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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4168 bytes / 조회: 872 / ????.07.28 19:56
차이나는 클라스 '정재승' 편


강연자의 전공인 만큼 4차 산업혁명과 AI(인공지능)이 주제였는데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건 패널들이 AI에 대해 굉장히 협소한 정의를 고수하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로봇산업의 등장으로 인간이 로봇에게 분야 불문하고 많은 직업을 빼앗기게 될 거라는 미래 예언에서.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에 대해 패널들이 의견을 나누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구동성 '감정'을 상수로 꼽는데, 사실 로봇이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감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물이나 동물에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고 투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장기이기 때문. 바비인형이 좋은 예. 인형은 인간의 친구로 인간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껏 인간과 인형의 애착관계에 대해 이상하다거나 치료가 필요하다는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다. 물론 도를 지나친 경우는 제외하고.

예를 좀 더 추가하면,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척은 배구공에 눈코입을 그려 넣고 이름을 지어주고 희노애락을 나눈다. 이때 배구공 윌슨은 명백하게 척의 동료이자 친구이자 가족이다. 그 윌슨이 대답도 하고, 질문도 하고, 노래도 불러준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윌슨을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이다.

주제에서 좀 벗어나는 얘기지만, 이렇게 말하면 너무 냉소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감정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쯤으로 믿는 것도 일종의 오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다.

 

그리고 감정을 비물질적인 영역으로 단정하는 것도 재미있다. 감정은 뇌의 활동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적인 영역이다. 즉 물질의 산물이다(feat. 마르크스). 희노애락을 관장하는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인간은 감정적 불구자가 된다. 불구는 신체적인 부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울증 환자를 복용약으로 치료하는 걸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우울증을 감정적 영역으로 보는 건 표면적인 진단일 뿐, 실상 '우울증'은 뇌를 둘러싼 해면체의 작동에 의한 것으로 물질영역이기 때문에 화학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결론은, 감정은 물질적 산물이라는 것.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일종의 편견이랄지, AI에 대하여 인간이 미리 정보를 입력하면 그 정보를 연산 처리하는 기능만 한다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둘 때 어떠한 알고리즘을 거쳐 입력된 기보를 뒤져 스스로 수를 계산하는지 이미 전세계에 시연되었다.

 

할란 엘리슨의 소설집이 이번에 국내에 발간되었는데 대표작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에도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과학자 5명이 슈퍼컴퓨터에게 'I AM'을 몇 년 동안 매일 가르치는데 어느날 슈퍼컴이 'AM'을 깨우친다. 'am'을 깨우친 슈퍼컴은 스스로 진화하고 결국 인간은 기계에게 지배당하게 된다. 비슷한 얘기는 영화 <터미네이터>에도 나온다. 이들 SF영화와 소설이 얘기하는 공통점은 미래 어느 순간이 오면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를 시작한다는 부분이다. 아직까진 SF적 상상이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런 상상이 실현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결론은, 내가 이번 '정재승 편 - 1부'를 보고 느낀 것은 (출연한 패널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인간은 굉장히 낙관적이구나, 라는 거였다. 나는 좀 개복치라 M에게 가끔 확인한다. 우리 살아있는 동안에는 AI가 일상이 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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