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연
『현대미술강의』
테리 이글턴
『비극』
그렉 이건
『내가 행복한 이유』
박홍순
『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
분명 박홍순의 책은 이제 그만 살 거라고 했는데 도서관에서 대출한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최혜경)를 읽다가 연장선에서 구입. 서점분류 중에 '청소년'이 있어 정말 한참 고민했으나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으로 내적합리화를 거치고 주문했다.
'7권 대출'의 제약으로 도서관에 버리고 온 그렉 이건의 신간 소설집.
절판으로 전설이 될 뻔한 그렉 이건의 『쿼런틴』도 같은 출판사에서 전면 재번역을 거쳐 이번에 복간됐는데 높은 중고가로 원망을 샀던 초판을 갖고 있지만 번역을 완전히 새로 했다고 하니 당연히 복간본도 살 거다.
학습이 안 되는지 늘 품절, 절판되고 나서야 수요가 폭발적으로 생겨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SF판.
애증의 작가인 테리 이글턴의 신간. 이글턴을 읽을 때마다 매번 끙끙 앓는다. 글이 이렇게 안 읽히는 이유는 작가의 문제인가, 번역의 문제인가. 자칭타칭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의 텍스트는 왜이리 관념이 철철 넘쳐 자꾸만 눈이 미끄러지게 하는가.
그럼에도 이글턴의 책이 눈에 띄면 조건반사처럼 손을 내미는데 무엇보다 목차가 너무너무 재미있다. 한마디로 미리보기에 속아서 구입한 재미없는 장르소설 같달지. 왜있잖은가. 딱 미리보기까지만 재미있는 장르소설.
읽을 때마다 다신 이 양반 책 안 읽는다 하면서도 또 구입하고만 변은 '재미없으면 내 탓, 재미있어도 내 탓'.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되는 책이라는 추천에 구입.
내게 '현대미술'이 이해할 수 없고 난해한 영역에서 궁금하고 알아보고 싶은 영역으로 넘어온 결정적 계기는 잭슨 폴록의 넘버 시리즈다. 그 전에 피카소라는 전조('weeping woman', 1937)가 있긴 했지만서도.
최근 Chat GPT를 필두로 폭우처럼 쏟아지는 AI의 공세를 대하는 휴먼을 보면서 했던 생각인데, 약 130년 전 필름 카메라의 등장을 지켜본 19세기 말 대다수의 화가들은 아마도 이제 회화의 시대는 끝났다고 절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회화는 인상주의, 초현실주의로 옷을 갈아입으며 살아남았고 10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게 역사의 혹은 시대의 아이러니인 거지. 역사가 예측한대로 흘러간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은 긴 시간 앞에서 언제나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