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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976 bytes / 조회: 906 / 2019.07.14 16:45
별 일 없이 산다


제목 '별 일 없이'는 허지웅의 에세이에 등장하는 목차에서 따왔다. 물론 이런 표현을 허지웅만 쓴 것은 아닐 테지만, 나는 그의 에세이를 읽은 후로 이 표현을 종종 쓰므로 하등 쓸 데 없는 의무감으로 꼭 출처를 밝히고 있다.

 

좀 더 실체적으로 말하자면 '별 일 없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인간 세상에서 발 붙이고 숨쉬는 이상 별 일 없이 살 수는 없다. 나혼자 산다면야 가능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가족이든 지인이든 타인의 별 일도 내 별 일이 되는 게 인간사다 보니...

 

일본 온천 여행을 기점으로(아베 저 등신이 망나니처럼 푸드득 거리는 작금의 사태가 이제야 벌어진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연이어 뉴욕에 다녀오면서 의식적으로 책을 주문하는 걸 멈추었다. 책을 읽으려면 한 장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하는데 당분간 그러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그리고 오늘 아무 생각없이 온라인서점에 접속한 직후 스스로 놀란 것은, 책의 주문 여부와 상관없이 그동안 아예 서점에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책 없이 살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얻은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책 없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집에 이미 수 천 권의 책이 있으므로. 그러니 정확한 질문은 '책 안 사고도' 살 수 있는가? 일 거고, 대답은 '안 사고도 살 수 있다'. 안 산다는 의미가 안 읽는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즉, 박탈감이 없으므로 적어도 책의 경우엔 '산다, 안 산다' 구분 짓는 게 무용무의미하다.

 

책은 참 신기하고 놀라운 인간문화라고 생각한다. 텍스트의 본질은 결국 '읽는' 것이므로 '읽기'만 충족되면 되는 것인데 실상은 그것을 소유까지 하고 싶으니 신기하달 수 밖에. 그러므로 견물생심은 예외없이 책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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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시민 작가의 신간을 주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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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장바구니에 담은 책들.

이언 매큐언의 장편이 절판되고 있다는 소식에 잠깐 놀랐는데 아마 출판사를 바꾸어(문동일 확률이 크다) 복간되지 않을까 짐작된다.

이언 매큐언의 서사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정신을 빼놓는 경향이 심해서 나처럼 멘탈이 약한 인간은 이 양반의 소설을 읽는 일이 내게 피학성향이 있나 의심과 씨름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꾸역꾸역 견디며 읽는달지... 자극에 단련되면 그 자극도 별 거 아니게 되겠지라는, 한마디로 내겐 이열치열 정신으로 무장해야 책을 펼칠 수 있는 작가다. 언제 한번 날 잡아서 그의 소설을 모아놓고 한번에 읽어야지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내친 김에 이번에 대출한 도서관 책을 다 읽으면 매큐언의 전집 읽기에 도전해봐야겠다. 그런 이유로 결제 클릭을 눌렀던 신간『검은 개』는 잠시 주문 보류가 되었다.

 

을유전집에서 나온 에밀 졸라의 신간『작품』은 조만간 주문할 거고...

 

김연수의 신간 에세이『시절일기』와 故김현의 유고에세이에서 뽑은 에세이『사라짐, 맺힘』도 곧 주문할 책.

김연수는 한 때 전작주의 작가였는데 어느날 관심이 푸쉬쉬 식은 작가다. 취향인 작가는 그가 대형사고를 치지 않는 한 갑자기 흥미가 식는 일이 좀처럼 드문데 김연수가 그랬다. 어떤 감정적 발현도 없이 그냥 관심사 바깥으로 밀려난 것인데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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