분에 그닥 詩에 관심 없던 나도『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샀고, 선배 덕분에 시인과 시집에 관하여 변두리 소식도 얻어들었고. 그런 기억이 있으니 더더욱 최 시인이 정부 지원금을 받는 저소득층이라는 소식에 충격이 컸을 거다. 글쟁이를 직업으로 그럭저럭 불편함 없이 먹고 살 정도가 되는 작가가 얼마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물론 그 '얼마 안 되는'에 최영미 시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여러모로 안타깝다. 최영미 시인이 이 정도면 다른 시인은 어떨까...

 

 

 

3. 작가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분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며칠 전부터 들리더니 결국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 우습지만 이 소식을 듣고 먼저 떠오른 건 한강을 시샘하던 H였다. 그닥 공감이 가지 않는 이유로 작가를 까던 H의 시샘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던 건 소설가로 등단하고 싶어했던 H의 입장에선 작가 한강이 금수저였겠거니, 수긍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여러모로 입지가 불편했을 창비가 기사회생했구나 하는 거.

뭐 하여튼. 맨부커 수상 후 예상가능했던 현상들- 품절대란, 지연배송, 종합베스트셀러 1위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그 와중에 하루만에 주문량 25만 부를 돌파했다는 소식도 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나는 '베스트셀러' 문화를 안 좋아한다. 베스트셀러만 골라서 읽던 S는 '기왕 읽을 책이면 남들 다 읽는, 어디 가서 대화에 낄 수 있는 책을 읽겠다'고 주장했는데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개인의 지적 충족의 한 방편인 책 읽기조차도 자기 취향대로 못 하나, 어리둥절한 것도 사실.

수상 후 봇물 터지듯 소식이 워낙 요란하니 책 안 읽는 동친이 묻는다. 이 소설의 어떤 점이 상을 받게 했느냐고.

아무래도 해외문학상이니 번역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동친이 질문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만 근데 난 생각이 좀 다르다. 물론 번역이 중요하긴 하다만 그동안 번역이 부족해서 해외 수상이 없었던 건 아닐 거다.『채식주의자』의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문체도 문장도 아닌 '이야기의 구성'인데 이 생각은 10여 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주최측이 수상 이유로 '책을 덮고 나서도 잔상이 오래토록 남아서 따라다닐 것이다'(정확한 워딩은 아니나 대충 이런 내용) 라고 했는데, 이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

이 소설은 고만고만한 여타 소설들 중 자기만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을 가지고 있다. 처음 소설을 읽고 주변에 들려주었던 것도 이 장면이었고, 이후 이 소설을 영화화했을 때도 문제의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했고. 이제 사소한 줄거리는 희미하지만, 문제의 장면만은 여전히 아주 강렬한 이미지로 시각화되어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 '육식주의'인 유럽인에겐 아마도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주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보는 대목.

 

 

 

오랜만에 꺼내본『채식주의자』.

그동안 블로그식 글쓰기에 빙의한 국적불명의 '현대'소설들이 문학자처연하며 활보하고, 스마트폰을 플랫폼 삼아 상업주의의 극치인 웹소설이 판을 치는 작금에 한강의 수상이 환기가 됐으면 하는 일개 독자의 간절한 바람.

별개로 k-문학...? 으...........넘나 오글거리는 것. 아, 진짜 이런 거 쫌 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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