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하다 > 설(舌)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9446 bytes / 조회: 1,060 / ????.01.25 19:43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하다


 

『대한민국이 묻는다』가 도착한 김에 예전 책과 함께 출간순으로 줄을 세워봄.

『운명』리뷰를 쓴 날짜를 확인하니 11년 7월 초다. 이때만 해도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을 읽고 싶어 책을 구입했다. 나는 '노무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정알못이었다. 이 말은 이때까지도 내게 문재인은 '그냥 문재인'이었다는 의미. 이제와 돌아보니 내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등을 떠민 건 07년의 MB이고, '정치를 모르면 안 된다'고 멱살을 쥐고 흔든 건 09년의 정치검찰이었다. 그리고 '시대정신을 공부하라'고 내 머리통을 두들긴 것이 18대 대선 결과였다.  

 

 

 

대통령의 예고 없는 기자회견은 원고조차 준비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은 폐부를 찔렀다. "최도술은 약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왔고, 최근까지 저를 보좌했습니다. 수사결과 사실이 다 밝혀지겠지만 그 혐의에 대해 제가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국민여러분들께 사죄합니다. 아울러 책임을 지려합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 동안 축적된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습니다.저는 모든 권력적 수단을 포기했습니다.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밑천일 뿐입니다.그 문제에 적신호가 왔기 때문에 이제 국민들에게 겸허히 심판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 이 상태로 국정을 운영해 가기는 어렵습니다. 언론 환경도 나쁘고, 국회환경도 나쁘고, 지역적 민심환경도 안 좋습니다. 이 많은 것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권력에 대한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도덕적 자부심입니다. 지금 최도술 전 비서관 사건으로 해서 빚어진 문제는 제가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국정을 힘차게 추진해 나가기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pp.278-279 『운명』

 

책상태 관리에 경도 강박증이 있는 나는 책에 줄을 긋는 대신 포스트잇을 붙여둔다.

12년 12월 19일 저녁의 기억이 생생하다. 대선 결과가 나온 직후 8시 쯤 나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소파에 파묻혔다. 말그대로 멘붕이었다. 대선 이후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어서 한동안 국내 인터넷 포털도 끊었다. 그런 내가 딱했는지 며칠 뒤에 만난 M이 위로랍시고 말했다. "어차피 새ㄴㄹ는 박ㄱㅎ가 마지막이다." 위로가 되었겠는가? 그때만 해도 새ㄴㄹ가 분당하고 박ㄱㅎ가 탄핵소추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저 허황된 얘기로만 들렸다. * 얼마전에 M에게 그 얘길 꺼내니 '내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모르쇠 했다. 

그리고 멘붕에서 어느 정도 회복될 즈음 대선 패배 이후에서야 비로소 '문재인'에게 본격적이고 진지한 '진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일한 사인본『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다'는 18대 대선에서 야권 후보로 뛴 문재인 후보의 정책 비전을 담은 레토릭이다. 이 레토릭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는 신간 리뷰에 덧붙이기로 하고,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첫째, '사람이 먼저다'에 담긴 레토릭이 무얼 의미하는지,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과 이는 당시 문재인 대선 캠프가 유권자에게 자신을 어필하는데 실패한 걸 의미한다는 것. 둘째, 그럼에도 이것이 내가 정치인 문재인 혹은 문재인의 정치에 긍정하고 신뢰를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때 되면 구색 맞추듯 꺼내드는 그렇고 그런 흔한 수사 쯤으로 치부했던 '사람이 먼저다'에 담긴 의미를 알았을 때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았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쯤되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해 51.6%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지지했는가.

 

 

 

 

 

 

배송이 늦어져서 오매불망 기다림도 길어졌던『대한민국이 묻는다』

오늘밤 따뜻한 담요를 덮고 열독할 계획.

 

 

 

 

 

책을 받자마자 반가운 마음으로 훑는데 '인간 문재인'을 엿볼 수 있는 즉문즉답이 눈에 띈다.

장평, 자간, 폰트가 크고 넓어 시야가 시원한 건 중장년 층의 독서를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산을 쓴 사람들에게 에워싸인 사진은 김형석, 표창원의원과 함께 했던 홍대 시국 콘서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걸 기억하다니 이거 왠지 사생팬 각...;)

 

지난달이던가 이달 초던가. 뜬금포 M을 붙잡고 수줍게 고백했다. "나 아무래도 문빠인 것 같아."

근데 참 복도 없지. 평생 처음 지지라는 걸 보내는 정치인이 꽃길만 걸어도 시원찮을 판에 이 양반 어째 걸음하는 길마다 그리 가시밭길인지. 그의 기사나 사진이 뜰 때마다 첫 감정은 '짠'한 연민이다. 이건 뭐 도둑질하러 들어간 집에 옷 벗어주고 나오는 기분이 이럴까 싶다.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영향력있는 오피니언 리더였다면 문에게 손톱만큼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처음으로 아쉬웠다. 

 

여야는 물론이고 같은 당에서조차 연일 내부 총질인데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문의 지지율에 여기저기서 분석과 해석을 하는 글을 본다. 어디 가서 문을 지지하는 발언 한번 한 적 없고 기껏해야 내 홈에서 그것도 몇 줄 친문 흉내를 내는 게 전부인 샤이 친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문 지지율의 근간은 정치인 문재인이 아니라 자연인 문재인을 향한 것이라고 본다. 요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자가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니 문을 향한 지지는 단순 지지가 아니라 존경과 호감이 깃든 애정에 기반한 지지다. 그러니 비문/반문들이 흔드는 것이라야 지지자의 눈에는 온통 실체가 없는 것들이고, 정치적인 마타도어로는 문의 지지층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 본다. 

 

문빠이며 친문인 나는 비록 정치인 문재인은 힘들지라도 자연인 문재인은 행복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391건 8 페이지
설(舌) 목록
번호 제목 날짜
286 타임 아시아판(2017.5.15) ??.05.04
285 이것저것 단상 ??.04.08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하다 ??.01.25
283 [유툽] 장하준의 모두를 위한 경제학 강의 ??.01.08
282 뉴스룸 신년 토론 요약 ??.01.02
281 드라마 잡담 外 ??.01.02
280 <썰전> 外 2 ??.12.02
279 책 & 방송 잡담 ??.11.24
278 보르헤스의 환상 이야기 ??.11.18
277 작가의 펜 from '나눔의 세계' ??.11.10
276 존 업다이크 / 카프카 주문 후기 ??.08.10
275 잡설 ??.08.09
274 파격을 파하지 못함 ??.08.08
273 최근 보관함 책들 ??.07.28
272 CD 리핑 ??.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