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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11065 bytes / 조회: 1,060 / 2021.05.04 15:18
'나의 친애하는 적' by 헤어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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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당이 '밤의책'이라는 이름으로 벌써 두 번째 책을 냈다.

재미있는 건, 첫 번째 책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두 번째 책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우선은 김연수의 추천사가 흥미를 끌었고(매번 생각하지만 이 작가는 추천사를 뭐이리 서정적으로 쓰는지 모르겠다), 두번째는 저자 베르너 헤어조크가 흥미를 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을 뒤로 하고 오늘 발견한 신간을 새치기 주문한 건 두 번째 이유가 결정적이다.

 

베르너 헤어조크를 나우위키 인물 페이지에서 읽던 중 '클라우스 킨스키'라는 이름이 눈에 걸린다. 그러니까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빠인가 싶은 거다. 구글링을 하니 아니나다를까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눈코입의 사이즈를 줄이면 딱 나스타샤 킨스키의 얼굴이다, 링크를 눌러 클라우스 킨스키 페이지로 이동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일화가 펼쳐진다. 직전에 읽었던 베르너 헤어조크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했지만 클라우스 킨스키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대기가 주루룩 펼쳐진다.

 

 

[출처.https://namu.wiki/w/클라우스 킨스키]

 

원래 배우들이나 연출자, 감독들 중에서는 악역으로 나왔어도 실제로는 선량하고 점잖은 경우가 많다. 영화 상에서의 배우가 보이는 광기와 실제 배우의 모습은 다르니까... 물론 예외도 있는데, 바로 킨스키가 그렇다.

 

그는 《아귀레, 신의 분노》 촬영 내내 헤어초크 감독과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 밑의 예시들은 이 영화의 제작 당시에 있었다고 하는 그의 기행들이다.

부하를 혼내는 장면을 촬영할 때 단검으로 부하 역을 맡은 배우의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에서 진짜로 너무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배우가 다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철로 된 투구가 움푹 패였다고 한다. 
중간에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제작비에 전 재산을 쏟아 부은 헤어초크 감독은 그에게 총을 겨누면서 처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고 협박했다. 헤어초크 본인의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하는 적》을 보면 실제 사건은 이랬다. 킨스키가 광분하며 촬영장을 떠나려 보트를 타자, 헤어초크가 그 뒤에 대고 말하길 "내 텐트에 권총이 하나 있는데, 당신이 여기를 떠나면 난 그 물건을 당신에게 쏠 것이고 마지막 남은 한 발로 내 머리를 쏠 테요"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아무리 또라이인 킨스키라도 더한 또라이가 꼬장부려서 무서웠는지 이 정도까지 협박하자 바짝 쫄아서 연기를 계속했다고(...).
한편 킨스키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피츠카랄도 촬영 당시 헤어초크가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엑스트라들에게까지 함부로 대했고, 심지어 눈에 띄는 동물들을 모두 잔인하게 학대했다고 한다. 퐁고 강 급류에 라마를 집어넣어 익사시킨 적도 있다. 한 번은 킨스키를 그렇게 만들어서 급류에 떠밀어 보낸적도 있다고(물론 살았다). 그런데 킨스키 같은 제정신이 아닌 배우의 말을 어떻게 믿을지, 얼마나 믿어야 할지 의문이다.
특히 촬영장에서 킨스키가 워낙 다혈질인 성격을 감추지 않은 덕에, 감독 본인은 물론 다른 배우들이나 제작진들과의 관계 또한 원만하지 못했다. 한 번은 촬영 중에 킨스키의 지랄(...)이 하도 악화되자 원주민 역 배우로 분했던 현지 원주민들이 킨스키에게 화가 쌓여 헤어초크 감독에게 "저 사람, 죽일까요?"라고 물어 왔다고 한다. 이 때 원주민들은 헤어초크 감독을 킨스키보다 더 무서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킨스키가 매일같이 화를 내는 반면 헤어초크 감독은 그 꼴을 매일 보면서도 꿈쩍 하나 안 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화 내는 놈보다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는 놈이 더 무서웠던 것. 어쨌든 이 질문에 헤어초크 감독은 "영화를 촬영해야 하니 지금은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물론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킨스키는 천만다행으로 죽지 않았지만, 헤어초크는 그 때 원주민 배우들을 말린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킨스키와 헤어초크 이 두 사람이 얼마나 골 때리는 콤비였는지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
(…중략)참고로 이 《위대한 피츠카랄도》의 내용은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였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배를 산으로 끌고가서 산을 넘어버리는 내용이다. 당연히 스탭들이 배를 산으로 끌고가야 했다(...)
이하는 킨스키와 헤어초크와의 신경전에 관련된 일화.
킨스키는 주기적으로 헤어초크에게 전화를 해서 독설을 퍼부었다. 특히 그의 연기력을 감독이 지적하면 감독과 제작진들의 면전에서 입에 흰 거품이 나도록 독설을 하였다. 다만 이와 별개로 감독의 지적을 받아들여 연기를 수정했다.
그런데 헤어초크도 만만치 않았다(...) 헤어초크는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대응했으나 실제로는 킨스키의 계속된 독설에 화가 치밀어 그의 집을 불태울려고 가솔린이 가득 담긴 통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갔으나 '킨스키의 개'가 무서워서 실행에 못 옮겼다고 한다.(...)
저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면서도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시작된 헤어초크와의 인연은 결국 그 뒤로 《보이체크》, 《노스페라투》, 《위대한 피츠카랄도》, 《코브라 베르데》 등을 같이 작업하면서 15년간 계속 이어진다. 킨스키가 사망한 뒤 헤어초크 감독은 애증이 많았던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인 《나의 친애하는 적 (My Best Fiend)》를 만들었다.
 

 

 

기타_

1. 박장대소했던 개인사의 말미는 경악할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친족간 성폭행이 그것인데 킨스키 사후에 피해자가 진실을 밝혔다고 하니 살아있는 동안 킨스키가 죗값을 치르지 않은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2. 클라우스 킨스키는 반사회적 인경장애 진단을 받은 바 있다. 

3. 내용 중에 '퐁고 강'이 있어 검색해보니 그런 강이 없다. '콩고 강'의 오타인 것 같다.

4. 허지웅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적』은 헤어조크의 다큐멘터리에서 제목을 빌려다 쓴 듯.

5. 헤어조크를 뮌헨에서 파리까지 걷게 한 로테는 이후 8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6. 헤어초크, 헤어조크 등 표기가 난무하는데 '헤어조크'가 공식 표기인 듯하다.

7. 헤어조크는 파스빈더, 빔 벤더스와 함께 뉴저먼 시네마를 이끈 주역이라는데 파스빈더, 빔 벤더스의 영화는 봤으나 헤어조크는 이름조차 이번에 처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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