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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9522 bytes / 조회: 3,866 / ????.04.22 20:42
[도서] oldies but goodies <멘탈리스트>


드라마 <멘탈리스트>의 스포는 없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 관련한 스포가 있으므로 원치 않는 분은 back space를 눌러주세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미드로 과학수사물 CSI를 꼽는 것에 아마도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감각적인 영상과 더 이상 명징할 수 없는 과학적인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하는 과학수사팀의 활약은 확실히 범인의 자백에 의존하던 기존의 수사물에서 진일보한 것이었다. 또한 CSI는 TV 드라마가 기존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미드이기도 하다. 10여년 전 '라스베가스'를 시작으로 액션물에 가까운 '마이애미', 초기만 하더라도 컬트의 냄새가 물씬 풍겼던 '뉴욕'등 스핀오프 시리즈까지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CSI 시리즈는 분명 매력있는 드라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CSI팀이 현란한 영상으로 보여주는 과학수사가 더 익숙해진 요즘이라고 해서 셜록 홈즈 또는 포와로가 누군가를 지목하며 "범인은 바로…… 당신이오!" 할 때의 전율이 낡고 식상해진 것은 아니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직 자신의 회색 뇌세포를 이용하여 사건 현장과 정황만을 가지고도 사건 이면에 숨겨진 범죄의 트릭을 읽고 범인의 실수나 오류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단서 삼아 논리적인 추론을 펼치며 범인을 지목하는 방식의 고전적인 추리극의 묘미는 아무래도 작가가 정밀하게 짜놓은 퍼즐을 푸는 재미에 있다. 즉 독자는 작가를 대변하는 주인공 탐정이 마지막 순간에 범인을 지목하기 전에 먼저 범인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회색 뇌세포를 열심히 굴려야 한다.*

* 이와 관련, 크리스티 여사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출간 당시 작가가 공정하지 않았고 독자를 속였다고 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기존 추리소설의 공식을 깨뜨림으로써 작가가 반칙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이 소설은 결국 작가가 내용 속에 범인을 암시하는 단서를 충분히 제시했다는 점이 인정되어 논란이 일단락 되었다.

이렇듯 고전적 추리소설이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가장 큰 원동력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와 지적 대결을 벌이며 작가가 꼭꼭 숨겨둔 범인을 맞추는 대리만족을 주는 것에 있다. 덕분에 크리스티 여사나 도일 경은 여전히 출판되고 있는 인기 작가이고 그들의 작품 역시 꾸준히 영화화 되어 개봉되고 있다. 그러나 출판시장과 달리 유행에 민감한 영상매체 쪽에선 아무래도 이러한 고전적인 방식이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던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탐정 콜롬보>, <블루문 특급>등의 뒤를 이어 <몽크>가 명맥을 유지하며 선전을 하긴 했지만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회색 뇌세포에 의존하는 대신 아예 영매들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심령물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참신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수사대의 아성에 도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올해 새롭게 시작한 <멘탈리스트>. <멘탈리스트>는 고전적인 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통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실제로 현재 전미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멘탈리스트>는 코난 도일과 애가서 크리스티 키드인 내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 미드였다.

시작 전 오프닝으로 화면에 깔리는 'Mentalist - 날카로운 정신적 추측,제안을 하는 사람. 심리주의자, 독심술가. 사고와 행동의 조종에 통달한 사람'은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주인공 패트릭 제인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멘탈리스트> 관련, 크리스티 여사의 '미스 마플'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에피소드 14편 'Scarlett fever'이 무척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평화로운 작은 소도시, 부유한 그녀들의 친목 모임, 수다쟁이 여성들, 즐거운 티타임 도중 갑자기 벌어진 살인 사건. 왠지 낯이 익지 않은가? 바로 전형적인 '미스 마플'의 무대이다. 어쩌면 오마주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미스 마플의 무대를 많이 닮은 이 에피소드에서 제인이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 역시 미스 마플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여성들에게 말을 시키는 것이 그것인데 말하기 좋아하는 여성들만큼 단서를 구하기 쉬운 대상도 없는 법. 참고로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을 읽는 중요한 단서 하나. 바로 사건의 동기가 '치정' 아니면 '재산(=돈)'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유의하면 한결 유리한 지점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가 가능하다.

제인의 능력은 혹은 장점은 관찰력과 분석력에 있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제인의 추리가 지극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한때 유명한 영매사였던 이력이 있는 제인이니만큼 아무래도 빼어난 직관력을 빼놓을 수 없다. - 개인적으로 직관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제인의 이런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특히 제인이 용의자를 심문하는 방식이 재미있는데 직접적인 심문을 통해 상대방의 즉각적인 반응을 읽음으로써 거짓말과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그의 특기이다. - 실제로 심리학회에서 연구되고 있는 기법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범인의 가장 큰 특징은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데 거짓말은 특성상 어느 지점에 이르면 이음새가 어긋나고 벌어지는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이르는 과정이 제인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매회 마주치는 장면이지만 제인이 용의자를 심문하는 장면은 심문자의 질문과 질문하는 방식이 왜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즉 <멘탈리스트>의 매력은 '무엇을'이 아니라 '왜'에 접근하는 제인을 보는 데 있다. 왜 거짓말을 하는가. 제인의 직관력은 그것에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제인은 셜록 홈즈의 관찰력과 포와로의 심문 방식을 함께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얼핏 이웃집 아줌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포와로는 사건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데 말을 시키다 보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고 그 순간 포와로의 회색 뇌세포가 '반짝' 빛을 내는 것이다.
<멘탈리스트>는 자극적인 영상도 없고 따라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이 없어 얼핏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회, 한 회 보다보면 어느새 제인의 매력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함께 등장하는 팀원들은 또 얼마나 정감 있고 매력이 넘치는지...

덧1. <멘탈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심리수사물인 미드 <Lie to me>는 의외로 재미를 못 느낀 드라마. 캐리커쳐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거짓말의 유형'을 드라마에 도입한 것은 신선했으나 이 기법을 소개하는 것에 내용을 지나치게 할애하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자체는 오히려 허술하게 느껴진다.

덧2.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소설은, 물론 그 자체로도 뛰어난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 재미있지만 책 뒷장의 짤막한 몇 줄만으로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해문출판사의 마케팅 역시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비뚤어진 아저씨가 비뚤어진 길을 걸어가고 있네.
아저씨는 비뚤어진 계단 옆에서 동전을 발견했네.
아저씨는 비뚤어진 쥐을 잡으려고 비뚤어진 고양이를 구해 왔네.
비뚤어진 작은 집에서 그들은 모두 함께 살았네" - <비뚤어진 집>, 해문출판사

 

중학생 때 용돈을 받으면 제일 먼저 서점으로 달려가서 구입, 열심히 모았던 해문출판사의 크리스티 여사의 소설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지금도 부모님집 서재에 꽂혀 있지만 뒤늦게 황금가지에서 그 동안의 오역을 바로 잡아 크리스티 여사의 전집을 새롭게 출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지름신이 슬금슬금 옆구리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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