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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900 bytes / 조회: 4,228 / ????.12.07 04:46
[도서] 윤광준 / 윤광준의 생활명품




책이 배송된 날, 박스에서 책을 꺼내 책 상태를 확인한 다음 그대로 거실 소파위에 놓아두었는데 마침 그날 오후에 우리 집에 들렀던 M군이 궁금했는지 책을 들쳐보았던 모양, "이런 책도 팔리느냐"고 신기한 듯이 물었다. 재미있는 것은 M군이 '이런 책'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함께 있던 여러 권의 책들 중『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말하는 것임을 단번에 알아들었다는 거다.
구매를 부추기는 책. 그런가? 결국 소비에 관한 얘기니까 어떤 의미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좋아하는 일에 걸맞는 물건의 격을 갖추는 일은 흉이 되지 않는다'(p.28)는 저자의 목소리를 빌어 그냥 명품도 아닌 '생활명품'이라는 제목을 강조하고 '나에게' 특별한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와 그 물건이 지닌 소박한 의미와 가치를 얘기하는 책이라고 구구절절 항변할 수는 있겠으나 나역시 팔랑귀라 M군의 질문에 '어, 내가 실수한건가' 흔들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흑...

게걸스러운 탐욕은 죄악이다. 사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길 수 있어야 미덕이다. 가진 것이 넉넉지 않으므로 제대로 된 물건을 골라야 한다. 두 번의 선택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적지 않다.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앞으로 맞게 될 봄날의 화창한 풍경은 내 차지가 아니다. - pp.7-8,「작가의 말」

아마추어 오디오 평론가이며 또한 사진작가로 더 유명한 저자가 스스로 '나를 더 이상 명품주의자라고 부르지 말아다오' 항변하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책은 우선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언젠가 강남의 한 초등학생 아이는 구* 지우개, 루이** 필통, 에**스 연필로 공부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젠 보통명사화되다시피한 된장녀 논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명품은 유독 우리 사회에선 뜨거운 감자가 된듯 하다. 하지만 용어로만 보면 'Luxuary'의 사전적 의미는 어쨌든 '사치품'이다. 명품이라 하면 장인의 오랜 숨결이 묻은 귀한 것을 떠올리는 반면 사치품이라 하면 졸부의 금목걸이를 우선 떠올리게 되는니만큼 사치품과 명품은 엄연히 차이가 있음에도 '사치품은 명품'이라는 공식이 생겨버린 것이다 . 굳이 사치품을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금전적 가치보다 정서적 가치의 귀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텐데,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시장이 이것을 놓칠리가 없다.
결국 명품마케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럭셔리-펀드가 등장할 정도로 오늘날의 명품은 그것을 소유하면 소유하는 사람까지 덩달아 명품이 된 것 같은 환상을 대중에게 심는데 성공한 상업주의 마케팅의 대표적인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명품은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 안목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값비싼 시장 상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대목은 '명품(엄밀히 말하면 사치품)에서 과시의 목적을 제거하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 하는 건데 그에 대한 대답이 실용성이라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비록 그것에 들인 돈은 아까울 수도 있지만 최소한 물건이 본연의 역할은 해낸다는 거니까.

명품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금전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너무나 소중한 물건이 내게 오면 하찮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K가 울면서 전화했는데 K는 지갑에 든 돈은 아깝지 않지만 엄마한테 입학 선물로 받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이 책「7장, 최첨단 시대에도 아날로그가 좋다」는 K의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정말 귀한 것은 물건에 치른 가격이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그것에 깃든 유/무형의 나만의 흔적들이다. 저자 또한 이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고 이런 이유로 저자의 명품 예찬은 보다 편안하고 담백하게 읽힌다.
제목으로는 언뜻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 선택에도 불구하고 사진작가 윤광준에 대한 신뢰로 선택한 책은 저자의 특기인 사진을 보는 즐거움은 물론 명품이 명품으로서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인 히스토리(물론 전문적이지는 않다)를 읽는 부가적인 즐거움도 있다.

흔히 말하는 명품, 그러니까 면세점 매장에서 고급스러운 조명을 받으며 우아하게 진열되어 있는 다국적 기업의 물건을 나도 좀 가지고 있는데 선물 받은 것도 있고 직접 산 것도 있고, 관세의 적용을 받는 사치품답게 정말 비싼 것도 있고 의외로 싼 것도 있다.
그중 내가 감탄하고 또 감탄하는 물건은 바로 안경이다. TV를 볼 때나 특별히 거리 표지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때가 아니면 안경을 잘 안 쓰는 나는 모두 네 개의 안경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10년 전에 구입했고 가장 최근 것도 2003년에 구입했으니 개인적인 만족도는 둘째치고 감가상각을 감안해도 그것에 치른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게다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마치 방금 산 것처럼 매끈하게 반짝이는 녀석들은 A/S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는 등의 사고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나와 함께 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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