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소설화할 때 즉 저널리즘식 글쓰기를 할 때 작가는 감상에 빠지거나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들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건 기본이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전달자여야지 소설속 인물들과 함께 어울려서 울고 불고 떠들어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3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사실을 정보로 전달해야 할 작가가 나서서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 저작이 사회소설일 때, 작가 공지영은 여전히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아니면 극복할 마음이 없던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하는 것과 "가여운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정말 짐승, 악마 같은 놈들 아닌가요?" 하는 것은 어조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공 작가를 보면 주목 받고 산 사람의, 주목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 같은 정서가 느껴진달까.
무엇보다도『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선 '죄 없는' 아름다운 청년 사형수가 왜 죽어야 하느냐고 사형제도의 부당함을 주장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니『도가니』는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구성상의 몇 가지를 제외하더라도 그 결말에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결국 무죄 처리되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반면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인호는 물론이고 피해 학생들 모두 예전의 악몽으로부터 구원받아 새로운 보금자리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매듭을 짓는 것으로 작가는 슬그머니 발을 빼버린다. 이런 동화같은 온화한 결말로 책 판매량은 늘었을지 모르나 직업적으로는 작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늘 감탄하지만 이 작가의 소재를 고르는 재주는 참 뛰어나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재료도 그것을 다룰 줄 모르면 소용없는 법. 곪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상처를 찢고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고발소설을 쓰려고 작정했다면 그 정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소설내적인 문제일 뿐, 몇 년 새 아동성범죄가 너무도 만연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번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대중에게 환기시켰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이 해낸 역할에 비하면 저런 부분들은 차라리 부수적이고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2006년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도가니』는 인호가 기간제 교사로 발령 받아 무진市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광주의 옛이름이 무진주(武珍州)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무진은 김승옥의『무진기행』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무진(霧津)이다. 문학 비평집을 읽다 우연히 마주친 짧은 문단에 반해서 그 날로 전집을 구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김승옥의 무진市인 것이다.
김승옥의 영향일까. 이번 공지영의 소설은 예전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담백하고 묵직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