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 삼성을 생각한다 > Review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Review
-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1413 bytes / 조회: 3,582 / ????.03.15 16:11
[도서] 김용철 / 삼성을 생각한다






지난 1월, 김용철 변호사의『삼성을 생각한다』출간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조만간 절판되겠구나, 였다.
웃어야 할지..., 나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떠도는 반응이 대체로 그랬다.
이 책의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는 2007년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 구입을 망설였다. 이런 분류의 책은 원래 내 취향이 아니다. 재미도 없고, 대개 기획인 경우가 많아서 소문난 잔치에 갔다 온 것마냥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신간 정보를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한 얘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자가 원고를 출판해 줄 곳을 찾아 여러 곳을 전전했다는 얘기, 주요 5대 일간지 모두 책 광고를 거부했다는 얘기...
개인 저작 출판을 공공연히 거부하고 막는 세상이라니... 요즘 시대에 이게 말이 되는가... 아니, 그전에 혹시 나는 '요즘 시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쯤되면 더 고민할 것도 없다. 이 책은 일단, 무조건, 사서, 읽어야 되는 거다.




책을 받은 것은 2월 초. 읽기 시작한 것은 중순 경. 다 읽은 것은 3월 초다. 완독하는데 한 열흘 쯤 걸린 것 같다.
남들은 하룻밤새 다 읽었다고 말하는 이 책이 내겐 쉽지 않았다. 나는 쉬엄쉬엄 읽었고 어떤 장은 더디게, 어떤 장은 닫았다가 다시 펼쳐서 읽은 것이 열흘이다. 그러고도 책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아 계속 미루었다.
아는 동생이 법무부에 근무하고, 아는 선배가(지금은 그만 뒀지만) 김앤장에서 근무한 덕택에 간혹 관련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판타스틱한 얘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간혹 가십처럼 언론에서 터져나오는 얘기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다름 아닌 저기구나 싶은 것이 바로 고위층 혹은 사회지도층으로 불리우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 김용철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아, 이 사람 그냥 보통 사람이구나, 였다.
그래서 울림이 더 남달랐던 것 같다.
나라면, 내 가족 중 누구였다면, 내 친구였다면... 나는 물론 용기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 친구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말렸을 것이다.
그의 말, 그의 생각, 그의 진심을 의심하든, 믿든, 무시하든, 관심을 가지든, 박수 치든, 비난하든 그건 모두 각자의 판단일 것이나 다만 한 가지. 나라면 '못 했을'도 아니고 '안 했을 거다'는 거.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저자의 용기에 빚을 짐을 느낀다.

- 불의한 양심.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는 1부 첫 장의 제목이다.
이 한 줄이, 참……
아마 이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이 것,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가 아니었을까. 자꾸만 눈에 밟히는 이 간단한 한 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더듬게 한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을때 그에게 쏟아진 시선은 대부분 두 종류였는데, 그 하나는 '용기와 소신 있는 결단'이라는 박수였고, 다른 하나는 '결국 너도 똑같은 놈 아니더냐'는 비난이었다.
안타깝게도 박수 소리는 작았고 비난의 목소리는 컸다. 아니. 큰 것처럼 보였다.
주인 밑에서 그 녹을 먹은 주제에 이제 와서 주인을 문다, 는 세간의 시선은 말 그대로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양상이 되었고, 그가 말하고 싶어했던 진실의 무게를 서슴없이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 감히 주인을 물어?
드라마《추노》에는 양반 세상을 갈아 엎고 노비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노비당이 등장한다. 그런데 막상 중무장(?)을 하고 원수 같은 양반댁을 털러 간 노비들이 양반과 마주 서자 엉거주춤 우물쭈물 물러선다.
상투 틀고, 갓 쓰던 시절에만 존재할 것 같던 이 '노비근성'이, 뜻밖에도 오늘 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내부고발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다. 현대에도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러한 노비 근성의 생명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할까.

- 삼성이 무너지면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가 망한다, 는 얘기는 부모님 세대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뜻밖에도 또래 젊은 사람들한테서도 심심찮게 이런 얘기를 듣는다. 도대체 그런 생각의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들 대부분은 "그래도 삼성 같은 기업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세계 경영을 부르짖던 거대 기업이 있었다. 바로 대우그룹이다. 재계 5대 그룹의 하나였던 대우그룹이 정리되는 것을 모두 지켜보고도 사람들은 삼성이 망할까 두려워 한다. 그들은 삼성과 대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참 순진하군"
책을 읽던 중에 정치, 경제에 관한한 나름 얘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큰 부딪침이 있었다. 삼성이 실패한 투자에 대한 얘기를 할 때였다. 친구는, 그러면 기업은 성공하는 투자만 해야 되는 것이냐, 고 강하게 반박했다. 친구는 거대 기업의 실패한 투자가 국민의 손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너 참 순진하구나" 비꼬고 말았는데, 물론 곧 이런 내 행동을 후회했지만, 실제로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참 순진하군'이었다.
기업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환율이 오르자 얼른 밀가루 가격을 올렸지만 이후 가격 인상의 원인인 환율이 내렸는데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밀가루 가격이 기업의 마인드를 잘 대변하고 있다.
기업이 투자를 해서 손해를 본다. 물론, 가능한 일이고 욕 먹을 일도 아니다. 문제는 손해를 처리하는 방식인데, 기업은 대부분 그 손해를 소비자(자국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메꾼다. 간단한 얘기인데,
A는 사장이고, B는 직원이다.
A가 경영을 잘못 해서 손해를 본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A는 자신의 회사에 나오는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다.
B는 물가가 오르자 지금 월급으로는 살기가 힘들다고 A에게 월급 인상을 요구한다.
A는 B의 요구를 들어준다.
A는 월급 인상분의 손해를 메꾸기 위해 자사 제품의 가격을 올린다.
방법이 어떻든, 과정이 어떻든 기업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기업이 잘못 하고 있다" 하니, "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소리냐"고 핏대를 세우는 그들의 무조건적인 대기업 충성심이 감동적이다. 어려울 거 없다. 시선을 조금만 더 들면 된다. 그럼 손가락 말고 달이 보일 것이다. 자국의 산업을 이끄는 기업을 망가뜨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환경을 다시 보자는 얘기다. 그 환경에는 나와 내 가족의 미래도 있다.

- 하지만 현실은...
며칠 전, 삼성 제품인 MP3가 고장을 일으켜 A/S센터에 갔다. A/S센터만 가봐도 안다. 삼성이 얼마나 특별한지. 휴게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차가 구비되어 있고, 컴퓨터와 TV와 책이 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잠시 후 직원이 직접 데리러 온다. 그리고 그 직원은 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수리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배웅 나와서 인사한다. 나는 기분이 좋고, 삼성에 대한 호감도는 당연히 높이 저 높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 높이 만큼 내가 삼성을 소비할 때 이미 그 비용을 치렀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는다. 남는 것은 친절한 삼성,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 뿐이다.

- ......
일본과 미국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하듯 으레 서점에 들려 책 구경을 하고 책을 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우리나라가 겉표지부터 내지까지 책을 참 고급스럽게 꼼꼼하게 예쁘게 잘 만드는구나, 다.
그런 이유로, 배송 받은 박스에서『삼성을 생각한다』를 꺼내 들었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만한 가격에 양장이 아닌 것은 그렇다 치고, 바깥 커버를 벗겼더니 나타나는 내지 커버가 마분지 같다. 순간 헐벗은 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만만치 않았다던 출판 과정이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편치 않다.


다음은 원래 일간지 지면에 실릴 예정이었던 책 광고.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164건 7 페이지
Review 목록
번호 분류 제목 날짜
74 도서 김별아 / 가미가제 독고다이 ??.08.28
73 도서 최윤필 /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06.03
72 도서 아키모토 야스시 / 코끼리의 등 ??.06.03
71 도서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by 나나 슈미트 ??.06.03
70 도서 윤고은 <1인용 식탁> ??.06.03
69 도서 버나드 베켓 <2058 제네시스> ??.05.02
68 도서 『블링크』by 말콤 글래드웰 2 ??.05.01
67 도서 김인숙 <소현> 4 ??.04.26
66 도서 마리우스 세라 /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04.24
65 도서 톰 레녹스 / 창세기 비밀 ??.04.24
도서 김용철 / 삼성을 생각한다 ??.03.15
63 도서 공지영 / 도가니 ??.02.03
62 도서 로버트 치알디니 / 설득의 심리학 ??.02.02
61 도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 몇 권 ??.02.02
60 도서 베른하르트 슐링크『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