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레녹스 / 창세기 비밀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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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807 bytes / 조회: 3,899 / ????.04.24 23:54
[도서] 톰 레녹스 / 창세기 비밀


칙릿 만큼이나 잘 안 읽히는 장르가 팩션이다. 사실과 공상의 하이브리드는 긍정적으로는 장르의 진화로 볼 수도 있겠으나 저자의 관점에 의해 역사적 사실이 공상의 소품이 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그다지 환영하는 장르는 아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읽는 과정은 지루했으나 다 읽고 나서 "음, 재미있군" 하는 소설이 있는데『창세기 비밀』이 그렇다.
『창세기 비밀』은『다빈치코드』류의 팩션인데 구체적으로 서스펜스 하드고어 팩션이다. 실제로 소설 여기저기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말 그대로) 하드고어(hard- gore)한 장면들은 몹시 적나라하고 생생하다. 그러나 이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눈길을 끌려는 불순한 의도보다는 소설의 주제로 이어지는 가장 큰 줄기인 인신공희(人身供犧 : 인간을 재물로 삼아 신에게 바침)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내용보다 서술 방식에 있다.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장면 장면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기시감은 소설 내용의 전개가《인디아나 존스》류의 기존 할리우드 모험 영화의 공식을 착실하게 답습하는 것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모험 영화를 관람하듯 소설을 읽는 것이 쉬운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소설은 주석이 많이 등장하는데 주석이 많다는 얘기는 그만큼 낯선 얘기가 많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과 인물들,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 몇몇 문명과 부족들의 관습 등은 종종 독서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이슬람 문명과 관련된 얘기들은 그 문명이 익숙하지 않은 만큼이나 때로 지루하고 때로 난해하게 다가온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터키의 샤늘르우르파와 영국 런던 두 곳이다. 소설은 이 두 곳을 오가는 교차 시점을 통해 진행되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두 장소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살인은 잔혹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고 종내에는 '검은 책'을 둘러싸고 연쇄살인범과 주인공들이 대치하는 대결 구도로 치닫는다.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명과 종교, 관습과 원시의식 등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끌어오는데 그 때문에 이 소설은 읽는 관점에 따라 단순한 모험 추리소설로 읽을 수도 있고, 인류 문명사에 비친 인류의 기원이라는 인문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한편 그런 점에서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들이다. 소설을 B급 정서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타임스 기자 로브를 비롯한 크리스틴, 포레스터 등의 주요인물들이다. 이들은 말그대로 헐리우드 모험영화에서 쏙 빠져나온 듯 하다.
한편 이 소설은 등장인물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터키의 유적지 '괴베클리 테페'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팩션의 주요 배경답게 실재하는 유적지 괴베클리 테페는 소설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약 1만 2000년 전 원시부족이 자신들이 세운 신전을 무슨 이유에선지 스스로 매장시켜버린 것을 두고 여러 가지 가설이 등장한다. 소설적 상상력이 기대는 것도 바로 이들 가설이다. 괴베클리 테페 신전의 미스터리와 관련한 인류 기원의 여러 가설 중에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이종교배 얘기도 있다.

몇 가지 점에서 원제 'Genesis Secret'의 Genesis는 '창세기'라는 의미보다는 '기원(혹은 시초)'의 의미로 읽는 것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것도 바로 이 부분, '기원'과 관련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 가지 가상적인 설정 혹은 해석이었다. 이를테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전후의 성서적 배경을 수렵채집시대에서 농경시대로의 변화로 본다든지, 연쇄살인범 클론커리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형질 때문으로 해석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살인이라는 행위를 유전 형질에 의한 태생적 기질로 보는 소설적 상상력이 흥미롭다. 인류사의 가장 큰 비극은 대부분 전쟁을 통해 발생되었는데 한편으로 전쟁을 통해 많은 영웅들이 배출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소설은 이러한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지도자들 중에는 전쟁광이 많았다고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이러한 가설을 토대로 뛰어난 지도자들이 지녔던 폭력적이고 살상적인 기질이 선조대의 인신공희와 유사점이 있으며, 인신공희 즉 살육을 즐기는 유전 형질이 우성 유전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재미있는 관점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상당히 비약이 심한 얘기이므로 걸러서 받아들이는 주의가 필요하다.

활자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 손에 집히던 대로 읽던 시절, 그 책들 중엔 성경도 있었다. 성경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 중에 아브라함이 있다. 아브라함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나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자신이 믿는 유일신의 제단에 바치려 했던 무조건적인 믿음과 순종 때문이었다.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통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창세기 비밀』에서 중요한 소설적 장치로 등장한다.

- 가끔 종교가 요구하는 희생과 그 잔인성에 놀랄 때가 있다. 인간성의 고유한 특질이라 생각하는 품성인 질투심, 분노, 폭력성... 을 똑같이 드러내는 신은 종교 안에 깃든 또 하나의 미신으로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두려운 공포의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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