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패턴 그리고 편식 > 설(舌)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849 bytes / 조회: 1,254 / 2021.02.05 08:01
독서 패턴 그리고 편식


이것도 일종의 '습관'인가 싶긴 한데...

 

책을 읽는 패턴이 있다. 

그동안 내가 책을 읽어왔던 시간을 거시적으로 펼쳐놓고 흐름을 보니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편협하게 읽다가 - 해외 문학 위주

다양하게 읽다가 - 국내외 작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근 다시 편협하게 읽고 있다. - 해외 작가로 회귀

 

에세이 장르를 읽기 시작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지나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굳이 비용을 들여 타인의 한담을 왜 읽나 했다. 특히나 국내 작가를 잘 안 읽는 편식이 두드러졌다. 이건 어린 시절 이모들 책장의 영향을 받은 이유가 크다. 편식을 드나들면서도 일관된 취향은 해외 문학과 인문학.

 

변명할 말은 있다. 해외아동문학으로 독서의 첫 발을 뗀 세계문학전집 키드이고 보니 국내 작가의 문법에 좀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었다는 게 맞다. 그러던 어느날 국내 작가를 읽어야겠다는 동기를 갖는 순간이 왔으니, 지인들 몇이 모여 얘기를 나누던 중에 책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다들 맞아맞아, 그래그래, 응응... 하는데 나혼자 꿀먹은벙어리처럼 앉아있었다. 

 

이날 화제에 올랐던 책은, 서점에 맨날 들락거리니 이름은 귀에 익으나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이문구 <관촌수필>이었다. 모두가 애국가처럼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처럼 떠드는 책을 나는 모르다니, 그 충격이 제법 컸다. 그리고 이날을 계기로 닥치는대로 국내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관촌수필>은 여전히 안 읽은 책이라는 거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내 독서는 다시 편협해지고 편식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내가 흥미와 재미를 동시에 느끼는 책은 제 3세계 문학인데, 사실 '제 3세계'라고 명명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영미 문화권의 바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제 3세계'는 그 자체로 차별적이고 편견적이진 않은가 주의하게 된다. 물론 이는 내 생각이다.

 

3세계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모스 오즈의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아모스 오즈는 관능적인 문장에 먼저 반하고 이어 그의 이력에 두 번 반하는 작가다.

히브리 문학의 거장인 그는 이스라엘 우파 시온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작가로, '침묵하지 않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노벨문학상은 이런 작가에게 줘야 된다.

국내에 그의 소설이 제법 많이 번역되었으니 아모스 오즈를 다양하게 읽어보고 싶은 독자에겐 희소식.


그리고 최근 아프리카 소설에 재미를 느낀 계기가 된 나이지리아 출신 치고지에 오비오마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나이지리아 동부에 기반을 둔 이보족의 이보 우주론을 바탕으로 플롯이 전개되는 소설인데 시작부터 몽환적인 서술은 왜 이 소설에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좀 묘한데 씹는 맛이 있달지, 하여튼 묘한 매력이 있다.

 

19년 부커상 파이널 리스트인데, 15년 이후 영어로 번역되어 영국에 출간된 소설도 수상의 범위에 포함되면서 아마도 부커상 후보가 된 듯하다.

 

 

 

20210205081729_41f1be77bc221738bf923482af601b32_c0gr.jpg

 

 

 

이쯤되면 치고지에를 따돌린 수상작이 궁금해지는 게 순서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찾아보니,

음. 기존 규정을 깨고 공동수상이 나왔는데 마거릿 애트우드 <증언들>, 버나딘 에버리스토 <소녀, 여성, 다른 것>이 수상작이다. <증언들>은 번역 출간되었다. 소설가 한강으로 인해 국내 인지도가 껑충 오른 부커상 수상작이고, <시녀 이야기>의 후속이고, 작가의 국내 팬층도 제법 두껍고, TV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니 출판사가 번역을 미룰 이유가 없다.


응구기, 아체베 등 이미 서구 제도권에 입성한(영미 문화권이 인정하는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이 있으나, 정작 입문작이 신진 작가라니, 아이러니하다. 이런 걸 보면 명성, 이름값, 네임드 등등이 반드시 그만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닌 듯. 

 

밀린 책을 좀 소화하고 나면 읽고 싶은 소설은 토니 모리슨 <빌러브드>. 노예의 운명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여성의 실화를 다룬다. 계급, 특히나 혈통을 족쇄로 채운 계급은 죽음이 아니고선 끊을 수 없다.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했던 계급사회에선 암초처럼 존재했던 역사다.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391건 5 페이지
설(舌) 목록
번호 제목 날짜
331 바르트의 편지들 21.04.29
330 산 책, 빌린 책, 읽고 있는 책 21.04.29
329 법순 씨와 푼수 씨의 사정 21.03.15
328 그러하다 21.03.05
327 [비밀글] 사라진 책을 찾아서 21.02.12
독서 패턴 그리고 편식 2 21.02.05
325 듄(DUNE) 신장판 2 21.02.05
324 단상 21.02.05
323 품절 21.01.23
322 'The only story' 혹은 '연애의 기억' 19.10.23
321 이게 고흐라고? 19.10.18
320 스탕달 신드롬 19.10.07
319 별 일 없이 산다 19.07.14
318 최고의 만담커플 '돈키호테 vs 산초' ??.04.07
317 글렌 굴드, 바흐, 도이치 그라모폰 ??.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