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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8954 bytes / 조회: 4,247 / ????.08.11 14:56
[도서] 만감일기 / 박노자, 인물과사상사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라고 선언하는 귀화 지식인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 어떤 색깔을 하고 있을까.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북쪽에서 빨갱이가 내려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결연한 얼굴로 투표하러 하는 것을 봤고, 더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 최고 학과 장학생인 삼촌이 카추사 복무 중에 의문사한 얘기를 들었고, 훨씬 더 어렸을 때는 일본과 북한이 축구를 하면 누구를 편들거냐는 참으로 난해한(!) 질문을 받으면서 자랐다. 세상을 보는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준 이런 일련의 경험들로 나 자신,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감일기』를 읽으면서 일부 수긍을 하거나 신선하다고 생각되어졌던 부분은 개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개인에게 국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라는 '국가' '민족주의'에 관한 저자의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맞아, 맞아" 편하게 읽히는 내용이 있는 반면 "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내용도 다수 있다.

"코리안 호스티스가 필요하세요?" (2006年 10月 20日)
그런데 돈을 주는 고객과, '이차'를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즉 경제적인 강제를 받는 '호스티스'의 관계는 서로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관계에 있는가? 경제력을 독점한 남성이, 경제력이 결여된 여성에게 경제력을 무기로 폭력을 휘두르는 게 성매매의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 구매는 '경제력에 의한 강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pp.68-69

저자는 돈을 주는 남성 고객과 이차를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호스티스의 성매매 관계의 본질을 경제력을 독점한 남성에 의한 폭력 그러니까 '경제력에 의한 강간'이라고 결론을 짓는데, 지불하는 이와 지불 받는 이 사이에 존재하는 '거래'의 다양성을 생각할 때 이는 자칫 일방적인 결론으로 보일 수 있다.
혹 대상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와 부하 여직원이라면 '경제력에 의한 강간'은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영화화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폭로(Disclosure)>에선 직장 상사인 데미 무어(여성)가 부하 직원 마이클 더글라스(남성)에게 성적 유희를 강요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이 시사하는 바가 컸던 것은 지배권력을 누가 소유하는가에 따라 남녀 성의 역학 관계는 얼마든지 역전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데 있다.
즉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굳이 가해자를 가려내고자 한다면 왜곡되고 기형적인 경제 수단을 선택하도록 여성을 음지로 몰아낸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그러한 사회를 방임 내지는 조성한 국가, 정부, 다수의 위정자들에게 손가락을 돌려야 한다.

이 외에 지난 18대 총선에서 도봉구에서 김근태 의원을 밀어내고 당선된 뉴라이트 재단 이사 신지호 의원과 관련된 내용도 눈에 띈다. 

NL파 세력이 유지되는 이유 (2006年 11月 1日)
"NL파가 '최대주주'(내 표현이 아니라 신 씨의 표현이다)인 민노당을 진보정당이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좋다. 북한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착각하는 사람들의 진보성에 대해서는 나만 해도 회의적이다. 그런데
혹시나 나중에 신씨를 만날 일이 있으면 꼭 하나 물어봐야겠다. 아직도 80년대 말에나 나올 법한, 순진하다 못해 우습게만 보이는 북환 관련 주장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를 아시는가?" - p.158

저자인 박노자는 자칫 파시즘의 싹이 될 수 있는 '민족주의'를 혐오한다. 당연히 '민족해방파'인 NL계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부정적이라는 것이지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아니다. 저자를 비롯한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상적 기반과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을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비판적으로 지지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유연성,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야합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얘기와 일견 상통한다.
*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얘기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발생한 표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어용언론을 중심으로 무수히 쏟아졌던 좌파/좌익 나아가 빨갱이 담론, 거기다 반미반정부적이라 하여 불온서적을 발표하는 국방부까지…. 이쯤되면 경제불황으로 허리가 휘는 국민을 웃겨주기 위한 쇼비즘인가 의심이 들 정도.
중국으로 단체 여행을 가고, 금강산으로 효도관광을 가고, 서울 한복판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남과 북이 축구경기를 하는 시대에 좌익, 빨갱이라니. 빨간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갛다던가?

결론은, 저자가 바라는 세상은 지금으로선 요원해보인다. 무엇보다 국가를 보는 국민의 인식이 변했다. 공산주의, 유사 사회주의 체제를 앞세운 동구권 국가들이 어떻게 쓰러지는지는 물론 가까이는 군사분계선 바로 위쪽에 있는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방에서 모두 지켜봤던 국민들은 100년 전, 50년 전보다 훨씬 영리해지고 또 영악해졌다.

구소련,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 서구권 유럽과 좌파들의 투쟁사를 보는 저자의 시각이 눈여겨 볼만 하다.
전국민의 시선이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에 가 있던 당시, 지구의 다른 쪽에선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공격하면서 하룻밤새 1500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와 관련해서 읽어볼만 한 내용이『만감일기』에 있어서 옮긴다.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의 발흥 조짐?' (2006年 10月 7日)
요즘 국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솔직히 두려움부터 느낀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많이 보도되지 않은 최근의 러시아와 그루지아 사이의 사태를 생각해보자. 이 사태의 외피적인 윤곽은, 간첩 혐의로 몇 명의 러시아 장교를 며칠간 구속한 그루지아의 '적대행위'에 반응하여 러시아가 그루지아와의 교통과 무역, 재정거래 일체를 금지하는 등 일종의 보이콧을 한 것이다.(…)
지금의 수준은 경제전쟁이지만 바로 다음 순서는 진짜 전쟁이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물론 아직은 미-러 어느 쪽도 전쟁까지 가지않으려 할 것이다. 특히 이라크 재식민화에 실패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당장 그루지아 확보를 위해 대리전까지 치를 만한 여유가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고사 작전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무기로 칠 여유 역시 이라크 독립군 덕분에 생기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이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을 긍정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벌써 그루지아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한 태세의 러시아도 그렇지만, 티베트와 백두산 지구의 '개발'에 힘씀으로써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대폭 축소시키고, 차후 북한 영토 인수인계의 이념적 기반인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등 '제국적 발흥'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중국도 미국보다 약체라 해서 좋게 볼 세력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차후에는 세계질서의 재편을 노릴지도 모를 일이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안위가 심히 우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언론들이 대체로 무시하고 넘어가고 있음에도, 그루지아 소식을 재음미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pp.336-338

놀랍게도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만으로) 약 2년 전에 씌어졌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창은 이렇듯 다르다. 내 집 안마당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가? 운이 나쁘면 다음 차례는 우리집이 될 수도 있다.

국가와 민족은 과연 개인에게 무엇인가. 쉽지 않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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