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예로 비유하자면 서사는 없고 모티프만 있는 것 같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한마디로 난해하다. 난해하다는 건 다른 말로 불친절하다는 의미. 그중에서도 특히 불친절한 타르코프스키의 유작 <희생>을 본 건 중3 때인데, 무조건 봐야되는 걸작이라는 친구의 등쌀에 여름방학 때 친구네 거실에서 나란히 앉아서 봤다. 그리하여 졸리는지 지루한지 구분 안 가는 상태로 눈 뜬 장님처럼 멍하니 앉아서 본 <희생>이 그 여름 내게 남긴 건 '칸 수상작은 지리멸렬하고 재미없고 어렵구나' 였다.
위안이 되는 건 타르코프스키를 수면제로 삼은 게 나뿐만은 아니라는 거다.
-p.77, 정지돈 『영화와 시』
그러니까 영화를 서사와 플롯이 움직이는 활동사진이라고 정의할 때 <희생>은 영화적인 재미(=자극)를 느낄만한 요소가 딱히 없다. 영화를 텍스트로 읽고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 혹은 영덕들이야 환호할 요소가 있겠지만 지면 혹은 상상에 갇혀 있던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그것에 서사와 플롯이라는 날개를 달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 공식에 익숙한 일반 대중에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그러니까 인간을 응시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세계는 불친절하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일반 대중이라, 타인의 잠꼬대가 기억에 남지 않는 것처럼 줄거리도 플롯도 뭐도 기억 안 나는 불친절한 <희생>이 시간의 층층을 뚫고 내 기억에 남긴 건 단 한 장면이다. 영화 포스터이기도 한 황량한 대지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그것인데,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과 상실이 있겠지만 <희생>을 얘기하고자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장면 밖에 안 떠오른다. 아, 그 나무에 때때로 아버지와 아들이 물을 주던 장면도 어슴프레 기억난다. 그리고 기억하는 건 이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다는 거. 새삼 깨닫는다. 영화 <희생>은 내게 기억을 더듬어야만 얘기할 수 있는 영화라는 걸.
그 여름 이후 <희생>을 다시 떠올린 건 대학 시절, 아트시네마를 쫓아다니던 학과 동기가 어느날 타르코프스키 얘기를 꺼냈을 때였다. 내가 <희생>을 봤다 하니 동기가 무척이나 반가워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줄거리든 감상이든 내겐 영화에 대해 동기와 나눌 얘기가 없었다. 떠오르는 건 이미 썼듯 그저 앙상하고 어린 나무 한 그루 뿐이다. 그리고 동기에게 나무 얘기를 하다 깨달은 건 망명지를 떠돌며 외롭게 작업했던 감독의 유작이 내겐 활동사진이 아닌 회화의 이미지로 남았다는 거였다.
'활동사진'은 'Motion Picture'를 직역한 단어다.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시민들에게 관람료를 받고 최초로 활동사진을 상영했을 때 영사기가 뿜어내는 '움직이는 열차'에 모여있던 시민들이 격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렇듯 최초엔 움직이기만 해도 감동을 주었던 활동사진은 이후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듣고 보는 얘기'로 종합예술의 지위를 획득하는데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Moving Picture' 즉 'Movie'다.
대개 영화를 무비, 필름, 시네마로 구분하는데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트시네마를 찾아다니던 동기는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에 흥미를 느끼는, 말하자면 '필름'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이 친구와 극장에서 영화를 보노라면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쇼트, 인서트, 롱테이크 등등. 지금은 공기처럼 익숙한 용어들이지만 대부분 이 친구에게 귀동냥으로 얻은 것들이다. 이 친구는 특히 장이머우를 필두로 하는 중국 5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좋아했는데 이 친구에게 지금까지도 고마운 건 지극히 대중적인 내 취향을 비웃지 않고 개와 고양이가 뛰어다니는 영화를 극장에서 함께 봐준 거였다. 여담이지만 이 친구를 만나기 전의 나는 중국 영화와 홍콩 영화를 구분 못했다.
- p.22, 『시간의 각인』
『시간의 각인』 작가 서문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이 감독으로 사는 동안 받았던 많은 편지를 언급하는데 편지를 보낸 이들 대부분은 토목기사, 설비기사, 공장에서 일하며 야간대학에 다니는 학생, 여교사, 정년퇴직한 늙은이 등이다. 위에 인용한 편지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어느 여자 노동자가 보낸 것인데 이쯤되면 속물적인 혼란이 온다. 내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즐기지(樂의 의미가 아님) 못하는 건 내가 속한 사회환경적 태생의 문제 때문인가. 좀 더 즉물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노동자(블루 컬러) 계급이 아니어서인가, 라는 원론적인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다시 '노동자 계급'의 정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은 엉뚱한 곳에 좌표를 찍기 시작한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골을 읽으며 제정러시아를 통과하고 고리키와 파스테르나크의 책을 손에 쥐고 혁명과 냉전을 치러낸 공산사회의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밖에 모르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의 기저를 갖고 있는 것일까.
결론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라는 거다. 그 여름의 나는 너무 어렸으니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그의 영화를 보면 답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여담
사진을 찍으려고 오랜만에 책장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책을 꺼냈을 때의 일.
김용규 교수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춰보다 제목 옆 '영화관 옆 철학카페'에 시선이 박혔다. 비슷한 제목의 책이 몇 권 있어 잠깐 헷갈렸지만 왠지 이 책은 내 책장에 없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점에 접속해 책을 보니 역시나 낯설다. 그치만 혹시 모르니까 자주 이용하는 서점 몇 군데서 과거 주문 내역을 확인하고 책장을 열심히 뒤졌지만 역시 없는 것 같다. 책은 절판인데.
와중에 M이 전화했다. 통화로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는지 뭐하냐고 묻는다. 그에 내가, 어쩌고 저쩌고 책이 17년에 절판됐고,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전작주의고, 김용규 교수의 책을 사모으던 게 14년 부터인데 이 책만 안 샀을리가 없고 어쩌고 저쩌고 한참을 징징 대니 M이 묻는다. 그런데 네 책장에서 책을 찾는 게 가능하긴 하냐고.
그러니까. 그러게. 도서 정리 앱 하나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예전에 M한테 앱 만들어 달라고 얘기 꺼냈다가 까였던 게 새삼 속아프다.
:::여담 하나 더
'노동자'를 보니 기억 하나.
대학 신입생 때의 일. 교필에서 상상도 못했던 수학II 암습을 맞고(난 문과생이라고ㅠㅠ) 좀비 상태로 기어들어간 과방에서 구석에 누가 던져놓은 책을 생각없이 집어들었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꿈쩍도 않고 절반 정도를 읽었다. 책을 읽는내내 카프카식으로 말하면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는데 책은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많은 강을 건너고
많은 산을 넘었다
새벽은 이미 왔는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부으며
온몸으로 부르던 새벽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나는 처음 노래했지만
노래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누구의 가슴에나 이미 있었고
누구라도 받아쓰지 않으면 안 될
우리들 가난한 사랑의 절규였다
p.12, 박노해 『노동의 새벽』
밤새워 일하고 지친 몸에 차가운 소주를 들이부으며 새벽과 맞서던 누군가의 스무 살과 맞닥뜨린 그 해 3월.
나도 스무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