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1인용 식탁>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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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948 bytes / 조회: 5,656 / ????.06.03 23:13
[도서] 윤고은 <1인용 식탁>


모두 아홉 편의 단편으로 채워진『1인용 식탁』은 한 마디로 '강박'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집이다.

어느 날 무리로부터 소외되면서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지기 위해 학원을 끊는 여자(1인용 식탁), 빈대를 퇴치하기 빈대에 집착하는 남자(달콤한 휴가), 현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인베이더 그래픽을 찾아 나서는 남자(인베이더 그래픽), 꿈을 팔기 위해 꿈을 꾸는 남자(박현몽 꿈 철학관), 폭설 속 러브 모텔에 갇힌 남자(로드킬), 집을 떠나지 못하고 아이를 기다리는 여자(타임캡슐 1994), 아이슬란드에 가기 위해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아이슬란드), 몸 어딘가에 구멍을 뚫는 것에 집착하는 여자와 그 여자의 피어싱에 집착하는 남자(피어싱), 엄마의 유기농 집착에 맞서는 홍도의 인스턴트 반항(홍도야 울지 마라)까지.
아홉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내는 한 목소리는 바로 '강박'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등장하는 '지피지기백전불퇴(知彼知己百戰不殆)'는 말하자면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한자 성어이다. 반면「달콤한 휴가」는 말하자면 이 한자 성어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예로, 빈대를 완벽하게 퇴치하고자 하면 할수록 빈대에 대해 잘아야 하는데 결국 적을 알고자 하는 열성이 지나치면서 빈대라는 곤충에게 의식이 갇혀 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해 버린다.

 

물론 모든 강박이 이렇듯 심각하고 병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흔한 예로 가방을 사려고 계획을 세우면 그날로부터 거리를 돌아다니는 가방만 온통 눈에 들어오는 경험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이 역시 가벼운 강박에 해당한다. 이렇듯 살다 보면 누구나 일말의 강박을 지니게 되거나 경험하게 되는데 소설집『1인용 식탁』에는 이러한 일상과 밀접한 여러 강박이 등장한다. 또한 소설적 상상력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강박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강박이 사라질까봐 오히려 두려워하게 되는 심리를 관찰하는데(「1인용 식탁」「아이슬란드」참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공포로 인하여 강박증을 얻게 되는 인물들이 나중에는 오히려 이 강박증에 의지하여 일상의 공포를 극복하려 하고 결국 그로 인해 일상이 파괴되는 비극적 결말까지 보여준다(「달콤한휴가」「피어싱」).

 

전개와 결말이 카프카 스타일이라고 할까, 일상이 공포로 돌변하는 순간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고, 경계가 모호하고 비상식적일수록 그것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반응 역시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로드킬」참고)
이에 비하면「홍도야 울지 마라」에 등장하는 강박은 가볍고 흥겹다. 유기농을 고집하는 엄마와 학교 앞 인스턴트 음식(달고나, 솜사탕 등)으로 엄마의 유기농 강박에 도전하는 홍도는 살풋 웃음 짓게 만든다.

읽고 나서 "응?" 하는 단편이 두어 편 있다. 영화든 소설이든 작가는 작품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얘기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나의 독해력이 떨어져서일 수도 있으나 얼핏 작가의 혼잣말이 읽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나 더. 이건 나한테만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국내 소설을 읽을 때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은유법'인데 특히「피어싱」은 유독 은유가 과다하여 읽으면서 요철을 많이 느낀 단편이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왜 이 수료증을 한 번에 받는 사람들이 5퍼센트에 그치는지 알 것 같았다. 85퍼센트의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시험이 아니었다. 시험 이후에 찾아올 진짜 현실이었다. (중략)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혼자 자유롭게 먹는 방법이었으나, 정작 내가 얻은 것은 수강 기간 동안 내가 혼자 먹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안이었다. 1인으로 구성된 체인점 같은 것. - pp.42-43,「1인용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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