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백야행』 > Review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Review
-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5443 bytes / 조회: 3,791 / ????.11.14 17:54
[도서] 히가시노 게이고『백야행』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백야행』과『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다.
두 소설을 읽고 난 소감은 일단 히가시노의 소설은 '로맨스 추리소설' 이라는 것. 여기에서 중요한 건 '로맨스'와 '추리'라는 두 단어의 전후(前後) 순서인데, 추리소설에 로맨스를 가미한 것이 아니라 로맨스에 추리 요소를 넣었다는 의미다.
같은 시기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와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지만 책 표지를 두르고 있는 홍보 띠지에도 있듯 히가시노의 두 소설에서 '사랑'을 빼놓고는 소설을 얘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이 여느 로맨스소설처럼 달달한가 하면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주인공들이 용의자로 혹은 피해자로 음침하고 음울한 사건의 중심에 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들이 비극적인 보다 큰 이유는 그들 사랑의 방향성이다.
수학선생인 이시가미가 연모하던 이웃집 모녀에게 불행이 닥치자 자발적으로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용의자X의 헌신』은 그렇다 치고『백야행』역시 몇 가지 점에서 유키호와 료지가 양방향 사랑을 했다고 보기엔 의문점이 남는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자국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된『백야행』은 3인칭 시점인 소설과 달리 드라마는 유키호와 료지의 독백을 삽입, 1인칭 시점을 취한다.
덕분에 11부작인 드라마는 소설에서 여백으로 남겨졌던 부분을 어느 정도 메꿔주기는 하지만 소설에 비하면 두 사람의 행로를 지나치게 운명적 신파로 몰고가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원작의 의도를 흐리는 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유키호의 동기를 해석하는 부분에서 원작과 시각의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유키호가 선택한 '행위'의 동기를 유키호 자신이 아닌 료지에게 두는 점이 그러하다.

나를 위해 했는가, 타인을 위해 했는가의 차이는 명백하다. 이타적인 이유에서의 동기는 상대에게 애정이 없으면 갖기 힘들다. 결국 이렇게 해서 드라마 속 유키호와 료지의 사랑은 소설보다 훨씬 더 양방향적인 평행을 이룰 수 있게 되지만 사실 소설은 일방적인 것에 좀 더 무게를 싣는 듯 보인다. 일방적이라고 해서 료지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키호에 비해 료지의 사랑이 더 절실하고 무조건적이라는 의미다. 료지가 오로지 유키호를 위해, 유키오에 의해 백야행을 선택한 것과 달리 유키호의 백야행은 보다 개인적이고 자기애에 의한 이유가 더 강하게 작용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눈에 띄는 점은 직업적인 책임감이 투철한 형사 사사가키를 불쌍한 연인을 집요하게 뒤쫓는 위험하고 미운 인물로 설정한 드라마의 선택이다. 두 아이가 사사가키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빌며 마음 졸이게 하는 스톡홀름 신드롬을 강요하는 이러한 인물 해석은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이라는 (원작)작가의 냉정한 시각을 가장 많이 비켜가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를 보는 시각은 소설이 드라마보다 훨씬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소설은 두 아이를 옹호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다.

로맨스의 가장 큰 비극은 뭘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연인의 어느 한 쪽이 먼저 생을 달리 하는 것? 개인적으로 로맨스의 가장 큰 비극은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덧1. 드라마에서 유키호의 의상실 이름은 유키호와 료지의 약자인 'R&Y' 인데 정작 (국내 번역본)소설에선 'R&B'다. 어떻게 된 것일까. Y와 B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크다. 이 한 글자로 인해 소설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 정보를 검색한 결과 일본내 원서에는 'R&Y'라고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다고 하니 'R&B'는 국내 출판사의 업무적 실수인 듯 하다.

덧2. 영화《포레스트 검프》와 유사한 방식의 서술 구조를 취하고 있어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80년대 일본의 시대적 변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덧4. 내가 구입한 것은 개정판인데 예전 표지가 훨씬 낫다.

덧5.『백야행』과『용의자 X의 헌신』중『용의자 X의 헌신』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사실『용의자 X의 헌신』의 미덕은 딱 한 페이지 혹은 한 줄에 있다. 읽고 나면 희미해질 그저 그런 흔한 추리소설을 인상적인 추리소설로 기억하게 만드는 그 한 부분이 작가에게 '재능있는' 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164건 7 페이지
Review 목록
번호 분류 제목 날짜
74 도서 김별아 / 가미가제 독고다이 ??.08.28
73 도서 최윤필 /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06.03
72 도서 아키모토 야스시 / 코끼리의 등 ??.06.03
71 도서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by 나나 슈미트 ??.06.03
70 도서 윤고은 <1인용 식탁> ??.06.03
69 도서 버나드 베켓 <2058 제네시스> ??.05.02
68 도서 『블링크』by 말콤 글래드웰 2 ??.05.01
67 도서 김인숙 <소현> 4 ??.04.26
66 도서 마리우스 세라 /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04.24
65 도서 톰 레녹스 / 창세기 비밀 ??.04.24
64 도서 김용철 / 삼성을 생각한다 ??.03.15
63 도서 공지영 / 도가니 ??.02.03
62 도서 로버트 치알디니 / 설득의 심리학 ??.02.02
61 도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 몇 권 ??.02.02
60 도서 베른하르트 슐링크『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