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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3829 bytes / 조회: 850 / ????.05.14 03:33
잡담


- 그림, 음악은 대개 작품 전반에 창작자의 personality가 드러난다. 즉 작품을 통해 작가의 정체성을 읽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문학은 그렇지 않다. 문학은 창작자가 주제 의식 뒤에 자신을 숨기는 게 가능하다.

<호밀밭의 파수꾼> 출판 후 '익명성은 작가의 고유권한'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샐린저는 평생 인터뷰를 거절하고 은둔작가로 살다가 은둔작가인 채로 사망했는데, 처음엔 이 말이 자신의 사적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미인 줄 알았으나 지금은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다. 따지고 보면 문학의 감동이 작가의 커밍아웃으로 반전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독자들의 뒤통수를 두들겨 패고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가. 정의, 휴머니티, 선한 의지를 주제의식으로 길잡이 삼아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그토록 곡진하게 원고지를 채웠던 작가들 중 실상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혀 다른 사상, 전혀 다른 가치관을 고수하며 살고 있는가. 홀든만큼이나 예민하고 결벽증적인 성격이었다고 알려진 샐린저에겐 자연인 샐린저와 작가 샐린저를 분리하는 대신 대중으로부터 은둔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 주말을 기점으로 도서관 대출기한을 넘겼다. 아직 일주일은 남은 줄 알았는데...;

지난며칠, 나는 후천성 난독증인가 아니면 원래 문해력이 딸리는 인간이었던가 몹시 고민했다.

범인은 브래드버리의 <시월의 저택>. 고작 전반부 얼마를 읽는 동안에도 읽다 말고 온라인서점 서평을 뒤지고(다들 재미있다는데?), 읽다 말고 서평을 뒤지고(다들 재미있다잖아!)ㅡ 하기를 수차례. 하필 이 책을 제일 처음 펼쳤을까 후회하면서 포기도 못하고 진도도 안 나가고 대출한 다른 책은 그림 속 떡이 되어 독서가 지지부진한 와중에 반납 날짜를 넘긴 거다. 그런데 우습게도 감쪽같이 까먹었던 반납일 전날, 5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갑자기 책이 재미있어진다. 이유는 5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사가 생겼기 때문이다. 최소 나이 3천 살 고양이도, 고양이보다 1천 살이나 더 먹은 천 번 고조할머니도 사라지고 드디어 톰과 앤이 등장한 것이다. 그뿐인가. 거품이 된 인어공주 같은 세시가 그들 주변을 떠돌면서 애틋한 동화를 완성한다. 올레! 계속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기왕 늦은 거 마저 읽고 반납하기로 한다. 대출한 책 중 <자화상의 비밀>은 구입하는 걸로.

 

- 문학동네가 세계문집의 양장본을 더이상 내지 않는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151번 부터. 어쩐지 153번인 이반 부닌의 양장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다 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양장본이라도 재고 소진 전에 얼른 사들여야 하나? 그래봤자 151번 부터는 반양장인데? 이쯤되니 원망은 다시 도서정가제로 향한다. 얼마전에 200페이지가 안 되는 책이 16천 원 가격표를 달고 출간된 걸 봤다. 물론 10% 할인 가격이다. 400페이지 아니라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책이 반양장이거나, 판형이 크면 분량이 얇고, 분량이 두꺼우면 판형이 작고... 애잔할 정도로 얕은 가격의 눈속임이 이어진다. 도대체 정가제 개정을 해서 뭐가 더 나아졌나. 그들이 애초에 주장하던 동네 서점이 그래서 되살아났나? 정말 왜들 그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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