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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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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을 끌어가는 요소는 미국 소도시. 연쇄살인범. 모방 범죄. 과격하지만 인간적인 베테랑 형사. 유년기 상처를 지닌 천재 프로파일러 청년이다. 여기까지는 같은 장르의 여느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엽기적이고 불가사의한 사건의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도 큰 줄기만 보면 흔하고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는 이 흔한 이야기에 신화를 끌어온다. 그것도 그리스 신화다. 주인공은 헤라클레스.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12과업. 헤라클레스의 정적으로 부활한 하이드라. 이쯤 되면 책장이 넘어갈수록 궁금해진다. 천재 프로파일러 에이들의 분석처럼 이 모든 이야기는 단지 헤이워드 부인의 분열된 자아가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걸까, 아니면 과학과 이성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 것일까. 그리하여 『바이퍼케이션』은 읽는 동안 두 개의 추리를 요구한다. 첫째, 과연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분열된 자아인가 아니면 그의 주장처럼 실제로 부활한 신화 속 영웅인가. 둘째, 하이드라는 과연 누구이며(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그리고 제각각으로 보이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모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쯤 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책장을 넘어가게 하는 속도, 소일을 제쳐두고 독서를 우선 순위에 놓게 하는 흡인력. 이는 모두 작가의 힘이다. 서머셋 몸도 말했다. 소설은 첫째도 둘째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우혁은 정말 얘기를 재미있게 하는 작가이고『바이퍼케이션』역시 세 권이라는 분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숨에 읽힌다. 오히려 이야기의 규모를 봤을 때 분량이 짧은 듯 느껴진다. 데이터가 너무 많아 흘러넘친다고나 할까. 장르의 전형에 충실한 한편 그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작가의 세계관까지 읽어 내기엔 여러 모로 시스템의 과부화가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만도 벅찬데 데카르트와 융까지 등장하니 머리가 바빠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갈 길이 바빴던 탓인지 이야기를 통해 펼쳐져야 할 그리스 신화와 관련한 내용의 상당수가 에이들의 입을 통해 서술되는데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새로운 장이 시작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용은 그 자체로 엽기적인 한편 흥미진진하여 나중에 따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 분이 여행객들 중에 가장 골치 아픈 부류는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부류를 들라면 나는 두 말 않고 어설픈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어설픈 영웅을 꼽겠다.
사실 그리스 신화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신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이 우리 인간들과 하등 다르지 않아서인데 특히 신화 속 얘기를 풍성하게 하는 일등공신은 뭐니뭐니 해도 질투하는 신들이다. 물론 질투하는 신의 최고봉은 헤라(로. 주노) 여신이고. 헤라가 없었다면 그리스 신화를 다룬 책의 두께는 상당히 얇아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 소설 『바이퍼케이션』도 탄생할 수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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