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입한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는 피카소가 '예술가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런데 '예술가에 관한 책'을 보니 절판됐다가 최근 출판사를 옮겨 복간된 앙토냉 아르토의 '고흐'가 생각나는 거다.
읻다에서 복간한 책의 제목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숲에서 출간됐고 절판된 책의 제목은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숲출판사는 '나는 고흐의 자연을' 아래에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를 부제처럼 회색 처리했다. 아마도 '자살'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런 형식을 취한 듯. 아무래도 이런 단어는 트라우마를 상기시키기도 하니까.
나는 절판된 책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을 살 때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곧 절판될 거라고. 그리고 실제로 절판됐다.
이번에 책이 복간된 걸 봤을 때 '오, 다시 나왔네' 정도가 감상의 전부였는데 역자가 바뀐 걸 보니 또 슬쩍 마음이 동한다. 살까?
......여기까지 쓰고 문득 호기심에 책을 꺼내와서 신간과 본문을 비교해봄... 그리고 당황...
나는 오래 전부터 순수한 線의 회화에 열광했는데, 어느 날
線이나 형태들이 아닌,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온통 격동하듯 그린 반 고흐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격동은 멈추어 있다.
마치 다들 알아듣기 힘든 말로 이야기하는,
그리고 온 세상와 오늘날의 삶이 온통 밝히려고 매달린 이후부터 더욱 모호하게 된 저 꿈쩍하지 않는 힘의 무지막지한 저돌성에 몰매를 맞고 있는 듯 멈추어 있다. 바로 그 몽둥이질.
진짜 그의 몽둥이질로.
반 고흐는 자연과 오브제의 모든 형태를 쉬지 않고 때린다.
반 고흐라는 대못으로 꽁꽁 엉겼던 올이 퍼진 풍경들은
찢겨진 복부 사이로 역정을 내며
자신의 적대적인 살덩이를 드러내고 있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이 풍경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래 전부터 순전히 선형적인 그림은 나를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반 고흐를 알게 되었다. 그는 선이나 형태가 아닌, 꼼짝하지 앟는 자연의 사물들을 그렸다. 그 사물들이 경련의 와중에 있는 것처럼.
그러고도 꼼짝하지 않는.
관성이라는 힘이 극렬하게 기세를 뻗치고 있는 양, 모든 사람들이 에둘러 말하는 이 관성은 온 세상과 현재의 삶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고 덤벼든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더 모호해졌다.
그런데, 반 고흐는 그의 결정적 타격으로, 그야말로 둔기의 타격으로 자연과 사물의 모든 형태를 쉼 없이 두드린다.
반 고흐의 못에 결이 정리된
풍경들은 자신의 난폭한 살갗을,
갈린 배 사이로 내장이 드러난 지세地勢의 노여움을 드러낸다.
더구나 우리는 어떤 신묘한 힘이 지금도 그 풍경들을 변형시키는 중인지 알지 못한다.
* 발췌의 엔터는 원문을 따른 것임.
이 정도면 번역이 반역인데?
혹시 싶어 확인하니 두 책이 저본으로 삼은 판본이 다르다. 아, 어쩐지...
차이를 확인하고 다시 찬찬히 비교해보니 두 책이 수록한 목록도 다르다.
신간을 사야겠군.
덧_
화면에 중고책이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눌렀다가 중고가를 보고 헐......
앙토냉 아르토의 다른 중고가를 보고 한번 더 엥......
절판된 책의 중고가는 가차없구나.
다행히 나는 다 갖고 있지만...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