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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8102 bytes / 조회: 1,028 / ????.09.02 23:18
카프카 전집 단상 & 비정상회담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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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다르지만 같은 책이다.

하물며 같은 출판사다.

왼쪽은 2017년 7월, 오른쪽은 2016년 7월에 출간됐다.

1년 간격으로 시리즈에 포함된 책의 개정판을 낸 거다.

나는 1년 뒤에 시리즈에 걸맞게 깔맞춤된 책이 나올 줄 모르고 오른쪽 책을 샀고.

 

이쯤되면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솔출판사의 편집자인지 출판기획자인지는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일하는가.

 

온라인서점에 접속했다가 개정판 <카프카의 엽서 : 누이에게>가 출간된 걸 봤다. 1년 전에 샀던 신간 <그리고 네게 편지를 쓴다>는 절판됐고. 

 

참 어이가 없네. 이거 그냥 단행본이 아니라 무려 전집이다. 1년 만에 신간 단행본을 절판시키고 전집 신간에 같은 책을 출간할 거였으면 제목만 다른 단행본을 애초에 내질 말았어야지. 아니면 '이 책은 조만간 전집 구성으로 나올 겁니다' 미리 알림이라도 하던가.

 

전집이 한 권씩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설마, 긴가민가, 하면서도 제목이 다르니까 전집 구성과 관련 없으려니 추측하고 1년 후 절판된 운명인 신간을 구입한 나는 등신머저리가 됐다.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같은 책인데 제목은 왜 바꿨느냐고. 이거 업계 용어로 미필적고의 아님? 전집 리스트에 표기된 제목과 같았으면 구입을 했겠냐고. 하다못해 전집인데 왜 혼자 독자 노선이냐고 출판사에 문의라도 해봤겠지. 제목이 다르니까 당연히 다른 책이겠거니 구입한 나만 호구잡힌 거 아니냐고. (왼쪽이 전집, 오른쪽이 단행본)

 

내가 왜이리 분노하는가 하면 당연히 내가 솔출판 카프카 전집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같은 책을 사서 전집을 채우던가, 포기하고 전집 리스트에 구멍을 내야 된다는 얘기다. 강아지들 사이에 고양이 한 마리 낀 것도 아니고.

 

덧붙여.

솔출판의 카프카 전집 중 나머지 세 권을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담던 중 소회.

 

작가가 자신이 원치 않았던 원고를, 그것도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작품이 아닌 일기와 엽서, 편지 따위 개인의 사적인 흔적들을 굳이 읽고 싶어하는 심리는 뭘까(카프카는 절친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버리라고 유언을 남겼다)

 

 


 

 

<비정상회담>에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영하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게스트의 직업이 작가인 만큼 주제는 '책'이고, 내 입장에선 순전히 공통관심사가 주제인 이유만으로도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고 그래서 재미있고 즐거웠다.

나 역시 국적이 다른 나라의 도시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서점인데 단적으로 일본에선 기노쿠니야, 미국에선 반디&노블스에 빠지지 않고 들러 책을 구경하고 구입한다. 내겐 서점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로 기능하는 것인데 입구에서 부터 느껴지는 포만감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래도 전자책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종이책이 사라질 것인가'를 주제로 대화 중에 김영하 작가가 움베르토 에코의 '종이책은 완전한 발명품이다'를 인용했다. 이제껏 등장했던 인간의 모든 발명품은 진화를 거쳐왔는데 종이책은 더 이상의 진화가 필요없는 처음부터 완성품으로 예외라는 것이다. 

 

각국 패널의 주장이 재미있는데 전자책이 종이책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것에 수긍하면서도, 정작 주장하는 전제는 대체재에 두는 점이 그렇다. 사실 이건 제작진의 문제가 크다. 애초에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인가'로 거수를 시켰으니 말이다. 보다 선명하게 주제에 접근하고 싶었다면 주제가 '전자책이 종이책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여야 한다.

 

휴대성, 보관성, 편의성은 종이책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자책만의 훌륭한 장점이다. 해외구매자에겐 물류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고. 아마 내가 해외체류자라면 전자책의 등장을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반면 전자책은 전자기기라는 플랫폼에 의존하는 기계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어느 커뮤니티의 댓글이던가 기사 댓글이던가에서 봤던, '로빈슨 크루소에게 필요한 건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은 전자책과 종이책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아주 극명하게 잘 표현하는 예시였다.  

 

나 역시 종이책 성애자이지만 긴 여행길엔 종이책 한두 권 외에 탭 or 패드를 꼭 따로 챙긴다. 덧붙이면, 킨들 등의 전자책 전용 기기를 구입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아직 본격적인 전자책 이용자가 아니기 때문. 언젠가 종이책만큼 전자책을 읽을 필요성이 생기면 그땐 기기를 사겠지만 지금 내겐 불용이다.

 

...하지만 패널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일견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해외에선 이미 정점을 찍고 하강세라고 하지만 국내는 이제 활황이라 물류비용과 재고비용 절감 면에서 수익 구조가 훨씬 나은 전자책 출간에 출판사가 계속 올인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제작 비율이 줄어든 종이책 값은 더 비싸질 것이고, 머지 않은 미래에 종이책은 소위 '가진 사람들'의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겠다고. 내가 이런 말을 하니 M이 무슨 헛소리냐고 질색했다. 전에도 썼지만 독서는 은근 유무형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다. 우선 책을 살 돈이 있어야 되고, 책을 보관하고 읽을 공간이 필요하고,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 지금은 누구나 원하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실감 못하겠지만 옛날 어느 한시절엔 책(=글)이 권력자들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날 김영하 작가는 한 권의 책으로 카포티의 논픽션 소설『인 콜드 블러드』를 추천했는데, 추천에 나도 1을 보탠다.

아울러 이 논픽션 소설이 베이스인 영화 <카포티>도 함께 추천함. 이 영화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필립 세이모어의 연기가 정말 훌륭하고 영화적 완성도도 정말 뛰어나다. 소설을 완성하기 전까지 기자로서 작가로서 살인자를 취재하는 과정을 논픽션처럼 다루는데 각본, 연기, 연출 여러모로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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