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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961 bytes / 조회: 706 / 2021.02.05 05:48
단상


1. 일간 오프라인 서점(중고서점 포함)에 가봐야겠다.

온라인서점의 단점은 뭐니뭐니 해도 책을 다양하게 살펴보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사전에 작가나 책 제목을 알고 있는 게 아니면 서점이 페이지 상단에 노출시키는 책만 볼 수 있는데, 한마디로 책 정보를 얻는데 굉장히 수동적인 을이 된다. 

보여주는 광주리만 볼 수 있다는 건데, 오프라인 서점이 잘 보이는 매대에 특정 출판사나 특정 작가의 책을 진열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거기선 약간의 발품만 들이면 다른 다양한 책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시쳇말로 얻어걸리기라도 한다지만), 온라인서점에선 이런 즐거움 혹은 행운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출판사, 작가, 독자 모두 손해다. 결국 팔리는 책, 팔리는 작가만 팔리는 거니까. 불황기에 출판사는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할 테고, 작가는 글을 쓰는 동력을 얻기가 힘들어지고, 독자는 다양한 책을 접할 기회를 잃게 된다.

무슨무슨, 어디어디 대단한 상이라도 받지 않는한 신진 베스트셀러 작가, 베스트셀러가 나오기가 어려운 현실. 좋은 작가, 좋은 책이 대중에게 노출이 안 되어 일찌감치 품절/절판되는 현실. 불합리한 결과들이 속출한다.

  

 

2.'1'의 이유로 뒤늦게 발견했으나 이미 품절, 절판된 책들이 있다.

전자책은 읽는(reading)게 아니라 보는(seeing) 기분이라 기피한다. 무엇보다 거의 대부분의 디지털 상품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 개념이고 공유물건에 품을 들이고 애착을 가지는 소유주는 없는 법이라 나처럼 '내것'에 애착이 많은 사람은 애초에 별무관심인 종목이다. 그러나 책이 없어서 못 판다는데 어떡하나. 차선으로 전자책과 해외 원서를 뒤지는데 그럴때면 곧잘 드는 생각... 전자책을 종이책이 대체제로 인식하는 경향에 대하여, 여전히 의아하다. 인류 최고의 완성된 발명품이라는 종이책의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고.

 

 

3. 얼마전에 M을 붙들고 살만 루슈디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개인에겐 불행한 역사지만) 그의 파트와를 떠들어댄 건 궁금한 게 있어서였다. 해마다 갱신되던 파트와가 종료되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릴 줄 미리 알았다면 그는 견디기가 더 쉬웠을까. 종료 시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어느 쪽이 그 시간을 견디는 데 더 쉬웠을까. - 물론 그 어려운 시기에도 그는 사랑과 전쟁도 찍고, 자식도 낳고, 글도 쓰고 할 거 다 했다.

 

사망 시점을 알고 생을 견디는 것과 모르고 생을 견디는 것. 어쩌면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해당할 불편하고 쓸쓸한 진실. 모른 척 하지만 실은 다들 그날이 올 것은 알지만 언제인지는 모르는 채로 매순간 망각의 힘으로 사는 거지. 어느 책 제목을 빌려 인간의 삶은 말그대로 '생사의 장'인지도 모른다.

 

 

4. 마음에 드는 도서관리 앱이 없다.

책이 쌓이다 보니 갖고 있는 책을 엑셀 파일(이나 혹은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주로 샀던 책을 또 살 때. 드물지만 이런 짓을 한다, 적당한 도서관리 앱이 있는지 한번씩 스토어를 둘러보는데 여전히 마음에 드는 앱이 없다. 그렇다고 폰 들고 일일이 바코드 찍는 무식한 짓을 또 할 생각은 1도 없는지라. 

예전 일화인데, 컴맹 여자친구를 위해 Mdir을 만들어줬다는 업계 전설을 들먹이며 M에게 네가 만들어줘- 했더니 그 사람들 헤어졌다던데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또 게으른 물고기처럼 얼른 떡밥을 문다. 왜? 왜애애? 

 

참고로, 나는 여전히 Mdir 성애자다. 컴퓨터를 새로 사든, 포맷을 하든, 노트북을 위시하여 패드 탭 뭘 사든 hwp와 Mdir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 물론 수고는 M이 하지만. 마우스 하나만 있으면 되는 윈도우 시대가 열린지 강산이 몇 번 바뀌었어도 나는 여전히 단축키의 노예다.

 

 

5. 책장을 일부 교체했다. 

이케아 빌리(billy)로 책장 일부를 교체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책이 중구난방 섞였다.

거실과 방 등 바닥에 내려놓은 책을 집히는대로 책장에 대충 꽂을 때만 해도 나중에 십진분류로 다시 꽂아야지 했으나 참으로 무식한 생각이었음을, 책장을 바꾸고 해가 바뀐 지금도 책장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특히 전집이나 시리즈 도서가 각기 다른 공간, 다른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발견할 때는 심란하기가 참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나마도 '혼불 8권'은 어디 꽂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해럴드 블룸 클래식은 뿔뿔이 흩어져서 이 전집이 애초에 몇 권이었는지도 모를 지경. 

 

집에 가장 자주 오는 해주에게 '같이 정리하자' 꼬셔봤지만 바늘 끝도 안 들어간다. 책장을 볼 때마다 드는 기분은, 광활한 바다를 보며 모래알을 세는 심정, 딱 그거다. 아, 우리집에 책이 많구나, 드물게 자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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