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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4 bytes / 조회: 3,592 / ????.09.28 21:24
[도서] 서머셋 몸『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일전에 M군이 "네 책장에서 책 세 권을 꼽는다면?" 질문을 던졌을 때 한참 고민하다 세 권을 고르고 그러고도 또 한참을 더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M군이 다시 "책 한 권을 추천한다면?" 물었을 때는 별 고민 없이 금방 한 권을 골라내었다. 세 권과 한 권의 차이는 과연 뭐였을까...

사실 열 권이든 세 권이든, 누군가 고심 끝에 꼽은 그 몇 권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재미있는 소설은 아닐 것이다. 흔히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꼬리표를 단 추천 목록은 거기에 언급된 작품이 가장 뛰어나다라는 절대 우위의 개념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우연적 요소가 포함된 비교 우위의 목록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이하 『불멸의...』)에서 10인의 작가와 작가의 대표 소설을 소개하면서 서머셋 몸 역시 이 부분을 염려하고 있다.
『불멸의...』는 서머셋 몸이 직접 꼽은 열 권의 소설에 관한 비평집(평론집)이다. 몸은 어느 날 기자의 청에 별 생각 없이 열 권의 책을 추천했다가 이후 출판사로부터 그 내용을 엮어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던 과정을 책의 서두에 밝히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불멸의...』출판 과정을 밝히는 의미 외에도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 열 권의 책을 고르는 고민이 담겨 있다.

작가의 독서일기 또는 비평집은 재미면에서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 한식당에서 비빔밥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달까, 이미 검증된 작가의 필력은 소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소설만큼 혹은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비평집도 많다. 그러니까 장정일의 경우처럼 소설이 아닌 독서일기 때문에 장정일의 팬이 된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서머셋 몸은 소설이란 무릇 첫째도 둘째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그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설이야 이미 검증되었으니 말할 것도 없겠고, 거기에 비평까지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잘 쓰니 한마디로 '쓰는 재기'를 타고난 작가가 아닌가 싶다.

『불멸의...』의 목차는 10인의 작가로 나뉘어져 있는데 작가의 출생과 성장배경, 작가를 둘러싼 해프닝, 작가의 소설과 관련된 일화들로 꽉꽉 채워진 내용은, 올이 풀린 스웨터처럼 다음 얘기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에서 한 눈을 팔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작가의 사생활을 얘기할 때 몸의 어조는 어찌나 수다스럽고 유창한지 천일야화로 왕의 분노를 가라앉힌 세헤라자드가 이랬을까 싶다.

『불멸의...』에서, 몸은 '작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라는 명제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입장을 취한다. 물론 몸이 고른 10인의 작가들은 모두 그 범주에 포함되는 인물들이다.

오늘날은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18,19세기만 해도 작가가 글의 소재나 자료를 얻는 경로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어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몽땅 소재로 끌어다 썼다고 한다. 샐린저처럼 철저하게 은둔하는 작가도 있지만 근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들에게 사생활의 비밀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했던 걸로 보인다. 그리하여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 작품 속에 자신의 얘기를 대놓고 하니 작품을 통해 작가를 읽는 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작품 자체가 작가를 연구하는 자료인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목차중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건 발자크와 스탕달 편. 이 두 사람은 A.뒤마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그들 특유의 기질만으로도 배꼽을 쥐게 하는데 거기에 몸의 맛깔나는 서술이 더해지니 재미가 배가 된다. 몸은 그들에게 '위대한 작가' 호칭을 붙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얄미울 정도로 신랄하게 '까'는데 왠지 그런 모습이 밉지 않고 정겹다. 동네아줌마들한테 남편의 치부를 흉보는 중년의 아내 같다고나 할까, 얼핏 '우리 남편은 무식하고, 교양 없고, 파렴치한 놈이에요' 라고 고자질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호흡 사이사이 '그래도 내 남편이 최고지' 하는 것 같은 애정이 느껴진다.
인상 깊었던 대목은 발자크나 스탕달은 물론 디킨스에 이르기까지 '원고 노동자'라는 표현. 이러한 표현이 가히 부족하지 않은 양적으로 엄청난 그들의 집필력은, 오늘날로 치면 '연재'에 해당하는 방식을 고수했던 당시의 출판 관행이 작가들로 하여금 원고 노동자로 전락하도록 했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이들 작가 스스로도 글 쓰기를 돈버는 수단으로만 봤다고 하니 그 시대의 풍속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책 넘김이 느려졌던 목차는 허먼 멜빌과『모비딕』편인데『모비딕』은 미드 시리즈 CSI에서 그리섬 반장이 즐겨 인용하던 소설이기도 하다. 유명세에 비해 국내에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몸의 설명에 의하면 멜빌의 문장이 꽤 난해한데다 다층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니, 타국의 번역자에겐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겠구나 싶다.
(몸에 의하면)멜빌은『모비딕』이 알고리즘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지만 멜빌의 소설은 실제로 그렇게 읽히고 있고 또한 그 덕에 오늘날까지 각종 '읽어야 할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소설이 되었다 하니 일견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같은 언어권인 몸조차도 난해하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번역자의 어려움이 능히 짐작가고도 남는다. 일간 모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이라니 기대를 해봐도 좋을 듯.

도스토예프스키 편은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는데 최근 읽은 이병주의『허망과 진실 1 - 서양편』에 등장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듯 사뭇 달라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사람, 같은 에피소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은 판이하게 달라지는 점이다. 그러니까 몸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린 소녀와 강제적으로 맺은 성관계를 자랑처럼 떠벌리고 다니는)파렴치한에 한심한 도박꾼에 열등감 가득한 찌질이 작가지만 이병주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요절한 형의 가족들을 평생 부양하고, 부정한 부인이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 헌신적이었던 순정파 로맨티스트이며, 사형을 사면받고 복역했던 감옥에서의 경험에 빗대어 소설의 사회적 기능에 고민이 많았던 작가다.
사실 누구의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에 가까운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작가의 사생활이 작가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독자인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덧. 역자의 공은 웬만하면 드러나기 힘든데《불멸의...》는 정성을 들인 역자의 주석이 감탄을 자아낸다.
덧2. 서머셋 몸이 꼽은 10인의 작가와 그 저서의 목록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발췌
1. 헨리 필딩과 <톰 존스>
2. 제인 오스틴과 <오만과 편견>
3. 스탕달과 <적과 흑>
4. 발자크와 <고리오 영감>
5. 찰스 디킨스와 <데이비드 코퍼필드>
6. 플로베르와 <보바리 부인>
7. 허먼 멜빌과 <모비 딕>
8. 에밀리 브론테와 <폭풍의 언덕>
9. 도스토예프스키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0. 톨스토이와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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