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녹색광선의 『결혼·여름』을 도서관 서고 신착칸에서 발견했을 때 심봤다고 생각했다. 내돈내산과 도서관 새 책을 탐내는 건 별개의 본능인지라...
근데 즐거움은 잠깐이고, 요리봐도 조리봐도 예쁜 책이 잘 안 읽혀서 난감하다. 세기의 미남과 마주 앉았는데 대화가 자꾸 비껴가는 사오정이 된 심정이랄까. 다른 작가면 그러려니 하고 꾸역꾸역 읽었을 텐데 어차피 사려고 했던 카뮈라 변심은 빨랐다. 원래는 예쁜 녹색광선의, 모처럼 김화영 교수가 아닌 다른 역자의 책을 주문할 생각이었으나 책을 반납하고 당일 책세상 카뮈를 주문했다. 그리고 카뮈의 다른 산문 『안과 겉』도 주문.
'안과 겉'은 (현재 시점) 책세상만 번역 출간했다.
그나저나 주문하려고 검색하니 책세상 카뮈 전집 리스트가 절판, 품절로 구멍이 숭숭 났다. 이 전집의 절반(이젠 열세 권이 됐음)을 갖고 있는 터라 다른 경우였다면 서둘러 빈 리스트를 채우려고 아등바등했을 텐데 행인지 불행인지 책세상 카뮈 전집은 내겐 좀 애증의 역사인지라 그냥 포기.
거두절미하고 중요한 가독성에 대하여.
책세상 『결혼·여름』은 다행히 녹색광선보단 잘 읽힌다.
짚고 넘어가자면, 어느 역자가 '번역을 더 잘 했다' 라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감정적 문제 즉, 역자의 문체를 타는 취향 탓일 수도 있다.
각종 향기와 태양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선선해진 저녁 공기 속에서, 정신은 차분해졌고 이완된 몸은 충족된 사랑에서 비롯된 내면의 침묵을 음미하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았고,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둥글게 사그라드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나는 충족되었다.
향기와 태양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저녁 기운으로 서늘해진 대기 속에서 정신은 차분히 가라앉고 긴장이 풀린 몸은 물리도록 맛본 사랑이 남긴 내적 침묵을 음미하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았다. 해가 저물어감에 따라 점점 둥글어지는 들판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흡족하였다
지난 연말을 앞두고 책세상이 새옷을 갈아입은 판형으로 카뮈 전집 개정판을 출간했는데 번역을 새로 다듬었다고 하니 '결혼·여름'도 포함될 것 같지만, 근데 어차피 나는 카뮈 전집 소장은 포기한 터라 그냥 이대로 만국박람회 기분으로 헤쳐모여 하는 걸로...
세월 풍파가 느껴지는 왼쪽 세 권은 시기는 기억 안 나지만 꼬꼬마 때 교보 광화문 매장 진열대에서 샀다.
왼쪽 세 권은 구간, 나머지는 개정판.
이 개정판도 하나 둘 절판됐고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펀딩을 거쳐 재개정판 1차 분이 나왔다.
매대에 '염가도서' 이런 플랜카드가 아마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균일가 3,000원. 현재시점으로 실화냐 싶은 가격.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개정판 출간을 앞두고 재고떨이였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