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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4720 bytes / 조회: 960 / ????.05.19 09:13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한 문장을 좋아한다던 아쿠타가와는 그 예시로 나쓰메 소세키의「뱀」을 인용한다.

 

'사립문 열고 밖으로 나가니 커다란 말 발자국 속에 비가 가득 고여 있었다.'

- p.14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이걸 보니 구스타프의 문장이 떠오른다.

 

달빛이 내 침대 발치에 떨어져 마치 밝은 색의 납작하고 둥근 돌멩이처럼 놓여 있다.

- p.7 <골렘> 구스타프 마이링크

 

 

이걸 보니 체호프의 충고가 떠오른다.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반짝이는 한줄기 빛을 보여줘라

- 체호프

 

이걸 보니 다시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가 떠오른다.

소세키가 영어 교사이던 시절 'I love you'를 '너를 사랑해'라고 읽는 학생들에게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하라고 했다던...



엎치락뒷치락 독서.

'책은 책으로, 독서는 독서로'는 진리.

'문학론'을 거론할 때면 한번쯤 꼭 등장하는 현학적인 문장들. 문예적이라면 문예적인.

위험한 건, 기교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요령을 부려 기교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정갈하고 깔끔한 단문.

집앞 마실을 갈 때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대로 차려입는 스무살 처녀의 느낌.

 

 

 

 

-

윗글의 첫 작성일자는 2년 전(12/13)이다. '체호프의 충고'는 이번에 재작성하면서 추가한 것.

분명 리뷰를 쓰려고 메모해둔 것일텐데 뭘 쓰려고 한 건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와중에 아쿠타가와의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이 별로였다는 기억은 나고.

우스운 건 메모해둔 걸 보니 책이 또 재미있어 보인다는 거.

아마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별로여서 주문으로 이어지진 않았고.

- 대출해서 읽다가 좋으면 사서 읽는다.

당연하지만 메모할 당시의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한창 책 여러 권을 동시에 펼쳐놓고 읽을 때인가 한다.

드는 생각은,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거.

 

뭔가,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니 의도치않게 중2병 앓이를 한 기분이다.

정돈되지 못하고 장황하고 중언부언 단단한 땅에 안착하지 못하고 살짝 부유한 채로 떠들어댔던 것 같다.

머쓱하고 쑥스럽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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