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밤은 노래한다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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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924 bytes / 조회: 4,507 / ????.10.26 13:49
[도서] 김연수 / 밤은 노래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지난 달, 그러니까 10.16 ~ 10.29일까지『밤은 노래한다』저자 사인본 예약 이벤트를 발견한 것은 19일이었다. 당연 그날 바로 예약을 하고 원래 날짜보다 거의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손에 받아든 책.
그.러.나. 조심조심 펼친 책 안에 저자의 사인이 없다! 보고 또 봐도 없다! 우째 이런 일이...
실망해서 앉아 있는데 마침 두 통의 전화가 차례로 왔다. 처음은 B양. 책에 사인이 없다고 했더니 우짜노~ 라면서 그냥 웃기만 했다. 다음 전화는 M군. 역시 책에 사인이 없다고 했더니 내게 몇 가지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M군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책을 구입했던 온라인 서점에서 배송에 실수가 있었다고 사인본으로 책을 다시 보내 줄 거라는 얘기였다. 만쉐이~
이런 우여곡절끝에 받아든 것이 바로 사진의 저자의 사인이 든 책이닷. 으.하.하.하!

* 사인본으로 교환 받은 뒤 "사인이 예전하고 다른 것 같다"고 내가 의심하자(=결국 문의를 해달라는 얘기) M군이 온라인 서점에 연락을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고 한다.
"(출판사에 확인을 해보니) 작가분이 직접 출판사에 나와서 책 천 권에 직접 사인을 하고 가셨다고 합니다"

:::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정희가 김해연에게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이다. 김해연은 연인이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을 읽은 직후 경찰서로 연행된다. 그리고 "정희씨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묻는 김해연에게 돌아온 대답은 '어젯밤에 죽었다'는 이정희의 부음이었다.
연인의 죽음. 그리고 연인이 남긴 한 장의 편지. 소설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세상은, 우주는 우연한 존재인가. 국경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인가, 외부에 있는 것인가. 전작『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작가가 던졌던 물음은 여전히 진행중인 듯하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사실은 완벽하게 가짜였던 세상이었음을 깨닫고 절망하는 김해연. 세상은 이제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고, 무엇이 옳다 그르다 확신할 수도 없는 혼돈으로 변한다.
그의 여정에 동참해보지만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 역시 '아무 것도 분명한 것이 없다' 는 사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구체적으로, 소설을 읽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이정희는 왜 죽었는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누가 이정희를 죽였는가에 대한 의문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도 의문으로 남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 할아버지가 간직했던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다면『밤은 노래한다』는 김해연의 연인인 이정희가 김해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서 시작된다. 그럼 이 두 소설은 비슷한가? 이번 소설은 혹시 이전 소설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두 소설은 여러모로 비교할만 하지만 일단 나의 외부 혹은 내가 사는 세상의 바깥이 (시대적 배경에 충실하여)전작에선 우주였다면 이번 소설에선 간도로 좁혀지고, 소설의 주제를 이루는 주요 함의인 '우연한 존재'로서의 인물 역시 전작에선 관찰자 '나'가 지켜보는 강시우(객체)였다면 이번 소설에선 '나' 김해연(주체)으로 좁혀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에서도 역시 그 '누구'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누구'는 그래서 우연적 존재이면서 또한 필연적 존재인가 고민한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잘린 사내 하나가 내 얼굴을 골똘히 내려다보고 서 있다. 몇 달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서 자신은 변절하지 않았다고 소리치다가는, 또 얼마간은 자신이 정말 변절하지 않은 것인가고 의심하다가는, 또 얼마간은 자신은 이미 변절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는, 또 얼마간은 자신이 변절했는지 변절하지 않았는지 확신하지 못하다가는 결국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된 사람. 최도식. 너, 아직도 안 죽었니? 너는 살려주꼬마. 너만은 살려주꼬마. (…) - p.162

'민생단 사건'은 이번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생소한 역사다. 독서 도중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일이 적지 않았던 이유는 '민생단'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했던 탓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소설에서 취하는 작가의 문체의 영향 탓도 있지 않았나 싶다. 독서내내 씨름 하는 기분이었던 것은 아마도 예전 소설과 구분되는 문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밤은 노래한다』는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에 한 여자를 지순하게 사랑했던 한 남자의 사랑을 끌어들이는 플롯을 취하고 있어 작가의 다른 소설에 비해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혹여 관념적인 장문 속에서 길을 잃어 자칫 그 미문들을 놓친다면 아까운 일이다.

소설이 끝나면 한홍구 교수의 해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해제를 읽다 보면 나는 읽지 않은(아니면 놓친 것인가?) 내용이 간혹 등장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확인삼아 일간 재독해야할 듯.
꽤 생소한 역사적 사건 '민생단사건'을 잘 모르면 소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홍구 교수의 해제의 앞 절반을 먼저 읽어보고 소설을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단, 해제 중 '밤이 부른 노래'라는 소제목의 내용은 소설의 줄거리를 A to Z로 아주 친절하게 풀어놓았으므로 스킵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표지의 그림은 에곤 쉴레 Egon Schiele의 자화상이다. 민음사판『인간실격』의 표지 역시 쉴레의 자화상이다. 이 외에도 어느 책이었던가, 쉴레의 그림으로 표지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겐, 아직까지는, 이 화가는 멀고 먼 그대라 표지를 볼 때마다 위화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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