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은 제작 코멘터리에 의하면 크게 '산'과 '바다' 두 개의 시퀀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청색인지 녹색인지, 산맥인지 파도인지 어렴풋한 표지를 트레이싱지로 감싸 안개 느낌을 준 건 아마 그 연장선인 듯.
OST로 '안개'를 쓴 것도 그렇고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포'가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어선지 이포는 김승옥의 '무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면 해준과 서래의 서사도 그 분위기, 그 통속성, 그 비극이 어쩐지 '무진 기행'과 닮은 듯도 하고...
-김승옥 『무진 기행』
서래가 해준에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묻는 대신 "내가 그렇게 예쁩니까" 물었다면 두 사람의 현재와 미래는 달라졌을까...
각본을 갖고 있어 살까말까 했던 스토리보드북.
사더라도 나중에 천천히... 라고 생각했는데 증정이었던 스틸컷 엽서가 각본 때 줬던 거랑 스틸컷이 다르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뒤늦게 후다닥 주문했다.
근데 각본을 사면서 받았던 스틸컷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엽서를 해당 사이즈 opp 봉투에 옮긴 건 기억 나는데 그러고선 어디다 뒀는지 도무지 기억이 오리무중... 아, 진짜 망할 기억력...ㅠㅠ
펼쳐서 아무 페이지...
'아무'라기엔 역시 해준과 서래가 같이 있는 장면이 좋다. 다투든 의심하든 미워하든 뭘 하든 서로를 바라보는 씬이 좋다. 중요한 건 어쨌든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거다.
스토리보드는 각본을 실제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의 기초 작업이다. 일종의 설계도 그리기에 해당하는 이 작업 속에는 ‘글을 시각화하는 계획’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카메라가 어떤 순간을 강조하고 어떤 순간에 물러나려 했는지, 장면 전환을 어떤 식으로 다르게 가져가려 했는지 등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헤어질 결심'의 시각적 디테일이 최초로 만들어진 순간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사진 도판을 제외한 본문만 4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보통의 장편 영화 스토리보드북보다 훨씬 촘촘한 밑그림을 선보이고 있어서, 많은 마니아를 만들어 낸 '헤어질 결심'의 섬세한 연출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되었는지 확인시켜 준다.
-출판사 책소개
사실 증정품인 스틸컷도 욕심 났지만 그보단 편집되고 삭제된 컷이 있다는 얘기에 솔깃했다.
전체를 다 보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얘기를 좀 더 담담하게 감독의 시선으로 조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섯 장 중 원픽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컷.
왜 그랬니 해준아...
왜 그랬니 서래야......
정작 영화는 보지도 않고 책장에 꽂은 각본과 스토리보드북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영화를 봐야 하는데 여전히 미루고 있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엔 볼 생각.
영화가 좋아서 블루레이를 산 적은 있지만 각본을 산 건 이번이 처음...... 까지 쓰고 생각해보니 한 권 더 있다. 나탈리 포트먼, 주드 로가 열연했던 <Closer>의 원작으로 패트릭 마버가 쓴 동명 희곡 『Closer』다. 영화를 보고난 직후 원작을 봐야겠다 싶어 뒤졌으나 당시 국내엔 번역서도 원서도 없어 무척 아쉬웠다. 결국 이후 LA에 갔을 때 산타모니카(그로브몰) 반즈앤노블에서 책을 샀다. 직원에게 문의할 생각으로 2층으로 올라갔는데 2층 플로어에 발을 딛자마자 마주친 서가에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이정도면 운명이라고 본다.
각본집 표지는 극중 서래가 들고 다니던 산해경, 스토리보드북 표지는 서래 집의 벽지를 썼다.
* 영화를 안 봐서 이런 디테일까지는 몰랐는데 그렇다고 한다. 서래 집 벽지는 DB금지라 이미지를 못 가지고 왔다.
산해경의 여백을 채운 글씨는 탕웨이가 직접 써넣은 것이라고 한다.
표지 관련하여, 그러니까 스토리보드북이 나오기 전 각본집의 표지와 관련하여 후일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해당 내용을 못 찾겠다. 기억하기로 각본집 표지는 서래의 산해경과 서래 집 벽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이 맞다면 각본집에 산해경, 스토리보드북에 벽지를 썼으니 결국 둘 다 표지로 간택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