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니페거『시간 여행자의 아내』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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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5981 bytes / 조회: 3,757 / ????.07.17 17:08
[도서] 오드리 니페거『시간 여행자의 아내』


내겐 한때 '베스트 프렌드'인, 유학 시절에 만난 '유이치'라는 이름의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Yuichi Ts...'군은 자칭 타칭 천재인 녀석.
우리나라로 치면 '민수'정도로(네이웃에서 '흔한 이름'으로 검색) 일본에서 흔한 이름인 유이치는 도쿄대에 재수를 거치지않고 바로 합격하고 2학년 때 전공(수학)을 모두 이수한 다음(본인 말로는) 남은 학기는 교양과목을 들으면서 열심히 놀았다고 하는 녀석이다.
유이치를 처음 만난 계기는 같은 기숙사, 같은 층을 쓰면서였는데 기숙사의 공동 부엌을 사용하고, 부엌이나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치면서 안면을 익혔다. 사실 유이치는 그 때만 해도 그저 같은 동양인일 뿐이었다. 유이치와 친해진 것은 기숙사 관리시스템의 착오로(사실은 게으름을 피우느라 확인을 안한 내 잘못이지만) 다음 학기 기숙사 배정을 놓치고 기숙사에서 나와 옮긴 새 숙소(apartment)에서 다시 녀석을 만나면서였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유이치는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는 studio를(우리식의 원룸) 쓰고 있었다. 기숙사에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보다 가까워진 동선과 눈에 띄는 몇 안 되는 동양인이라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복도에서 딱 맞닥뜨렸을 때 내가 먼저 유이치를 초대하면서 녀석과의 친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very funny하다는 이유로 녀석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는데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저지르고 다니는 실수가 그에겐 모두 재미있는 모험담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는 내게 코메디언이 될 것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권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 그런 현상이 생겼지만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연예인중 코메디언이 가장 대우받고 인기를 누리는 직종이다.
언어가 통하는 것과 정서의 밑바닥이 통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탓에 유이치와 나는 매우 친한 것 같기도 하고, 좀 친한 것 같기도 한 그런 애매모호한 사이였는데, 녀석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어느 날 저녁, 진지한 얼굴로 나한테 말했다. 자기와 'Best friend'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funny 하거나 smart 하거나) 중 적어도 하나는 만족시켜야 하는데 내가 그 하나를 만족시킨다는 거다. 즉 내가 녀석의 Best friend 라는 것인데 그 이유가 좀 우습다. 내가 매우 'funny'하다는 것이었다. (왜 smart가 아닌 거냐!)

사실 '영리하거나 재미있거나'는 친구보다는 읽을 책을 고르는데 더 유용한 사항이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이 두 조건의 중간쯤에 걸쳐져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왜 이 소설의 제목이『시간 여행자의 아내』인가 알게 되는데 소설의 주인공은 헨리와 클레어 두 사람이지만 어떤 면에서 클레어가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보여진다. 책을 읽다가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기어이 눈물이 나와 버린 장면은 다음 부분이었다.

아이가 선생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 바람에 나도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내 딸의 얼굴을 보고 있다. 바로 옆 전시관에 서 있던 나는 아이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고, 아이도 나를 보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작은 접이식 의자를 쓰러뜨리며 일어나 나에게 달려온다. 영문도 알아차리기 전에 나는 무릎을 꿇고 앨바를 내 품에 꼭 안고 있고 아이는 몇 번이고 나에게 '아빠'라고 속삭인다.- p.144, 같은 제목 2권

이후 눈물은 시시때때로 나왔는데 즐겁고 재미있었던 1권에 비해 작가의 묘사와 서술이 두드러지는 2권은 클레어에게 감정이 제대로 몰입이 되게 한다. 아이는 참으로 경이로운 존재다. 새롭게 생성된 삶과 그 속에 깃든 새로운 미래의 희망만으로도 아기란 혹은 아이들이란 그 자체로 축복이 가득한 존재다. 그러니 평생을 서로를 사랑하고, 기적에 다름아닌 아름다운 아이가 있는 헨리와 클레어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삶의 시계가 43년이면 긴 걸까, 짧은 걸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와 헨리의 하루는 같지 않다. 그럼에도 책에선 '시간일탈 장애'라고 불리는, 시간여행을 통해 스물네 시간 이상의 시간을 사는 헨리에게 43년은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던 그의 말처럼 짧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 잠깐 등장하는 '원숭이 손' 일화가 주는 교훈처럼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뭔가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헨리와 클레어가 행복한 연인이었으며 그들 앞에 어김없이 찾아온 이별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를 향한 조그만 투정은 있다. 헨리는 왜 그가 현재의 시간에서 완전히 사라진 이후의 즉, 미래의 클레어 앞에 좀 더 자주 나타나 주지 않았을까. 클레어라면 행복한 기억을 좀 더 많이 가질 자격이 있는데...

소설이 진행될수록 운명이 왜 헨리를 클레어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인지 수긍하게 된다. 클레어야말로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는 용감하고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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