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베켓 <2058 제네시스>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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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608 bytes / 조회: 4,988 / ????.05.02 16:22
[도서] 버나드 베켓 <2058 제네시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은 로봇SF 장르의 보편적인 주제인데,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여'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참고로 안드로이드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270년이라고 한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SF물 중 (개인적으로)최고로 꼽는 것은 단연 리들리 스콧의《블레이드 러너》다.

 

"이 모든 순간들이 시간속에 묻혀버리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 됐어...(All those momen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4년의 삶을 마무리하는 로이의 모습을 보며 로이에게 '인간성'이 없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한편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레이첼은 데커드에게 왜 자신이 인간인가(인간일 수 밖에 없는가)를 계속해서 설명하는데,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믿지 못하여 고민하는 동안 안드로이드 역시 자신이 왜 인간과 다르다는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은 로봇SF의 고전적인 테제다. 물론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 일어나는 이러한 문답은『2058제네시스』에서도 이어진다.

『2058제네시스』는 목차가 따로 없고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로 전개되는데, 1교시가 끝날 때마다 휴식 시간이 있다. 이는 수업이 아닌 시험 시간의 분류이며, 국가 최고 기관인 '학술원' 시험에 응시한 아낙시멘더(이후 '아낙스')의 시험 과정이 전체의 틀이고, 아담과 안드로이드 아트의 얘기가 내용의 줄기를 이루는 액자소설이다.
시험은 구술과 면접으로 이루어지는데 아낙스가 준비한 과제가 바로 '아담 포드'이다. 이 책의 원제 'Genesis'에 역자가 덧붙인 '2058'은 바로 아담의 출생 년도를 뜻한다.

지구에 불어닥친 대전쟁과 전염병 이후 플라톤은 섬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섬 주위를 방벽으로 둘러싼 다음 외부로부터의 침입, 유입을 일체 거부하고 저지한다. 하지만 이제껏 없었던 완벽한 세상처럼 보였던 플라톤의 제국도 공포와 위기의 시대가 지나가자 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는 얼핏 오랜 전쟁을 끝낸 완벽한 영웅이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세상을 만들지만 점차 이 '완벽함'조차 불만으로 느끼는 군상들을 보여준 프랭크 허버트의『듄』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데, 물론 아트레이드의 세계와 플라톤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플라톤 제국의 문제점은 플라톤이 이상적인 사회를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와 동일한 개념으로 정의해버림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자유란 인간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 인간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역설이 생겨난 셈.

그리고 이러한 역설이 낳은 것이 바로 아담 포드이다. 아담은 제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인간형인 '반항하는 인간'이지만 급증하는 시민들의 불만에 직면하여 아담을 처형할 수도, 풀어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정부는 가장 진보된 안드로이드 아트의 테스트용으로 아담을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즉 살려는 두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아트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부분으로 쪼개면 모두 우연에 의해 발생된 것 같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어쩐지 필연성이 느껴진다.
아낙스는 시험관과의 문답 과정에서 점차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인과율의 신화'가 그것이다.

 

인과율의 신화: 이 말은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이 없이는 아무 것도 생기지 못한다는 인과율의 법칙을 맹신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맨 첫 원인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서 인과율의 허구가 발견된다.

- p.27,『2058제네시스』

 

아낙스는 인과율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문답이 거듭될수록 아낙스의 주장은 오히려 인과의 필연성을 쫓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로봇SF를 접할 때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픽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로봇, 그러니까 안드로이드는 대부분 긍정적인 호감을 끌어낸다. 물론 이 호감의 배경은 안드로이드의 '인간성(비슷한 것)'에 있다. 인간의 상상물이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이유야 어떻든 아담과 설전을 벌이는 아트는 근래 내가 만난 안드로이드 중 가장 호감 가는 녀석이었다. 유머 감각이 넘치고, 때로는 신랄하며, (고집스러운 아담 때문에)때로 절망도 하는 아트의 모습은 '인간적'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이 안 된다. - 불만이 있다면 지극히 미국인스럽다는 것 정도.

책 전반부에선 철학자, 기술자, 군인, 노동자로 나뉘는 시민의 계급이 출생과 동시에 유전자의 게놈 정보를 해독하여 분류된다는 점에서 영화《가타카》가 연상되었고, 책 중반의 아담의 생애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에선 감정마저도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이퀼리브리엄》이, 그리고 책이 끝나갈 무렵에는, 책 내용과 상관없이, 완벽한 세상을 꾸며주었더니 자꾸만 불만이 속출하여 불완전한 세상으로 시스템을 수정하였다는 영화《매트릭스》의 세계관이 떠오른다.

책을 얼마쯤 읽었을 때, 이 책은 재독하는 책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읽히는 책이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의 반전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 중간 지점 쯤에서 마주친 어느 문장에, 어?, 하다가 마지막 장을 펼쳐보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원래 나는 스포일링(당하는 것)을 즐기지만 이는 영화에 국한되는 것이지 책은 별개다. 마지막 장을 미리 펼쳐보는 짓을 하는 '책'은 만화책이 유일한데 이 역시도 해피엔딩이 아니면 안 읽기 때문에 생겨난 버릇이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부처는 무엇입니까" 묻는 제자에게 "똥막대기다"했다는 스승의 선문답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이런 문제는 정답이 없는 법이다.
책을 읽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의미는 독서 중에 자극받은 지적 호기심이 독서가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 SF에 거부감이 없는 이들에게 일독해 볼 것을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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