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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507 bytes / 조회: 4,679 / ????.10.06 23:13
[도서] 진산 민해연 / 가스라기


1. 감각이 즐거운 소설을 읽은 지가 한참 됐다는 반성과 함께 고민 끝에 고른『가스라기』. 책 세 권을 만 이틀 만에 다 읽은 것이 언제였던고.
2. 한입거리라 해서 이름이 '한입'이던 조그맣고 복슬복슬한 그 녀석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녀석은 나를 두 번이나 울렸다.
3. 복선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는데 간혹 불친절한 복선이 있으므로 이 소설은 가급적 정독하는 것이 좋겠다.
4. (혹시나 기대했건만 역시나) 외전을 주는 이벤트가 끝나서 외전을 못 읽은 게 찜찜. '용우'가 대충 짐작이 갈 듯도...
5. 이 소설은 당연히 로맨스소설이다.『천녀유혼』을 무협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하 뱀발
유儒, 불佛, 선仙 사상에 친숙한 한자어권의 세 나라가 생산하는 동양적 판타지(=환상극)의 세계는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요괴, 요수, 불사불로의 신선, 선한 인간 악한 인간, 얽힌 은원(恩怨) 등등의 요소들로 이루어지는 한중일의 신화적 상상력이 대개 중국의『전기傳奇』와『요재지이聊齋志異』의 세계관을 그대로 빌려오거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즉 그것의 재탕, 삼탕에 그치는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그 예로,『전기傳奇』적 요소에 영향을 받은 <온달전溫達傳>, <금오신화金鰲新話>.『전기傳奇』의 경우 원조 논쟁을 떠나 유사한 얘기가 동남아 각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음이 이미 입증되었다. 다신주의인 일본은 얘기가 더욱 복잡해진다.

어렸을 때 엄마나 할머니한테 '귀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번쯤 졸라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들어도 또 들어도 새롭고 재미있다.
판타지소설 즉 환상소설을 즐기는 방법은 각자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①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발견하는 재미
② 누구나 아는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기존의 동양적 혹은 서양적 신화가 어떻게 재가공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흥미진진함

을 빼놓을 수 없다.

*① : 우리가 흔히 판타지의 고전으로 부르는 작품들의 특징으로 대표적인 예로 '오크','호빗','엘프'등의 개념을 창조(혹은 정립)한 톨킨의『반지의제왕The Lord Of The Rings』와, 사구(모래사막)에서 스파이스(에너지원)과 모래충을 두고 선과 악을 대변하는 종족들이 사투를 벌이는『듄Dune』을 들 수 있다. - 특히 오랜 전쟁 을 끝낸 완벽한 영웅이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세상을 만들지만 점차 이 '완벽함'조차 불만으로 느끼는 군상들을 보여주었던『듄Dune』의 주제는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 ② : 오늘날 흔하게 접하는 대다수의 한중일 무협 및 판타지 장르가 이에 해당하는데 일례로 <천녀유혼>은 포송령의『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 내러티브를 가져 왔다.

예전에 김용의 소설을 완독하고 났을 때 무협소설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이런 분류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지만, 사실 판타지의 세계는 무협의 세계보다 다루기가 보다 난해하고 복잡하다.
(범위를 한중일로 국한시켜) 유,불,선 사상에 각종 탄생 신화 및 민간 설화, 구전 동요까지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적극적으로 다루거나, 아니면 아예 엔터테인먼트적인 시각에서 스토리와 캐릭터 중심으로 가볍게 접근해야 하는데 전자의 경우는 어지간한 팬덤이 아니고서는 보통 사람이 유희로 하기엔 한계가 있고, 후자는 자칫 '무협'을 마이너장르로 끌어내리는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이는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소설의 신화적 세계가 어떻게 탄생되는지 서양 환상소설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J.R.P 톨킨의『실마릴리온』의 서두는 음미해볼 만 하다.

 원저자의 사후 4년 만에 출간되는 <실마릴리온>은 옛 시대, 다시 말해서 세상의 제1시대의 이야기이다. <반지전쟁>에서는 제3시대의 종말기에 일어난 커다란 사건들이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실마릴리온>의 이야기는 최초의 악의 제왕이었던 모르고스가 중간계에 살고 있었고, 위대한 엘프들이 실마릴을 되찾기 위해서 모르고스와 전쟁을 벌였던 훨씬 더 먼 과거에서 전해 오는 전설이다.
그러나 <실마릴리온>은 <반지전쟁>의 시대보다 훨씬 옛 시대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작품 구상에 있어서도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처음에는 '실마릴리온'이라 칭해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반세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19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은 노트에는 이 신화의 중심 골격을 이루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연필로 쓰여져 있는 것을 읽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출판되지 못했다(물론 그 내용의 일부는 <반지전쟁>에서 단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랜 시간을 사는 동안 한번도 이 소설을 포기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말년에도 이 소설을 다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도 '실마릴리온'은 하나의 거대한 설화로서 여겨졌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설화는 오래 전에 불변의 전설이 되어 버렸고, 이후의 모든 작품에 대한 배경이 되어 있었다.
그 설화가 일정한 텍스트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 설화의 배경이 되는 세상의 성격에 관련된 기본적인 생각에서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도 아었다. 사실 하나의 전설이 길게 혹은 짧게, 여러 가지 스타일로 옮겨질 수 있는 법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소한 점에서만 아니라 전체적인 틀에서 무척이나 복잡하고 무척이나 다양한 변화들이 숨은 층을 이루며 수반되기 때문에 전설의 최종적인 형태가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옛 전설(여기에서 '옛'이란 표현은 머나먼 제1시대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라는 뜻이며, 동시에 내 아버지의 일생에서도 초창기의 것이라는 뜻이다)은 아버지의 깊고 깊은 사색을 전해 주는 도구였던 동시에 사색의 창고였다. 그 이후의 작품에서 신화와 시는 아버지의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편향 뒤에서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런 까닭에 색다른 논조를 발견하게 된다. [중략]

- 크리스토퍼 톨킨,『실마릴리온』서문, 다솜미디어(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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