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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10566 bytes / 조회: 818 / 2022.01.22 00:27
도스토옙스키 '온순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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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갑자기 일시정지하는 것처럼 생각이 멈출 때가 있다. 일종의 '고요' 상태가 되는 것인데 저녁에 갑자기 이 고요가 찾아왔다. 그리하여 의자에 앉은 채로 근처 펭귄 클래식 박스에 시선을 박고 멍때리고 있는데 처음엔 F가 보이고 다음엔 Fyodor가 보이고 그러다 응? 'Fyodor Dostoyevsky'가 보인다. 어, 80권에 도끼도 있었네. 

순간 몇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랐는데 그중 가장 큰 지분은 '민망함'. 안 읽은 책은 안 사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꼭 읽을 책을 사고 있다. 그런 주제에 가지고 있는 책의 리스트도 제대로 확인 안한 무성의가 어이가 없다.

 

제목이 <The Meek One>인데 내가 아는 범위에 없는 제목이다. 분량으로 봐선 단편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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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 조명을 켜둔 채로 찍었더니 이미지 색온도가 높다

 

겉표지를 열면 본문을 발췌한 것 같은 페이지가 등장하는데 이것만 봐서는 소설의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내용이 궁금해 바로 페이지를 펼쳤는데 남자가 (아마도 아내일)그녀에 대해 서술하는 2페이지 중반까지 읽을 때는 자전적 소설인가 생각했고, 3페이지로 넘어가면서는 그냥 소설인 것 같은데...로 의식흐름이 이동한다. 결국 궁금증을 못참고 -화자 독백에 비극 서사가 풍기는데 나는 이런 거에 약하다, 책을 덮고 검색하니 이미 국내 번역이 있다. 제목은 독자들이 검색하기 편하게 출판사 모두 『온순한 여인』으로 통일했다. 

 

『온순한 여인(The Meek One)』은 문학동네 도끼 단편집 『백야』에 수록되었다. 재미있는 건 문동 『백야』에는 수록되었지만 열린책들 『백야』에는 수록되지 않았다는 거. 두 출판사 외에 지만지는 『온순한 여인 / 우스운 사람의 꿈』 두 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참고로 문동과 열린책들 『백야』는 겹치는 단편이 「백야」를 포함해 세 편에 불과하니 도끼의 단편이 궁금하다면 고민할 거 없이 두 권 모두 구입해도 된다. 지만지의 두 단편은 열린책들과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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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좀 하다가 다시 책을 펼쳐보니 제목 아랫줄에 처음엔 안 보였던 'A Fantastic Story'가 보인다. 음, 그렇군.

검색에서 건진 내용인데 '온순한 여인'은 『죄와 벌』을 위시한 세 장편과 마지막 장편『까라마조프 형제들』사이에 발표한 단편이라고 한다. 즉 작가의 습작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 스포가 될 것 같아 검색창을 닫았는데 화자가 남편이고 서술이 독백형인데 환상 스토리인 걸 보면 남편이 자의식의 늪에서 아마도 '온순한(했던) 그녀'를 일종의 조리돌림 하는 내용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쓰다보니 츠바이크의 심리소설이 연상되는데(그럼 너무 좋지!) 아니면 말고. 소설이라는 게 원래 작가와 책 속 화자 뿐 아니라 독자 역시도 수십 번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면서 읽는 거다.

 

 

'온순한 여인'은 영화화도 되었다. 프랑스 감독 로베르 브레송이 찍었는데 3대 필름 영화제 초청 전문인 브레송의 첫 번째 컬러 영화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름조차 생소한 낯선 감독인데 혹시 내가 본 영화가 있을까 싶어 감독의 필모를 찾아보니 <호수의 란슬로트>가 눈에 띈다. 어느 한 시기에 누벨바그 영화를 몰아서 본 적이 있는데 아마 이 시기에 봤던 것 같다. 음. 근데 이건 일반화의 오류일수도 있지만 '란슬로트'(란슬롯, 랜슬로 뭐든)이 등장하는 영화치고 오락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못 봤다. 란슬로트가 가지고 있는 서사는 그토록 (통속적으로)훌륭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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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 femme douce , A Gentle Creature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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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을 좋아하는데 작품이 너무 없어 늘 서운하던 차에 도끼의 단편을 발견한김에 펭귄 박스를 쭉 훑었더니 있다, 고골! 근데 '코'다. 급실망... 한김에 서점에 접속해 검색하니 오, 그사이 을유에서 고골의 신간이 나왔다! 당장 주문해야징~ 

근데 가만 보니 을유 문학 품번 115, 116번이 연속으로 고골이다. 『감찰관』은 펭귄판을 갖고 있지만 혹시 몰라 목차를 확인하니 '감찰관'을 제외하곤 수록 단편이 안 겹친다. 다행이다. 민음사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의 비극이 안 벌어져서. 두 권 다 주문해야징~ 근데 신간 페이지의 페이퍼를 보니 나보코프의 고골 비평도 나왔네? 고골 전공자이자 번역가가 고골 연구서도 냈고? ......71.png...... 여기가 개미지옥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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