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 반 산트 <파인딩 포레스터 Finding Forrester>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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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062 bytes / 조회: 5,859 / ????.10.04 09:10
[영상] 구스 반 산트 <파인딩 포레스터 Finding Forrester>


천재는 주류일까, 비주류일까.
천재를 알아보는 것과 그가 천재임을 인정하는 것은 과연 같은 의미인가.

숀 코네리와 롭 브라운 주연의 2000년작《Finding Forrester》는 이 두 개의 질문에 아주 적절한 해답을 제시한다.
단 한 권의 소설을 출판하고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돌연 은둔해 버린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를 모델로 했다.

'익명성은 작가 고유의 자산'이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있다는 샐린저.

영화를 보면 미국내에서의 샐린저의 위치를 간접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속 포레스터가 과연 샐린저의 어디까지 형상화한 것일까 궁금해지는 것은 영화에도 등장하듯 '우상을 향한 어쩔 수 없는 경외심' 때문이다.

원석에 가까운 재능을 가진 자말은 갓 열 여섯살의 흑인 소년으로 말하자면 낭중지추의 인물. 우연히 자말의 습작 노트를 읽은 포레스터가 자말의 재능을 알아보고 노트에 첨삭을 해서 돌려주는 것으로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다. 까다롭고, 괴짜에 병적으로 은둔 생활을 하는 포레스터가 누구인지 몰랐던 자말은 그와 교류하면서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시선을 끄는 인물은 자말이 장학금을 받고 옮겨간 사립학교의 국어(=영어) 교수 크로포드(F.머레이 에이브라함)다. 그는 자말의 작문 숙제에서 자말의 재능을 발견하지만 자말이 천재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말은 자신이 흑인에 브롱스(Bronx)출신이라 차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설가로서 재능이 없음을 알고 나서 남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된 것이 크로포드의 내력이고 보면 자말의 천재성에 대한 크로포드의 끊임없는 의심은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편견보다는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열등감에 가까워 보인다. 열등감이 이제 고작 열 여섯인 어린 소년의 재능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 하게 하는 것.

천재는 천재를 아끼지만 범재는 천재를 시기하는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포레스터와 자말이라는 두 천재 사이에 놓인 크로포드는 천재를 위협하는 악역이라기 보다는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자말이 좀 더 성장하고 그래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인간을 포용하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되면 자말은 수업 중에 크로포드에게 수치를 주었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크로포드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전반에 걸쳐 주옥 같은 대사들이 많지만 특히 간간히 커다랗게 웃게 만드는 포레스터식 유머가 즐겁다. 이를 테면,

 1) 학교 작문 대회 얘기 중에 자말이 포레스터에게 그런 종류의 대회에 참가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포레스터는 참가한 적도 있고 당연히 1등을 했다고 으스댄다. 자말이 다시 그에게 1등 상품이 뭐였느냐고 묻자 포레스터는 태연한 얼굴로 "퓰리처 상"이라고 대답한다.
2) 예전에 포레스터의 소설을 읽었던 사람들이 소설에 대해 뭐라고 얘기했는지 궁금해하는 자말을 보는 포레스터의 표정이 재미 있다. "예전에?"라고 반문하는 포레스터. 자말은, 학교 도서관에서 스물네 권이나 되는 포레스터의 책들이 모두 대출 상태인 것을 확인한다.

이 두 장면은 재미있지만 동시에 중요한 지적을 하는데 포레스터의 소설이 시대를 거슬러 널리 읽히는 고전소설이라는 점, 포레스터의 소설이 대중적, 비평적으로 모두 찬사를 받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보통 고전소설 혹은 본격소설 하면 재미없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구체적으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포진해 있는 내 사촌들) 거기다 노벨상이니 퓰리처상이니 하는 수상작이라고 하면 이런 편견은 더욱 강해진다. 소설 입장에서 보면 이건 굉장히 억울한 누명이다. 이들 소설이 모두 재미있다는 것이 아니라 장르소설이라고 모두 가볍고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듯 본격소설 역시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호밀밭의 파수꾼』출간 50주년(2001년) 기념을 앞두고 그 1년 전인 2000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몇 년이나 지나서야 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샐린저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게 깊어서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은, 보기를 잘 했다는 것. 소설로 읽고 싶어서 검색했으나 소설은 없는 듯 하다.

덧. 미국과 우리나라 교육 방식의 차이인데(이건 내 경험에 한정된 얘기이므로 지극히 주관적이고 별 근거 없는 얘기일 수도 있다), 작문 수업으로 범위를 좁혔을 때 미국은 주제를 다루는 학생의 사고(思考)가 확장되도록, 우리나라는 학생의 사고가 주제에 집중되도록 하는 경향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름 일장일단이 있는 듯.

친애하는 자말에게.
한 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심지어는 성공이 두려워서.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계절은 변한다. 그래, 나는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거다. - William Forr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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