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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2529 bytes / 조회: 1,126 / 2019.10.18 16:43
이게 고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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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M에게 전송하고 물었다.

두 그림의 화가가 동일인일까, 아닐까.

M이 다른 화가라고 했다. 이유는, 왼쪽 해바라기와 달리 오른쪽 해바라기는 섬세하게 그렸기 때문이라고.

 

왼쪽은 (대표작이라 많이들 알겠지만)고흐, 오른쪽은 샤흘르 벨(Charles belle)이다.

 

저 그림엽서를 산 곳은 교보 광화문이다. 저때 키스 해링, 클림트 등 여러 장을 샀는데 해바라기를 살 때 '아, 고흐다!' 하고 집어들었던 기억이 또렷하게 난다.

 

샤흘르 벨의 해바라기는 최은영의 소설을 읽는 동안 책갈피로 썼는데 내내 눈길을 안 주던 그림에 문득 눈이 갔다. 그리고 드는 생각. 이게 고흐라고?

그리하여 구입한 이래 처음으로 엽서를 뒤집어 확인했더니 'Charles Belle'이 선명하다. 고백하건대, 거의 두어 시간을 인지부조화와 씨름했다. 당연히, 긴 시간 동안 고흐라고 생각했던 착각을 인정하는 것보다 저 해바라기가 고흐인 게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아서다.

 

늘 보면서도 한번도 갖지 않았던, '이게 고흐라고?' 의문을 왜 갑자기 느꼈는가 하니,

고흐의 개인사가 어떻든, 고흐의 회화는 황색이든 푸른색이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 고흐의 회화를 보면서 슬프다거나 우울하다거나 부정적인 감상을 느낀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하물며 회화 '구두'조차도 고된 노동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화가의 연민을 더 강하게 느낀다. 그러니까 내 감상은 그렇다는 거다.

 

'이게 고흐라고?' 의문을 느낀 건, 샤흘르 벨의 해바라기가 무척이나 음울했기 때문. 책갈피로 썼던 최은영의 소설이 우울해서 그렇게 느낀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음, 다시 봐도 역시 음울하다.

 

그리고 이 그림을 몇 년 동안 고흐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내가 바보 같아서 여전히 음울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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