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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2157 bytes / 조회: 885 / ????.05.19 09:32
남자들은 다 그래?


백가흠의 신간단편집『사십사四十四』의 첫 목차「한 걸음 쉬고」는 21년 만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옛 동창 얘기가 등장한다.

 

우연이지만 나도 이 소설을 도서관에서 읽었다. 대출하려고 골라낸 책이 7권을 초과해서 그냥 읽고 가자-고 그중 몇 권 추렸는데 그 한 권이 이 소설이다. 근데 하필 첫 목차가 음, 너무 불편했다. 결국 첫 목차만 읽고 책을 덮었는데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고등학생 때 나는 어쩌다 보니 그냥 좀 노는 일진이 아닌 진짜 양아치였던 정균수의 소위 '꼬붕' 노릇을 하게 된다. 그 '꼬붕' 짓의 절정은 교회 친구였던 여자애가 정균수에게 나쁜 짓을 당할 걸 알면서도 방관하고, 일이 터진 후에도 방관한 것이다. 그리고 졸업하면서 정균수와도 헤어지는데 21년 만에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정균수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아내와 남매와 보통 사람'처럼' 살고 있다.

 

이 이야기의 불편한 요소는 보통사람으로 '제대로' 살고 있는 정균수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 21년 전 자신이 저지른 짓의 증거인 정균수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여전히 비굴하다. 물론 세월이 그렇게 지났어도 어린 날 관계의 위압감이 여전히 '나'를 지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균수를 두려워하면서 죄악감에 치를 떠는 모습은, 그 감정의 굴곡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오히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만 남는다. 10대의 비겁과 40대의 비겁은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안쓰럽다면 후자는 후지달지.

 

나중에 M에게 이상의 줄거리를 들려주고 물었다.

 

남자들은 그래? 어렸을 때 자기를 괴롭혔던 상대를 성인이 되어 만나면 그때도 무서워하고 떨어?

M은 간단하게 "아니." 했다.

 

묻고 나서 후회했다. 물어본 대상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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